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인터뷰 ⑪] 노승호 부여군의원 “농민 목소리 제도권 반영” 각오

민선 7기 지방의회가 임기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지방의회는 본연의 소임에 최선을 다하며 풀뿌리 민주주의 근간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디트뉴스>는 지방의회 초선 의원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지난 3년간 의정활동 성과와 아쉬움, 지방의회가 나아갈 방향,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거취 등을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8대 부여군의회 최연소 의원인 노승호 의원. 30대에 입성해 3년이 지나며 40대 초반을 맞고 있다. 
8대 부여군의회 최연소 의원인 노승호 의원. 30대에 입성해 3년이 지나며 40대 초반을 맞고 있다. 

[부여=안성원 기자] 8대 부여군의회 최연소 노승호(42) 의원. 30대에 의회 입성 이후 3년이 지난 지금은 40대 초반이다. 그래도 아직까진 ‘청년’의 눈빛을 잃지 않고 있다. 다만 변한 게 있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이 커졌다는데 있다.

노 의원이 소유한 ‘최연소’ 타이틀은 또 있다. 31세 때 노화1리 이장을 맡으며 당시 부여군 '최연소 이장'을 맡았다. 청년농부로서 부여군 농업인단체협의회 사무국장, 한국농업경영인 부여군연합회 사무국장 등을 지냈다. 

이후 그는 제도권에서 농업인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지난 지방선거에 도전장을 던져 성공했다. 

“부여군은 농업지역임에도 농정 전문가가 의회로 진출한 경우가 거의 없었어요. 저는 한국 농업대학교를 졸업했고, 농사꾼이었요. 내성적 성격인데, 대학 시절 대의원회 의장을 했어요. 뭐랄까, 누군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있잖아요. 그럴 때 앞장서게 되더라고요.”

그는 지난 선거에서 낙선과 당선을 동시에 경험한 '독특한' 이력도 갖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가지역구에 출마한 그는 선거 당일 개표 결과 낙선 소식을 접했다. 상대 후보는 노 의원을 찾아와 위로까지 했다. 노 의원은 담담한 모습을 보였지만, 상대 후보가 돌아간 뒤 아내와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그날 새벽, 동생과 선거사무장이 그를 찾아왔다. 군 부대 개표집계 정정으로 당선자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 당락이 바뀐 상대후보와 부둥켜안고 울며 ‘농업인을 대변하자’고 다짐했다. 노 의원은 "당선증 교부식 때 밀짚모자와 장화를 착용하겠다"는 약속도 지켰다.

8대 의회 최연소 의원, 최연소 이장 타이틀 

천국과 지옥을 오간 첫 선거. 상대 후보와 '농민의 대변자가 되겠다'는 다짐을 나눈 노 의원은, 당선증 교부식에 밀집모자와 장화를 신고 가겠다는 약속도 지켰다. 
천국과 지옥을 오간 첫 선거. 상대 후보와 '농민의 대변자가 되겠다'는 다짐을 나눈 노 의원은, 당선증 교부식에 밀집모자와 장화를 신고 가겠다는 약속도 지켰다. 

실제 노 의원은 의정활동을 농정 현안에 집중했다. 박정현 군수와 함께 내놓았던 지역화폐를 활용한 농민수당 공약과 농업회의소 설립 공약을 지켰다. 농산물 최저가 보장 공약도 추진 중인데, 가장 애착이 가는 의정활동이라고 했다. 

노 의원은 동료인 박상우 의원과 광역방제기를 들고 읍면 시가지와 공동주택 다중이용시설 등 방역에 나서기도 했다. 대개 젊은 초선의원들이 그렇듯이 ‘애송이’ 이미지를 벗는 것이 당면 과제였다. 

“당선된 뒤 2년은 어린 나이 때문에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 공무원이나 선배 의원들도 ‘30대 애송이가 얼마나 하겠느냐’고 의심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첫 행정사무감사 때 ‘애송이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독하게 공부를 했고, 열심히 했더니 많이들 놀라더군요. 이후로 이미지가 반전됐어요.”

이후로는 주민들의 민원을 해결해가며 보람을 찾았다. 소소한 일도 현장을 찾아 행정과 연계해 길을 찾는 것이 즐거웠다. 반대로 제도권 안에서 해결방법을 찾을 수 없을 때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천국과 지옥 오간 첫 선거…현직 농부 전문성 강조

지난 의정활동을 농정업무에 집중했던 노 의원은, 앞으로 자치분권을 앞당기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지난 의정활동을 농정업무에 집중했던 노 의원은, 앞으로 자치분권을 앞당기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벼농사를 짓지 못하면서 줄어든 소득에 가족들에게 미안함이 컸다고 한다. 그는 경제적 문제는 다른 청년 기초의원들도 가장 고민되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이런 난관에도 그가 포기 못하는 건 ‘지방분권’의 현실화다. 그는 기초의회에서 활동하면서 상당 부분 한계를 느꼈다고 했다. 기초자치단체에 주어진 예산과 권한이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광역단체와 정부 승인을 기다리면 긴 시간이 필요했고, 본인이나 민원인 모두 지치기 일쑤였다. 어떤 식으로든 이 상황을 바꾸는데 기여하겠다는 게 노 의원의 포부였다.

“아직 재선 이야기를 직접 꺼낸 적은 없어요. 항간에는 경제적 이유로 출마하지 않을 거라는 얘기도 들리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웃음) 재선이 된다면, 의회 문턱을 낮추고, 교육청과 연계해 학생들이 일찍부터 의사결정 과정을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어요. 장기적으로는 지자체가 고유권한을 찾을 수 있는 지방분권에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노 의원이 꿈꾸는 지방분권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농부 출신 청년 군의원의 풍성한 수확과 결실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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