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IN충청-⑩] 신기한 금산군 보석사의 은행나무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산과 나무, 저수지와 바위들. 여기에는 각각 다양한 사연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중에는 ‘이게 우리 동네 이야기였어?’라고 놀랄만한 이야기도 있다. 우리 지역의 전설을 잠들기 전 아이들에게 들려줄 옛날이야기로 꺼내면 어떨까? 대전·세종·충남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편집자 주>

금산군 남이면 보석사 은행나무는 신기하다. 나라에 큰 일이 생기면 운다고 한다.
금산군 남이면 보석사 은행나무는 신기하다. 나라에 큰 일이 생기면 운다고 한다.

금산군 남이면 석동리에 있는 보석사 경내에는 천 년이 넘은 은행나무가 한 그루 서 있습니다. 그 은행나무는 둘레 16.5m로 나이가 1090년이 넘었다고 합니다. 아마 현재 우리나라에서 기록된 것 중에서 가장 클거 같은데요 이 은행나무에 대해 옛날부터 신기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나라에 큰일이 생기면 은행나무가 운다는 것입니다.

1945년 해방이 되기 전해에도 울었고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나기 전 해 겨울에도 나무가 울었다고 합니다.

"이~, 이~ !"

 

단순히 울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흔들리면서 진동도 느껴진다고 하네요. 여간 신기한 일이 아니죠.

이 얘기는 단순히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는 설화(說話)가 아니라 은행나무가 우는 소리를 직접 들은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보석사에 계신 스님 한분이 증인(?)이래요. 

 

가장 최근에는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 당하던 해에도 들었다고 하네요. 그때만 해도 보석사에 여승(女僧)이 살았는데 아침에 은행을 주우러 갔다가 나무가 이상한 소리를 내서 놀라 들어왔다는 거에요.

 

이때부터 '은행나무가 운다'는 얘기는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사실로 인정되고 있어요. 보석사를 방문하는 관광객들도 '이상하다 이상하다'하면서도 은행나무 앞에서 귀를 쫑긋 세운답니다. 

 

혹시나 나무가 또 울지 않을까 해서.

 

"이~, 이~"..."스~~~!"

보석사 은행나무는 사시사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가을에는 노란 단풍과 함께 풍성한 열매를 맺기도 한다.
보석사 은행나무는 사시사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가을에는 노란 단풍과 함께 풍성한 열매를 맺기도 한다.

[지상현 기자]충남 금산군 보석사에 있는 은행나무는 수령(樹齡)이 무려 1000년이 넘는다고 한다. 1990년 천연기념물 제365호로 지정됐으며, 보석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다보니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로 여겨지고 있다.

나무높이 40m, 가슴높이 줄기둘레 10.4m, 가지퍼짐은 동서쪽 28m, 남북쪽 29m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한 그루지만 처음에는 여섯그루였다고 전해진다. 보석사를 창건한 조구대사가 절을 창건한 뒤 여섯그루를 심었다고 하는데 여섯그루를 심은 이유는 불교에서 육바라밀을 염두에 두고 '여섯가지 거룩한 보살'이라는 걸 상징하기 위해서였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렇게 조구대사가 심은 여섯그루가 자라면서 하나의 나무로 붙어서 성장했다는 게 설화 속 보석사 은행나무다.

보석사 은행나무는 보석사 신도들 뿐 아니라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게 하는 관광 자원이 된지 오래다. 보석사는 통일신라시대때인 서기 885년 창건된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절 앞산에서 채굴한 금으로 불상을 주조해 보석사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보석사에는 보석사에서 무예를 익힌 뒤 임진왜란 때 왜병과 싸우다 전사한 승병장 영규대사의 순절비가 세워져 있다. 때문에 보석사는 매년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인데 은행나무 덕에 찾는 인파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그만큼 오래된 역사에서 나오는 것일까. 나라에 변고가 생길 때마다 소리내어 운다는 설화가 보석사 은행나무의 나라위한 충정을 더욱 소중하게 입증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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