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대표
박경은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대표

살다보니, 내가 보고 싶은 사람보다 나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즐겁고 덜 아프다. 이왕이면 서로가 보고 싶어 하면 ‘금상첨화’다. 살다보니, 내 생각대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에 급급함보다는 때로는 결정하지 않고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두는 것도 방법이 된다. 관계 안에서 우리는 자신의 마음과 상대방의 마음이 충분히 다름을 알아야 한다. 서로 다른 마음일 때는 자신의 에너지를 감소시키는 일을 선택하지 않아야 한다. 자신이 마음을 주체하지 못할 만큼 스스로 감정에 치우치더라도 에너지를 떨어지게 하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중을 위해서 에너지를 충분히 충전해 두어야 한다. 행여 ‘나중은 없다’고 해도 괜찮을 만큼의 자신을 만들어야 한다. 

나쁜 사람이 모든 사람한테 나쁘지는 않다. 단지 자신과의 관계의 친밀도에 따라서 더 많은 상처를 주거나 더 많이 아프게 하는 경우는 빈번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나쁘지 않을 수 있음은 너무나 역설적이지만, 중요한 사실이다. 나 또한 2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몇 명의 사람에게 잘못한 것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때는 철이 없었고, 생각도 좁았고, 이기적이었다고 말하기엔 너무 미안해서 침묵한다. 연락처도 없기 때문에 어떠한 방법을 더 찾지도 않는다. 살다보니, 후회스럽고 다시 재회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작용할 때도 있다. 어쩌면 저마다의 상처에 따라서는 ‘나’라는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을 수 있다. 더 심하게는 ‘나’라는 존재를 지워버리고 추억마저도 치욕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반대로 내 잘못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관계 끊음’을 경험하기도 한다. 무지 당황스럽지만 어찌할 방도가 없기 때문에 반 강제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여러 가지 수많은 이유로 우리는 ‘관계형성’을 참 힘들어하고 어려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의 중요성’을 망각하지는 않는다. 최소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사실이다. 

살다보니, 좋지 않는 기억보다 좋았던 기억, 기쁨을 함께 했던 기억이 더 강렬하게 떠오른다. 그러나 ‘심리적 죽음, 정서적 학대’을 경험하게 한 사람은 예외다. 이 또한 사람마다 차이는 크다. 때론 ‘너와 나’ 그리고 ‘나와 우리’ 라는 관계 속에서 자신을 거부하거나 불편해 하는 사람과의 관계형성을 애써 노력하면서 연결하고 싶어 하는 심리적 충동에 괴로워하기도 한다.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 미련 때문이라기보다는 아쉬움이 더 크다고 보여 진다. 미련은 ‘자기만족’에 중심을 둔다면, 아쉬움은 ‘좋은 사람’에 중심을 둔다. 즉 좋은 사람이란 더 잘해주지 못하고 좋은 이미지로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함에 있다. 더 깊은 무의식에서 본다면, 좋은 사람이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미련과 아쉬움’은 그 사람이 자신에게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좋은 사람’의 개념은 사람마다 다르다. 거기에는 자신의 가치기준이 중심이 된다. 

살다보니, ‘미련과 아쉬움’을 간직한 만남이 재회될 수 있다면 거부하고 배제하는 것보다 새롭게 관계를 맺어보는 것도 좋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의 아픔이나 상처, 원망에서 벗어난 상태에서 가능하다. 지금 현재의 심리상태를 늘 새롭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매일 자신의 마음을 갱신하는 것은 하루에 밥을 꼬박 꼬박 먹어서 영양분을 섭취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일 수 있다. 이것은 자연스런 흐름에 자신을 맡길 수 있는 영역을 넓히는 데 필요하다. 

어느 정도 살다보니, 내가 전혀 찾지 않을 것 같은 사람도 애써 찾게 된다. 마치 이산가족을 찾는 것처럼 두근거리고 설레고 울컥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상황은 충분히 반전될 수 있다.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자신의 마음을 단단하도록 훈련시킬 필요가 있다. 자신의 감정을 힘들게 하는 사람보다는 그저 미소가 지어지는 사람,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생각하지 않게 하는 사람, 행여 내가, 네가, 우리가 서로 상처를 주더라도 진심으로 사과할 수 있는 기회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하여, 그런 사람을 찾아 헤매라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는 것도 참으로 의미 있는 삶이다. 자신이 등대와 같은 사람이 되는 것, 그 또한 충분히 삶의 의미가 된다. 

앞으로의 삶을 살아내려면 굳이 사람을 거부할 것도, 불편해 할 것도, 피할 것도 없다는 것을 ‘마음의 여유’를 통해서 ‘마음의 여백’이 키울 필요가 있다. 관계 안에서 우리는 아픔과 갈등을 수시로 반복하지만 그것을 통해 치유작업과 성찰, 통찰의 경험을 한다. 이러한 것들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용기’도 생성되게 해준다. 그래서 인간의 발달단계가 '멈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발달'에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저마다의 정신세계에 따라 찾아오는 시기(때)가 다르다. 우리는 이것을 ‘제 때’가 있다고 표현한다. 공부할 때, 놀 때, 일할 때, 사랑할 때, 잘 때, 먹을 때, 멍 때일 때 등으로 제 때를 아는 것이 곧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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