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미래다] 안신일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

급변하는 시대 상황에 맞춰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는 인물의 발굴이 요구되고 있으나, 현실은 녹록지 못하다. 대전과 세종, 충남 지역에서도 새 시대를 이끌 새 인물에 대한 관심이 높은 가운데, 창간 20주년을 맞은 <디트뉴스24>가 10년 후 지역사회 각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할 동량 찾기에 나선다. 편집자 주

안신일 전 세종시주민자치협의회장. 한지혜 기자.
안신일 전 세종시주민자치협의회장. 한지혜 기자.

‘시민주권 특별자치시 세종’ 슬로건의 시초 격인 세종시의 시작, 첫마을. 이곳에서 대한민국을 선도하는 주민자치도시를 꿈꾸는 사람이 있다. 올해 8월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으로 위촉된 안신일(46) 전 세종시주민자치협의회장이다.

2011년 첫마을로 이주한 후 만 10년이 흘렀다. 내 집 장만의 첫 기쁨으로 마을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 아파트 동대표, 입주자대표회장, 주민자치회장, 초대 세종시주민자치연합회장까지 이어졌다.  

첫마을학교는 세종시교육청 마을교육공동체의 시초가 됐고, 단지 간 시설 공동 사용을 추진한 일은 법 개정으로까지 이어졌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일상을 폐쇄했지만, 반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주민들의 노력은 ‘마을방송국’ 개국이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가장 먼저 지어졌지만, 좋은 기운이 한 데 모인 모범 마을. 굳게 걸어 잠그기보단, 문을 열고 소통하는 아파트 문화를 만들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안 전 회장의 공이 컸다.

세종, 마지막 고향이길

지난 2016년 10월 열린 한솔동 첫마을학교 입학식 모습. 아파트 단지 내 시설 개방, 주민들의 재능기부로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이 운영됐다. 자료사진.
지난 2016년 10월 열린 한솔동 첫마을학교 입학식 모습. 아파트 단지 내 시설 개방, 주민들의 재능기부로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이 운영됐다. 자료사진.

신혼부부 특별공급으로 처음 마련한 내 집. 안 전 회장은 이곳이 마지막 고향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주했다. 30대에 동대표, 입주자대표회장을 맡으며 마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선 게 첫 시작이다. 

“1번 국도를 따라 금강을 건너는데 가슴이 설렜습니다. 첫 집이다 보니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저는 아파트 동대표로, 아내는 행복청 주부모니터단 활동을 했었죠. 입주자대표회의 활동을 하면서 당시 한솔동에 복컴이 없었는데, 복컴 건립도 추진하고요. 다른 도시였다면 먹고 살기 바빠 상상도 못했을 겁니다.

첫 아이를 임신하고 세종에 왔는데, 이곳에 살면서 삼둥이를 얻었습니다. 한글도시 세종의 의미를 따서 가온, 누리, 마루 순우리말로 이름을 지었어요. 그 아이들이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 됐네요. 우리 아이들은 이제 세종이 고향이 되겠죠?”

2016년 운영했던 첫마을학교는 주민들의 재능기부와 단지 내 공동시설을 활용한 마을교육공동체 시초이자 모델로 기록된다. 교육 인프라가 부족했던 초기 세종시에 대체 돌봄 서비스를 공급한 사례다.

“단지에서는 낮에 쓰지 않는 아파트 공간을 내어주고, 교육청에서는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면 아이들이 안전하고 편안한 장소에서 방과후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어요. 덕분에 교육감님께 초대 교장 임명장도 받았죠(웃음). 어릴 때, 이웃집 친구, 옆집 어른들과 마주치며 놀았던 기억이 많이 남아 있잖아요. 적어도 아이들에게는 아파트가 문 닫으면 끝인 공간이 아니길 바랍니다.”

폐쇄적인 공동주택 문화를 바꾸기 위해 단지 내 공동시설을 인근 단지 주민에 개방하기도 했다. 세종시 거주 형태의 90%가 공동주택인 점을 감안하면, 의미 있는 시도로 평가된다. 울타리 없는 행복도시 콘셉트와도 결이 같다.

“첫마을학교를 운영해보니 아파트 단지 시설을 타 단지 주민과 함께 사용하는 데 제도상 어려움이 있었어요. 40년 된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을 요구했는데, 실제 법령이 바뀌었습니다. 아파트 단지 간 통행이 이어지는 새롬동은 과도기, 지금 6생활권 해밀동은 그런 점에서 완성형입니다. 행복청과 세종시, 주민들 간 협업으로 이뤄진 성과예요.”

“공공기관, 지방의회 권한 내려놔야”

안 전 회장이 한솔동 주민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문학 분야 주민자치 특성화 프로그램 성과를 설명하고 있다. 한지혜 기자.
안 전 회장이 한솔동 주민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문학 분야 주민자치 특성화 프로그램 성과를 설명하고 있다. 한지혜 기자.

올해는 지방자치 30주년이 되는 해다. 하지만 여전히 주민자치에 대한 오해, 인식 부족이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또 주민 의결기구로서의 위상을 가지기 위해서는 반대로 공공기관이나 지방의회가 권한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딜레마도 있다.

“주민자치 현 주소를 보면, 몇 가지 어려운 점이 있어요. 지방의회나 정치권에서 볼 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뺏긴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주민자치 활동가를 경쟁자로 인식할 수도 있습니다. 또 잔소리하는 사람이 늘어난다고도 생각할 수 있겠죠.

또 지역에는 흔히 관변단체라고 불리는 곳들이 있어요. 주민자치회 위상이 높아지면 상대적으로 입지가 좁아진다고 인식할 수도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풀뿌리민주주의, 직접민주주의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헤쳐 나가야죠. 주민자치를 더 널리 알리고, 좋은 사례도 많이 홍보해야 합니다.”

코로나19 이후 기껏 열어젖힌 문들은 다시 잠겼고, 이웃 간 대면도 크게 줄었다. 그 와중에도 일부 주민들은 위기를 기회로 삼는 의지를 보여줬다. 

“코로나 시기, 주민 주도로 마을방송국이 생겼어요. 주민자치 프로그램을 마을방송국을 통해 진행한거죠. 마침 주민자치위원님 중에 방송국에서 일했던 분이 계셨거든요. 보태니컬 아트, 캘리그라피, 기타교실이 온라인으로 열렸어요. 홈패션 수업에선 면마스크를 만들어 기부하기도 했고요. 공동의 위기가 오니 어떻게든 서로 해법을 찾게 되더군요.”

국가균형발전과 지방분권, 주민자치 모두 한 갈래에서 뻗어나왔다. 10년간 마을 생활을 하다보니, 이제 그에게 '정치'라는 또 다른 도전을 권유하는 주민들도 생겼다.

“주민자치가 꽃피는 마을이 꿈이지 정치가 꿈은 아닙니다. 늘 감사한 세종시에서 어떤 자리든 마다 않고 겸손히 봉사해야죠. 정치에 도전하고 안 하고는 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다만, 기회가 주어지면 늘 그랬듯이 묵묵히 해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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