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톡톡: 백 스물아홉번째 이야기] ‘다수의 힘’과 ‘승자독식’이 흔드는 민주주의

자료사진. 대통령실 제공.
자료사진.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 10일 취임사에서 ‘반(反)지성주의’를 화두로 꺼냈다.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해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보편적 가치의 공유’를 제시했다. 그 바탕에 ‘자유’를 뒀고, 자유는 “승자독식이 아니다”라고 규정했다. ‘자유 시민’이 되려면, 공정한 규칙을 지켜야 하고, 연대와 박애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법사위원장 자리를 놓고 힘겨루기하고 있다. 그 여파로 21대 국회 후반기 원구성이 4주째 공전 중이다. 국민의힘은 ‘여소야대’ 정국에서 주도권을, 민주당은 ‘마지막 보루’인 국회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심산이다. 

윤 대통령이 경계한 ‘다수의 힘’과 ‘승자독식’의 반지성주의가 민의의 전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입법부 공백이 장기화하면서 국민 삶과 직결한 민생·경제는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일하는 국회’를 선언한 21대 국회가 이전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받는 이유다. 

그뿐인가. 여당 대표는 성 접대 의혹에 당 윤리위로부터 징계 심의 대상에 올랐다. 거대 야당은 대선과 지방선거 패배에도 계파 싸움에 정신 못 차리고 있다. 그들만의 ‘공정과 혁신’은 지지층마저 등 돌리게 만들면서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2년 전 북한군에 피격된 공무원이 전 정권에서는 ‘월북’이라고 했다가 정권 교체 이후 스스로 발표를 뒤집으며 국론 분열을 조장하고 있는 게 이 나라 공권력의 현주소다.

반지성주의 극복을 강조했던 대통령은 또 어떤가. 현 정부를 비판하면 ‘전임 정부는 더  했다’라는 식이다. 검찰 출신 편중 인사 비판에는 “문재인 정부는 민변 출신들로 도배하지 않았나”, 문 전 대통령 사저 앞 시위에는 “대통령 집무실도 시위가 허가되는 판”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경찰의 독립성을 강화한다는 의미에서 경찰청장을 장관급으로 격상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최근 경찰제도개선자문위의 권고안은 장관급 격상은 고사하고, 행안부 장관 부하인 ‘경찰국장’으로 격하해 버렸다. 

‘검수완박’에 권한이 커진 경찰을 견제하겠다는 의도다. 경찰 내부에서는 “민주화 이후 사라진 ‘경찰국’의 부활이며, 과거 독재 시대 치안본부로의 회귀”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어느 순진한 국민이 국가와 정부를 믿고 ‘자유 시민’의 길에 따라나설까. 

강남순 텍사스 크리스천 대학교 교수는 『질문 빈곤 사회』에서 “반지성주의가 추구하는 것은 오직 자기 이득의 증대와 권력의 확장”이라며 “코로나19처럼 우리 모두가 경계해야 할 바이러스”라고 정의했다. 작금의 정치권력이야말로 바이러스처럼 국민의 삶을 위협하는 반지성주의의 숙주(宿主)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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