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완의 포토詩세이]

쓰려는 마스크에 끈이 없다
정말 어이가 없다

살다 보면 어이없는 일들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오롯이 본인의 몫이다.
살다 보면 어이없는 일들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오롯이 본인의 몫이다.

살다보면 황당한 일이 종종 생긴다. 기대와 다른 결과에 실망을 하고, 각오한 것을 이겨내면 성취감을 느낀다. 하지만 황당함이란 감정은 기대나 각오와는 달리 아무런 예상을 못한 상태에서 맞이하는 ‘당연함의 배신’이다. 비슷한 말로는 당혹감이 있고 슬픔과 더해지면 황망함이 된다. 형용사인 황당하다가 동사로 변하면 당황하다가 된다. 

‘어이’는 곡식을 갈아 즙을 내는 맷돌-지금으로 치면 착즙기-의 손잡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어이없다’는 말 그대로 그 손잡이가 사라진, 황당한 상황을 뜻한다. 곡식을 갈려고 하는데 맷돌 손잡이가 없을 때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분명히 옛날 누군가가 그런 일을 겪었을 것이고 그래서 어이없다는 말을 했을 것이고 그게 재밌고 절묘해서 널리 퍼져나갔을 것이다. 그 결과로 더 이상 맷돌을 쓰지 않는 시대에도 우리는 어이없어한다.

어느 아침, 일회용 마스크를 쓰려고 포장을 뜯었더니 끈이 없었다. 잘못된 부착된 것도 아니고 아예 없었다. 불량품이었다. 사전적 의미대로 어이가 없었다. 잠깐의 황당함에 이어 흥미가 느껴졌다.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네 하는 생각... 몇몇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어이없는 일이 있었다며 말해놓고 같이 웃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살면서 만나게 되는 황당한 일들도 이렇게 웃으며 넘어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만한 여유, 그만한 멘탈이 내게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당황의 역치(閾値)를 높이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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