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톡톡: 백 마흔세번째 이야기] 지도자가 무능할 때 참사는 반복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7일 8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대전 현대프리미엄아울렛 화재 현장을 방문해 합동분향소에서 조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7일 8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대전 현대프리미엄아울렛 화재 현장을 방문해 합동분향소에서 조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사람이 죽었다. 힘없고 약한 사람들이 또 죽었다. 살아보겠다고 나간 일터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지난 26일 대전 현대프리미엄 아웃렛 화재 사고로 7명이 목숨을 잃고 1명이 중상을 입었다. 

청년 3명이 숨진 한화 대전공장 폭발사고가 불과 3년 전이다. 이 공장에서는 사고 1년 전에도 폭발과 함께 불이 나 근로자 5명이 숨졌다.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김용균 사고도 4년이 안 지났다. 

산업현장 곳곳에선 날마다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대형 사고라도 얼마 안 가 잊히고 만다. 나한테 닥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 전 일도 오래전 얘기 같고, 사상자가 발생해도 둔감한 이유다. ‘죽은 사람만 불쌍하다’고 혀를 끌끌차며 명복만 빌 뿐. 

이럴 때마다 정부와 정치권이 하는 ‘약속’이 있다. ‘철저한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다. 이번에도 그랬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고 현장을 찾아 “화재 원인을 신속히 규명하고, 보상 절차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여야도 사고 수습과 재발방지책 마련을 약속했다. 

대개 산재 사고는 허술한 안전관리와 느슨한 법 제도에서 비롯한다. 그래서 ‘인재(人災)’가 많다. 노동자 보호를 위해 만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기업들이 빠져나갈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이번에 화재가 발생한 아웃렛은 3개월 전 소방 안전 점검에서 화재 감지·피난 설비 등에 문제가 지적됐다. 지난 6월 자체 소방 점검 때도 24건이 지적됐다고 한다. 그때라도 신속히 대처했다면 아까운 목숨을 잃는 사고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유가족에 대한 행정 당국 대응도 미숙했다. 한 유가족은 “대전시청도, 유성구청도 어디에서도 유가족들에게 분향소와 제대로 된 계획을 말해주는 곳이 없었다. 어디다 물어볼 곳도 없이 방치됐다”고 항의했다. 황망한 이들에게 가해진 ‘2차 피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번에 사고를 당한 이들은 모두 하청업체와 외부 용역업체 소속 직원들이었다. 개점 준비를 위해 새벽부터 일터에 나갔다가 참변을 당했다.  

소설가 김훈은 시민단체 ‘생명안전 시민넷’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2019년 <한겨레> 칼럼에서 매년 300명에 달하는 고층 건물 신축공사장 추락사를 언급하며 이렇게 한탄했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부는 기업을 압박하거나, 추경을 편성하거나, 행정명령을 동원하거나 간에,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이 문제를 해결했을 것이다. 그러나 고층에서 떨어지는 노동자들은 늘 돈 없고 힘없고 줄 없는 사람들이었다.” 

김만권 경희대 교수는 이듬해 같은 언론사 기고(‘김훈의 통곡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서 “값싼 노동력을 위험한 노동 현장으로 내모는 현실 앞에서, 우리가 눈여겨보지 않는 대목은 바로 국가의 역할”이라고 지적했다. 

돈 없고 힘없고 줄 없는 사람들은 하루하루 생사의 현장에서 위태롭게 서 있다. 그런데 국정은 오늘도 대통령 ‘비속어’ 논란에 매달려 민생을 살피지 못하고 있다. 스스로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면서 ‘진상규명’ 운운하는 대통령의 처사란. 진상규명이 필요한 곳은 따로 있다. 지도자와 집권 세력이 무능하고 무책임할 때 참사는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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