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이라는 침략자의 용어를 스스럼없이 사용한 윤석열 대선 출마자는 과연 ’전봉준‘인가.

한기원 칼럼니스트
한기원 칼럼니스트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창포장수 울고 간다”

그러니까 조선말기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로 훗날 ‘녹두장군’(키가 작아서)이란 별칭을 얻은 전봉준.
그의 할아버지가 고부(지금의 정읍 일대)군수 조병학의 ‘약탈’에 저항하다 곤장을 맞고 저항하다 죽임을 당한 사실을 아버지한테 전해 듣고 큰 뜻을 품고 농민봉기를 일으킨 전봉준.

한 때 동네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쳐 주는 ‘훈장’ 일로 생계를 이어가기도 했던 전봉준의 봉기는 과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얼 시사하는 걸까.

조병갑은 지금으로 치면 그야말로 ’악덕기업주‘였다.
그는 고부군수로 부임한 이래 갖가지 명목으로 농민들로부터 도에 지나치는 세금과 재물을 ’약탈‘하는 등 원성이 그야말로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심지어 가뭄이 들어 민중이 도탄에 빠졌을 때도 지금의 국세를 무려 3배나 징수한 것은 물론 심지어 대농(大農)을 잡아다가 재산을 ’약탈‘하기 일쑤였다.

이에 농민들은 전봉준을 ’장두(狀頭:소장을 제기할 때 맨 처음 이름을 적는 사람)‘로 조병갑에 그 부당성을 진정하였으나 일언지하에 거부당하고 쫓겨나 농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었다.

동학농민혁명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결국 전봉준을 필두로 농민군 1천여명이 결집하자 조병갑은 전주로 피신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고부군을 접수한 농민군은 불법으로 빼앗겼던 곡식을 농민들에게 돌려 주었던 사건이 동학혁명의 시작이었다.

훗날 ‘새야 새야 파랑새야’는 이렇게 개사되어 불러지기도 했다.

“일본군아 일본군아/ 한반도에 머물지 마라/ 한반도의 꽃, 너희 수중에 떨어지면 /녹두장군이 울고 간다/ 한반도의 자연강산이 망가진다/ 한반도의 초록산은 무너지고 푸른 강은 울며 흐른다”

한마디 사과 없이 제국주의 야욕을 여전히 드러내고 있는 일본의 극악무도한 책임을, 그 한일관계에 대해, 그 군국주의의 악랄함에 대해, 현 정부에 뒤집어 씌우고 ‘약탈’이라는 침략자의 용어를 스스럼없이 사용한 윤석열 검사는 과연 ’전봉준‘인가.

그 어떤 정권이든 정권은 유한하다.

그렇다면 역사상 그 모든 정권교체를 갈구했던 위정자들은 암울했던 우리 민족의 근대 흑역사를 제외하고 이른바 ’민주화의 봄’이후를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약탈자‘였을까? 아니면 ’혁명주의자‘들이었을까?

안도현 시인의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빗소리에 더 구슬픈 주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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