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창호의 허튼소리]

나창호 수필가(전 충남 부여부군수).

“5분만 더, 5분만 더.” 아침잠자리에서 꾸무럭대다가 출근버스 타러 나갈 시간이 다 되어서야 겨우 일어나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거나, 우유 한잔으로 밥을 대신하며 허둥대던 젊은 시절이 엊그제 같은 데, 세월이 어느덧 덧없이 흘러 언제부턴가 새벽잠이 사라졌다. 옛날에 “노인들은 일찍 기침을 한다.”는 말을 들었었지만 왜 그런지를 몰랐고,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이를 직접 겪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잠을 잘 자야 건강하다고 하는데, 짧게 자더라도 푹 자는 단잠을 자야 좋다고 하는데, 깼다 잤다하는 선잠마저도 없지 않으니 불면증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아무리 나이가 들면 잠이 준다고는 하지만 젊어서 그토록 단잠을 자던 새벽잠이 홀연히 사라진 것은 참 이상한 일이다.

나는 젊어서부터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형이라서 지금도 자정 무렵이 돼서야 잠자리에 드는 버릇이 있는데, 예전 같으면 세상모르고 잘 새벽시간에 눈이 저절로 떠지는 것이다. ‘날이 새나?’ 하고 보면 아직 방안이 컴컴하다. 머리맡에 두고 잔 핸드폰을 더듬어 찾아 켜보면, 새벽 5시쯤 일 때가 있고, 어느 날은 더 이른 시간일 때도 있다. 힘들게 등산을 했거나, 유독 걷기운동을 많이 한 날이거나, 모처럼 농사일로 몸을 혹사한 날은 자정 전에 잠자리에 들기도 하는데, 이때는 더 일찍 눈이 떠지는 것이다. 더러는 술 먹은 탓으로 소변 때문에 일찍 깨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저절로 눈이 떠지니 이는 분명 신체생리변화이지 싶다.

사람에게 평생 동안의 잠시간 총량이라도 있는 것일까? 젊은 사람에게는 잠시간이 많고 노인층에는 적은 것인가? 노인들은 일반적으로 활동량이 줄어서 잠시간도 줄어드는 것일까? 젊었을 때 노인은 새벽잠이 없다는 말을 듣고 이상하다싶었는데, 이제는 새벽잠이 사라진 현실을 내가 직접 겪고 있으니 야릇하다. 신체의 균형을 맞추려면 젊었을 때 부족했던 잠을 일거리가 아예 없거나 줄어든 노년에 보충을 해야 맞을 것 같은데 오히려 잠시간이 더 짧아졌으니 이상한 일 아닌가.

어느 날 산행을 같이 하는 친구들에게 “이상하게 새벽잠이 없어졌다”고 하니, 친구들이 “나도 그렇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그렇다”라고 말한다. 혹시 나에게 불면증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던 걱정이 사라져 조금은 안심이 되었지만, 새벽잠이 사라진 현상이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어느 때는 다시 잠이 드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어둑한 밤에 눈을 뜬 채로 있다가 창문이 훤히 밝아지는 것을 보는 것은 참 무료한 일이다. 아마도 옛날의 노인들은 이때 곰방대를 물었지 싶다. 아니면 촛불 켜고 앉아 먹 갈아 글을 쓰며 잡념을 떨쳐냈지 싶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넘어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냐

조선시대 숙종 때의 문신 남구만이 지은 옛시조다. 새벽잠이 깨어 담배 한 대를 피우고 나서도 동창이 밝기까지 많이 무료하고 지루한 시간이었지 싶다. 마침내 동창이 훤히 밝아지는 모습이 반가워 시조 한 수를 읊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한참 곤한 잠을 자고 있을 머슴아이를 깨우는 내용이라서 마음이 조금 아리다. 날마다 일에 시달리는 머슴아이에게 좀 더 잠을 자게 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어찌 생각하면 새벽잠이 사라진 것이 꼭 나쁘다고만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젊어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일들을 경험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겨울철이면 냉기 가득한 앞 베란다에 나와 동녘하늘을 벌겋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식장산 부근의 장엄한 일출 장면-문학 동아리 단톡방에 사진을 올리면 속 모르고 부지런하다고들 했다-을 여러 차례 지켜보기도 했고, 봄철에 들어서는 부연 새벽하늘을 가르며 나는 새들을 보거나 새들의 지저귐 소리를 듣기도 했다. 내가 일찍 일어났다고 하는데 새들은 훨씬 더 일찍 일어나 노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좋은 먹이를 많이 얻는다더니 그래서 일까?

생각을 바꾸니 나이가 들면 새벽잠이 사리지는 현상도 나름의 이유가 있지 싶다. 이제 남은 생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젊어서 겪지 못했거나, 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해보라고 기회를 주는 것은 아닐까. 새벽 잠자리에서 무료하게 날 밝기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좀 더 능동적으로, 일찍 일어나 노래하는 새처럼 살아야지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멀리 새벽을 깨는 산들과 베란다 아래로 나는 새들도 보고, 때로는 새벽산책에도 나서야겠다. 문득 시심이 떠오르거나 글 욕심이라도 들면 시 한수를 짓거나, 수필 한편 쓰는 시간도 가져봐야겠다. 새벽잠이 사라진 것을 무슨 병인 양 근심하지 말고 유익한 시간이 되도록 해봐야겠다. 여생을 허투루 잠만 자지 말라는 뜻으로 알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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