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눈] 제2의 괴롭힘 피해자 막는 ‘비망록’ 됐으면

부여 롯데아울렛에 근무 중인 매니저가 '직장 내 괴롭힘'을 암시한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뒤, 법률적인 대안 마련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안성원 기자.
부여 롯데아울렛에 근무 중인 매니저가 '직장 내 괴롭힘'을 암시한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뒤, 법률적인 대안 마련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안성원 기자.

[부여=안성원 기자] 부여 롯데아울렛 30대 여성 매니저 A씨가 '직장 내 괴롭힘'을 암시하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한 이후 보름 남짓 지났다. (본보 7월 24일자 부여 롯데아울렛 매니저 사건 ‘직장 내 괴롭힘’ 성립될까 보도 등)

A씨 유서에 적힌 ‘괴롭힘’에 대한 경찰 조사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사실상 ‘혐의없음’으로 종료될 예정이다. 롯데아울렛도 자체 감찰을 진행 중이다. 현장 관계자와 동료 매니저들의 제보도 이어졌다. 

특히 법리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괴롭힘법)’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는 부여 롯데아울렛 매니저들 실태와, 이런 사례가 유통업계에서 만연해 있다는 사실도 접할 수 있었다. 

‘괴롭힘법’은 적용 대상을 고용자(사용자)와 근로자 관계, 또는 동일한 고용자로부터 급여를 받는 동료 관계로 규정한다. A씨를 비롯한 매니저들은 브랜드별 본사와 근로계약을 맺고, 롯데아울렛은 브랜드 본사와 점포 계약을 체결한다. 법률적으로 각 매니저는 ‘개별 사업자’로서, 롯데아울렛과 동등한 계약관계에 있다.

하지만 현실은 ‘동등한 관계’가 아니었다. 롯데아울렛 직원인 파트리더(품목 책임자)나 관리자는 매니저 거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갑’의 위치에 있었다. 만약 A씨 유서처럼 관리자와 친밀한 누군가가 모함하거나, 이를 근거로 관리자가 브랜드 본사에 문제를 제기하면 해당 매니저는 교체될 공산이 크다.

브랜드 본사는 판촉 행사 참여나 매대 위치 결정 등 직·간접적으로 매출에 영향을 미치는 관리자와 껄끄럽기보다, 새 매니저로 교체하는 걸 선택하기 때문이다. ‘우회적 갑질’과 괴롭힘이 얼마든지 가능한 반면 ‘괴롭힘법’으로부터는 사각지대였던 셈. 

유통업계의 갑질과 괴롭힘에 대한 법률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통업계 ‘괴롭힘법’ 사각지대…“대안 필요” 여론
“괴롭힘법 적용범위 ‘원하청 관계’로 확대해야”

A씨 사건을 접한 전문가들은 <디트뉴스> 취재 과정에서 ‘괴롭힘법’ 적용 대상을 ‘직접 고용관계’뿐 아니라 같은 현장에서 근무하는 ‘원·하청 관계’까지 확대하고, 처벌행위 역시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민간공익단체 ‘직장갑질 119’는 ‘직장 내 괴롭힘 판례 및 사례 분석 보고서’를 통해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받기 위해 반드시 누가 봐도 심한 행위가 있어야 하는 것만은 아니다”라며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가해 행위로 피해자에게 고통을 주고 근무환경을 악화시켰다면 인정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정현철 직장갑질119 사무국장은 “국제노동기구(ILO)는 ‘폭력과 괴롭힘 협약(Violence and Harassment Convention)’ 190호에서 괴롭힘의 대상을 '노동자가 소속된 집단'뿐 아니라 '일하는 공간 전체'로 봐야 하고, 법 적용도 넓혀야 한다고 제시했다”며 “한국의 근로기준법 역시 바뀔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을 ‘괴롭힘법’이 아닌 ‘산업재해보상보험법’으로 바라본 해석도 있었다.

조창연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산재)는 “2019년 전라도의 한 대형마트에서 파견 근무자간 갈등으로 인한 정신질환을 인정받아 치료비와 휴업급여, 후유장해 보상을 받은 선례가 있었다”며 “A씨는 일터 동료로부터 괴롭힘 받았기 때문에 산재를 적용, A씨 사망에 따른 유족급여 지급도 가능하다고 판단된다”고 진단했다. 

더 이상 유통업계에서 A씨 같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발생해선 안 된다. 갈 길은 멀지만, 이번 사건이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릴 ‘비망록’으로 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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