‘쓰임의 역사’ 옛 대전부청사를 바라보는 또다른 시각

[디트의눈] 오래된 역사를 승화하는 방식

2024-07-19     한지혜 기자
옛 대전부청사 모습. 대전시 제공.

일반 대중을 위한 문화예술의 장, 청소년과 서민을 위한 착한 영화관, 지역 상공인의 뛰어난 제품을 홍보하는 전시장, TV도 라디오도 없던 시절 세상사를 전해주던 목소리, 분단과 해방의 아픈 단면인 미군정청까지. 옛 대전부청사가 품은 쓰임의 역사다.

어떤 목적으로 지어져 어떤 용도를 거치며 세월을 버텨왔는지. 건축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은 곧 쓰임을 정해주는 일과 다르지 않다. 

대전부청사 건물은 일제시대인 1936년 준공된 후 1층은 청사 업무시설과 충남상공장려관으로 쓰였다. 2층은 회의실, 3층은 공회장과 강당 용도로 사용했고, 해방 후에는 미군정청과 대전시청으로 활용했다. 1959년 시가 청사를 신축해 현재의 중구청 자리로 이전하자 1, 2층은 상공회의소, 3층은 청소년회관으로 바뀌었다.

용도만 보면 공회당과 충남상공장려관, 청소년회관 정도가 이색적이다. 공공청사에 일반 시민이 자주 드나들 일이 없지만, 공회당이 위치한 3층에선 각종 기념식이나 강연회, 결의대회 등의 행사가 열렸고, 합창 등 예술 공연도 개최했다. 

청소년회관이 들어선 후에는 청소년과 서민을 위한 ‘영화관’ 역할도 톡톡히 했다. 당시 이곳은 1960대 말~1970년대 초 대전에서 가장 저렴한 영화관이었다. 故 송성영 작가가 ‘대전원도심이야기’를 주제로 시 블로그에 기고한 글 <그 시절, 영화 보러 가는 길은 한 편의 영화였다>에도 이 사실이 잘 나타난다.

송 작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영화에 빠져 용돈을 모아 영화관으로 직행했다”며 “영화관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여지없이 청소년회관이었다. 대전극장, 중앙극장, 신도극장과 비교해 당시 보통의 영화 관람료가 50원이었다면 청소년회관은 5~20원에 불과했다”고 했다.

그는 “꾹꾹 참아가며 한두 달 용돈을 모으면 30원이 모였고, 버스 요금이 5원 정도 했으니, 30원이면 총천연색 영화를 신나게 즐길 수 있었다”며 “촌놈이 대전 중심지 영화관에 가 검은 장갑을 낀 사나이들이 오락가락하며 한바탕 싸움을 벌이고, 악당들에게 당하고 훗날 멋지게 복수하면서 결국 정의가 승리하는 짜릿한 감동을 맛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이면 충분했다”고도 썼다.

'시민 품으로' 선언의 의미 고민해야 

청소년회관으로 쓰였던 옛 대전부청사 건물 외관 모습. 이곳에선 저렴한 가격으로 영화를 상영하기도 했다. 대전시 제공.

TV나 라디오가 귀했던 시절, 이 건물이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는 역할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대전시사편찬위원회 <대전의 옛 이야기-下권』>(2016)에 따르면, 작고한 송백헌 충남대 국문과 명예교수는 “6·25 전쟁 후 특수층을 제외하고 라디오가 없던 시절, 동양백화점(현 NC백화점) 자리에 있던 대전문화원이 부청사 건물 옥상에다 10여m 높이의 방송대를 세우고 고성능 스피커를 동서남북 방향으로 설치해 음악과 시사뉴스를 방송했다”고 기록했다. 시청사 용도였던 1950년대 이야기다.

건물 준공과 함께 1층을 지켰던 ‘충남상공장려관’은 지역 상공인 상품을 전시, 홍보, 판매하는 역할을 했다. 1972년 대전상공회의소에서 건물을 매입한 뒤 보수 공사를 하면서 전면에 네 개의 알루미늄 원형기둥을 설치했는데, 이는 지역 상공 진흥 의미를 담은 ‘굴뚝’을 형상화한 모습이다.

세계 7번째 스타벅스 로스터리 매장을 품은 ‘옛 대전부청사’. 대전시가 과감하게 내놓은 근대문화유산 활용법이다. 보수적인 보존 방식에서 탈피해 적극적으로 민간에 개방해 경제성을 높이겠다는 계획이지만, 지역상공인을 위한 홍보관, 미군정청 등으로 쓰였던 건물 용도를 생각하면 아이러니다. 

문화유산 복원 패러다임이 보존에서 활용으로 바뀌었다지만, 대전의 첫 시청사를 ‘시민 품으로’ 돌려주겠다는 선언에 걸맞은 방향인지 고심할 필요가 있다. 사람 발길이 닿지 않는 죽은 공간으로 남는 것보단 낫겠지만, 수백 억 원의 시민 혈세를 쓰며 가까스로 보존한 근대문화유산의 첫 쓰임으로 합당한 지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전시의회 업무보고 중 비슷한 우려를 내비친 대전시의원의 당부가 다행스럽다. “부청사를 상업시설로 만들면 역사 고리를 끊는 역효과가 있을 수 있다. 지역사회 비판을 다각도로 고려해 슬기로운 활용방안을 찾아달라”.

오래된 역사를 대하고, 승화하는 방식. 대전이 진짜 근대문화유산도시로 도약할 수 있는 방법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