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대자연의 법칙 속에 작은 ‘알갱이’
‘의혹’은 결코 덮어지지 않아
대권주자들, 소우주인 ‘나’를 탐구해 진실된 ‘자아’ 만나기를

한기원 칼럼니스트
한기원 칼럼니스트

9월은 사실 세월이 흐르고 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 보다는 가을이 성큼 우리 곁에 돌아와 있다는 기쁨이 절로 느껴지는 계절이다.

가을이 빗속에 자꾸 깊어만 간다.
자연이 내는 색깔은 참으로 신의 영역이랄 수밖에 감히 달리 표현할 수가 없다. 
곧 짙은 단풍이 우리에게 묘한 여운을 실어다 주면 그 신의 영역은 고스란히 인간의 영역이 되어 있으리.
뭐랄까. 까맣게 잊어버린 첫사랑이 오버랩 되는 데자뷰랄까. 

가을이 깊어갈수록 우리 빈약한 마음의 한 켠엔 그리움이 별로 돋아나 밤마다 길을 떠나기도 한다.
옷깃을 여미게 하는 찬바람은 그 별을 더욱 푸르게 만들 것이리. 

송나라 때의 시인 구양수는 ‘문득 가을소리를 듣는다’고 노래하기도 했다.
한밤에 글을 읽다 말고 서남으로부터 무슨 소리가 들려오기에 귀 기울이니 그게 바로 '가을소리'더라는 것이 그 유명한 '추성부'의 첫 구절 아니던가. 

그런가 하면 헤르만 헤세는 '여름이 그 마지막을 향해 잠잠히 몸부림 친다'고 노래하며 '잎새들이 하나씩 금빛 물방울이 되어' 떨어진다고 '9월'에서 읊었다. 

'비추(悲秋)‘라는 말도 있지만 역시 가을의 쓸쓸한 정취가 시심을 흔드는 때문일까. 
가을을 노래한 시는 수도 없이 많다. 

가을은 뜨거운 정념의 계절이 아니라 차가운 이성과 성찰의 계절이기도 하다. 

9월은 명실공히 결실의 달이다. 
우리 속담에 '갈바람에 곡식이 혀를 빼물고 자란다'고 할 정도로 곡식과 과일들이 놀랄 만큼 빨리 자라고 익는다. 

들녘에는 누렇게 익은 벼의 황금물결이 일렁이고 있다. 
가을에는 밭에 나가기만 해도 가난한 친정 가는 것보다 낫다는 속담도 있지 않던가.

적자생존이라 했다. 꽃들은 저마다 치열하게 적응된 역사의 인과에 따라 봄에는 키가 낮은 꽃이 피고, 여름에는 껑충하게 자라야 피고, 가을에는 투박하고 질겨야 견뎌내는 꽃들이 피어나니 자연의 섭리는 참으로 오묘하기까지 하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공자는 말했지만 깨달은 눈으로 바라보면 모든 사물의 안에는 신비로운 아름다움으로 가득차 있으니 우리의 삶은 경이롭고 신비한 아름다움의 그물로 짜여진 안이고 속이고 또 겉이다.

가을엔 대자연의 법칙 속에 살고 있는 소우주인 '나'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진실된 '나'를 만나는 계절이기도 하다. 

이른바 ‘장미대선’이라고 불리우는 제20대 대선을 불과 6개월여 앞두고 대권주자들에겐 이 가을이 어떻게 비쳐지고 있을까.

국민이 보기에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판이 온통 권모술수로 몹시 뜨겁기만 할 뿐이다.
의혹은 결코 덮어지지 않으며, 계절의 변화처럼 진실은 반드시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사실(史實)을 각 후보 진영은 무겁게 받아 들여야 하지 않을까.

이 가을에, 대권주자들도 소우주인 ‘나’를 진정으로 탐구해 보았으면, 그래봤으면 참 좋겠다는 하릴없는 생각을 해 본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나’에게 편지도 한 장 써보기도 하고, 이를 통해 저 멀리 달아난 ‘자아’를 만나는 그런 계절이기를 속절없이 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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