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거’는 과연 화두(話頭)인가, 바느질 용구인 ‘인두’인가?
‘청치(淸治)’로 국민들 지친 ‘마음의 심지’ 밝혀주기를

한기원 칼럼니스트
한기원 칼럼니스트

한국 현대 불교의 대선사로, 조선과 일제 강점기의 승려이자 독립운동가로도 유명한 우리 불교계의 대표적인 선지식(善智識)이셨던 ‘만공(滿空)스님’.

덕숭산 수덕사, 정혜사, 견성암, 서산 안면도의 간월암 등을 중창하였으며, 선학원(禪學院)을 중심으로 선불교를 크게 중흥시켜 현대 한국불교계에 큰 법맥을 형성하였다. 

스님은 수덕사 초당에서 거문고를 즐겨 탔다고 전해진다.
어느 날 한 스님이 만공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거문고를 타면 마음이 즐거워집니까, 슬퍼집니까?”

마침 두 스님은 차를 마시고 있었다. 만공스님은 찻잔의 물을 가리키며 스님에게 되물었다.

“이 찻잔의 물이 깨끗한 것이냐, 더러운 것이냐?”
“그야 깨끗한 것이지요.”
“자 그럼 내가 마신 찻잔의 물은 나중에 오줌으로 나올 것이다. 그것은 깨끗한 것이냐. 더러운 것이냐?” 

스님은 이번에는 더러운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만공스님은 그 스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말을 이었다.

“그 오줌이 땅에 젖어 물기가 되고 그 물기를 도라지가 빨아먹어 꽃을 피웠다. 그 꽃은 깨끗한 것이냐, 더러운 것이냐?”
“그 꽃은 깨끗한 것입니다.”

만공스님은 스님의 대답에 빙그레 웃으면서 한 소리를 했다.

“너는 물 한잔을 가지고 깨끗했다. 더러웠다. 마음대로 바꾸는구나”
“보아라. 물은 원래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은 것이다. 그것이 찻잔에 담기면 깨끗해지고 오물통에 담기면 더러워진다. 같은 물이라도 이렇게 다르게 보이는 것이니라. 거문고 가락도 슬픈 사람이 들으면 슬프게 들리고 기쁜 사람이 들으면 기쁘게 들리는 것, 기쁘고 슬픈 것은 없는 것이다.”

꼭 불자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대체로 불가에서 일컫는 ‘이 뭣고?’ 가 품고 있는 심오한 뜻이 결국 우리 어리석은 대중들의 마음의 심지를 밝혀 줄 끝없는 ‘화두(話頭)’ 아닐까 싶다.

요즘 정치권이 국민의힘 이준석대표와 원희룡 전 제주지사 간에 벌어진 이른바 ‘저거’ 논란으로 시끄럽다.

그러니까 ‘저거=윤석렬 전 검찰총장’ 이냐, 아니냐가 논란의 핵심인데, 서로 책임을 미루기에 급급해 참으로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딱하기 그지없다.

단숨에 전 국민의 유행어 반열에 오른 ‘저거’는 ‘화두’(話頭)일까, 아니면 바느질 욕구로 쓰이는 ‘인두’일까?

무엇이 진실이든 그 참으로 오묘하고도 요상한 단어의 의미는 결국 하나일 것 아니겠는가.

아무리 권모술수가 판치는 선거판이라고 하지만 ‘정치’가 단지 위정자들의 전리품인양 자기들 마음대로 ‘이랬다 저랬다’를 반복하는 양상은 참으로 꼴불견이다.

‘정치’가 정치공학적 애매한 화법의 접근이 아닌 ‘청치’(淸治)의 단아하고 명쾌한 언어구사를 통해 국민들의 지친 ‘마음의 심지’를 밝혀주길 우리는 기대한다.

만공스님 법어처럼 물 한잔을 가지고 ‘깨끗했다, 더러웠다’ 마음대로 바꾸지 말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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