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IN충청-⑯] 부여군 규암면 자온대 설화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어져온 역사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산과 나무, 저수지와 바위들. 여기에는 각각 다양한 사연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중에는 ‘이게 우리 동네 이야기였어?’라고 놀랄만한 이야기도 있다. 우리 지역의 전설을 잠들기 전 아이들에게 들려줄 옛날이야기로 꺼내면 어떨까? 대전·세종·충남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편집자 주> 

 

 

아주 옛날, 우리나라가 삼국으로 나뉘었을 때 百濟(백제)라는 나라에는 중국의 증자처럼 학문과 도덕이 뛰어나 ‘해동증자’라고 불린 한 왕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왕은 부모에 대한 효심과 형제들과 우애가 좋아 항상 칭찬을 받았죠.

 

이 왕의 아버지는 서동요로 유명한 서동·선화 설화의 주인공, 백제 30대 무왕이랍니다. 즉 이 왕은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이죠.

 

의자왕은 불심이 깊기로도 유명했는데 부처에 대한 공경이 커서 일본에 불교와 학문을 전하기도 했어요.

 

그러던 어느 겨울날, 의자왕은 신하들을 불러 모아 말했어요.

"여봐라, 부처님께 예불을 드리고 싶구나. 강 건너 왕흥사로 갈 채비를 하거라"

 

명령을 받은 신하들은 가마를 대령 하고, 두꺼운 옷을 챙기는 등 왕의 행차를 준비했습니다.

 

근데 하필, 이 날은 너무나도 추운 날이었어요. 가마를 끌던 신하들은 하나같이 오들오들 떨었습니다.

 

유독 추위를 탔던 신하 아무개는 왕의 행렬 맨 끝에서 "추워죽겠네 그려. 강바람은 더 찰 텐데...걱정이구만" 이라며 동료 아무나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아무나는 "난 강 건너는 것 보다 찬 바위에 오르는게 더 싫소. 날도 추운데 이런 날도 바위에 오르시려나?"라며 싫은 내색을 숨기지 않았죠.

 

의자왕은 부처님에 대한 마음이 얼마나 지극한지, 예불을 드리러 갈 때 마다 강가의 어느 바위에 올라 사찰을 향해 절을 먼저 올리곤 했는데요, 이날도 그 바위에 오를 것을 신하들은 알았습니다.

 

추위를 뚫고 드디어 나루터에 도착해보니 강 건너 그 바위도 보이고 바람은 더 매섭게 불었습니다.

 

왕은 신하들과 구드래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넜습니다. 훠이훠이 노를 저어 강 건너에 도착해 바위에 올랐습니다.

 

그러자 아주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의자왕이 얼음장처럼 차디찬 바위에 무릎을 꿇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너무도 따뜻한게 아니겠어요?

 

의자왕은 매우 흥분한 목소리로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이 겨울에 바위가 따듯하다니" 라며 신하들에게 소리쳤습니다.

 

아무개와 아무나도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전하, 바위가 스스로 따뜻해진 건 분명 부처님이 전하의 지극한 불심에 감복 하신 겝니다"라며 확신에 찬 어투로 말했습니다.

 

근데 정말 부처님이 바위를 데워 주신 걸까요?

 

사실은 충성심이 강한 신하 아무도가 재치를 발휘해 왕의 행렬보다 먼저 가서 불을 지펴 데워 놓은 거였어요. 왕과 동료를 위한 마음으로 말이죠.

 

아무도는 왕의 행차를 준비하면서 날씨를 걱정하던 다른 신하의 말을 듣고 이마를 탁 치며 혼자 말했어요. "아하! 내가 먼저 도착해서 불을 지펴 바위를 따뜻하게 만들면 어떤가?"

 

묘수를 생각해낸 아무도 덕분에 추운 겨울 날, 왕과 신하들은 따뜻하게 절을 올리며 부처님께 예를 다할 수 있었답니다.

 

이후 봄이 오고 산천은 온통 초록으로 물들 때에도 의자왕은 신하들과 종종 바위에 올라 백마강변 경치를 감상하며 함께 노닐기도 했습니다.

 

이 바위는 지금까지 저절로 따뜻해진다는 의미의 '자온대'라고 불린답니다.

자온대 모습. 바위 아래로 현재는 운영이 중단된 나루터가 보인다. 
자온대 모습. 바위 아래로 현재는 운영이 중단된 나루터가 보인다. 

삼국유사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속칭 엿바위로도 알려진 ‘자온대’에 얽힌 이야기다. 부여군 규암면 옛 나루터 남쪽에 위치했으며 높이 20여 m의 바위다. 강 쪽으로 돌출한 부분엔 우암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직접 새긴 것으로 알려진 自溫臺(자온대)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또 바위 위쪽으로는 조선 광해군 때 양주목사를 지낸 김흥국(金興國, 1557~1623)이 인조반정을 피해 이곳에서 살면서 지었다는 수북정(水北亭,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100호)이 있다.

이곳 마을의 정식 명칭은 ‘규암리’이지만 ‘엿바위 마을’이라고도 불리는데 마을을 상징하는 '자온대'의 모습이 흡사 누군가를 몰래 엿보는 것처럼 머리만 조금 내밀었다 해 '엿바위(엿볼 규, 바위암)라 불렸다는 이야기와 나당연합군의 사비성 침공 당시에 초병이 자온대에 숨어 사비성을 엿보던 곳이라 해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구전으로 전해진다.

지역에서는 지난 2016년도부터 ‘규암 엿바위 불빛축제`를 이듬해까지 열었는데 마을의 관광자원인 근대문화 유산과 접목시켜 주민 주도형 마을축제로의 발전가능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규암리 일대는 1930년대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나루터를 중심으로 물자 이동이 활발했던 곳으로, 영화관, 교통, 숙박 등이 발달했던 곳이다. 이 때문에 현재까지도 옛 정취를 간직한 건물들이 남아있어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나루터는 현재 운영이 중단됐지만 그 위쪽 뚝방길에서는 프리마켓과 소규모 공연, 청년 창업 등이 발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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