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미래다] 김선광 국민의힘 중구청년위원장
"정치는 권력욕 아닌 가슴따뜻한 사람이 해야 한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동갑나기인 김선광 중구당협 청년위원장. 그는 가슴따뜻한 정치인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동갑나기인 김선광 중구당협 청년위원장. 그는 가슴따뜻한 정치인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혹자는 정치인은 권력욕이 있어야 한다고 말들 하는데 제 생각은 정치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슴이 따뜻해야 사람들이 힘들 때 같이 울어 줄 수 있다."

우리나라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최근 정치사를 새로 썼다. 헌정사에서 제1야당 대표가 첫 30대 당수가 탄생한 것이다. 주인공은 올해 나이 36세, 국회의원 경험 한번 없는 이준석 대표다. 이 대표가 국민의힘 대표로 선출된 이후 우리나라 정치는 급속하게 세대교체의 바람이 불고 있다.

세대교체 바람은 중앙 정치무대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1년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전지역 정가에서도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세대교체론이 무게를 얻기에 충분하다. 그만큼 정치 분야의 세대교체가 더디다는 방증이다.

이준석 대표 동갑나기 김선광, 보수당에서 정치인의 발걸음을 떼다

대전에서도 국민의힘 소속으로 세대교체를 꿈꾸는 정치인이 있다. 바로 이 대표와 동갑나기인 김선광 국민의힘 중구당협 청년위원장(가온컴퍼니 대표)이다. 김 위원장은 최근 <디트뉴스24>와 가진 인터뷰를 통해 '이준석 돌풍'을 바라보는 시선을 물으니 예상과 다른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이 대표는 경륜과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배제하지 말고 겸손한 자세로 그들에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며 "급진적인 개혁보다는 대표가 홀로 할 수 있는 부분은 하되 경륜과 경험이 있는 분들에게 배울 점은 배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내년 대선이 가장 중요하다. 대선에서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면 '젊은 사람이 대표를 맡으면 안되는구나'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그렇게 되면 예전 정치풍토로 돌아가 기성정치세대에 끌려 다닐 수 있다"고 가감없이 속내를 털어놨다. 내년 대선에서 이 대표가 진두지휘해서 승리해야만 이 대표 체제가 인정받아 진정한 세대교체가 된다는 얘기다. 동갑나기 당 대표의 성공을 위해 솔직하고 중요한 얘기를 꺼낸 것이다. 물론, 이 대표가 성공할 수 있도록 본인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포부도 함께였다.

젊은 정치인은 진보라는 등식이 보편화된 요즘 청년정치인이 보수정당 최일선에서 정치를 시작한 김 위원장. 사실 김 위원장은 벌써 10년전, 그러니까 20대 중반에 보수당에 입당할 정도로 보수와 함께 정치의 길을 걷고 있다.

비록 30 중반으로 젊은 나이지만 김 위원장 인생여정을 보면 왜 그가 정치에 발을 들였고 왜 보수당에서 정치를 시작했는지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한밭대 총학생회장 당시 김 위원장.
한밭대 총학생회장 당시 김 위원장.

그는 부모님 슬하 2남 2녀의 막내로 중구 태평동에서 태어났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관계로 어머니는 태평시장 한 모퉁이에 좌판을 깔고 장사를 했을 정도였다. 초등학교 시절 그런 어머니가 부끄러워 부러 어머니가 장사하는 곳은 피해 다닐 정도였다. 보문중을 졸업하고 대성고에 입학한 그는 반장을 할 정도로 활동적인 학생이었다.

공부도 제법했던 모양이다. 대학 입학시험을 치른 결과 충남대와 한밭대 등 지역의 이름난 학교에 모두 합격했다. 선택은 한밭대(기계공학과)였다. 이유는 단하나, 같은 국립대임에도 학비가 충남대보다 한밭대가 저렴했기 때문이다. 어려운 가정형편은 대학에 입학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학비를 충당하기 위해 고민 끝에 총학생회 활동을 결심한다. 총학생회 임원이 되면 장학금을 준다는 얘기를 들어서다.

그렇게 해서 김 위원장은 대학 1학년때부터 총학생회 활동을 시작했고 그동안 맘 속으로만 품고 있던 막연한 꿈을 실행시킬 첫 단초를 마련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정치. 어려서부터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가정 형편으로 인해 지역사회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나중에 크면 고향 발전을 위해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일정부분 실현시킬 기회가 온 것이다. 

그가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를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다. 장학금을 받기 위해 총학생회 활동을 시작했지만 총학생회장이 되면 학생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불합리한 점을 바꿀 수 있다는 점에 매력에 느낀다. 봉사하고 잘못된 점을 개선해 학생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아내와 장인어른에게 감사..."가슴 따뜻한 정치인 되겠다"

그런데 이번에도 경제적인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일정 금액의 자금이 필요했던 것. 궁하면 통한다고 김 위원장은 시간을 벌기 위해 군대를 갔고, 마침 군대에서 해외파병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육군 22사단에서 근무하면서 7개월 동안 이라크 자이툰부대에 파병을 가게 된다. 목숨을 담보로 파병에서 번 돈은 무려 2000만원이 넘었다. 이 돈은 군 제대 후 복학해서 학비와 총학생회장 선거비로 사용했다. 그리고 2010년 선거에서 다른 경쟁상대를 물리치고 제26대 한밭대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됐다.

총학생회장 선거 당시 유권자인 학생들을 직접 만나 공약을 만들었다. 총 5개 공약으로 압축했다. 말로만 공약이 아닌 정말 이룰 수 있는 공약으로만. 그 결과 5대 공약 모두 이뤄졌다고 한다.

국민의힘(옛 새누리당)에 입당한 게 이 즈음이다. 열심히 일한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버는 시장경제체제가 맞다고 생각했고 대북 관계에서도 맹목적인 퍼주기에 대해 반대 입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에 입당한 뒤 이은권 전 국회의원도 만나게 됐고, 이 전 의원으로부터 추진력과 리더십도 배우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이 전 의원이 낙선한 뒤에도 계속 행보를 함께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금성백조건설 등 직장생활을 하면서 평생의 반려자를 만났고 본격적으로 정치인의 길을 걷기 위해 회사를 차리게 된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대전시의원에 출마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의 시작을 알렸지만 거센 민주당 바람에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그렇다고 실망하지 않았다. 부족함을 알게 됐고 성장하는 과정으로 생각했다.

이라크 파병 당시 김 위원장. 이때 번 돈으로 학비와 총학생회장 선거를 치렀다.
이라크 파병 당시 김 위원장. 이때 번 돈으로 학비와 총학생회장 선거를 치렀다.

김 위원장이 꿈꾸는 정치는 어떤 모습일까. 이런 물음에 그는 "시대가 변하고 있다. 정치 선배들이 잘 했던 것은 후배들이 잘 물려받아 플러스해서 더 발전시키면 정치의 미래는 밝다고 생각한다"면서 "정치권의 세대교체는 당연히 필요하다. 실력을 갖춘 청년정치인이 현실 정치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고 세대교체를 강하게 주장했다.

그는 1년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에 출마한다. 출마를 위한 준비도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했다. 주민들과 만나 지역의 문제점을 듣고 있고 해결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중앙 정치보다는 어릴적부터 자신을 도와준 고향발전을 위해 지역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착실하게 공약을 다듬는 중이다.

코로나19로 인해 회사 경영이 신통치는 않지만, 직장생활을 하며 내조하는 아내의 존재는 더 없이 큰 힘이 된다. 또 그 아내의 뒤에서 묵묵히 응원해 주는 장인어른도 김 위원장에겐 평생 은인이다. 대전시 고위 공무원(이중환 전 경제산업국장)을 지낸 장인답게 사위가 정치인으로서의 모습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주는 버팀목이다.

김 위원장은 "언제나 저를 응원해 주는 아내와 장인어른에게 감사하고 고맙다"며 "가슴 따뜻한 정치인이 되도록 더욱 노력할 것이며, 어릴적 저에게 도움을 줬던 고향 발전을 위해, 그리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각오를 나타냈다.

김 위원장의 정치에 대한 의지는 그의 자녀 사랑에서도 나타난다. 아들과 딸의 태명이 각각 대통령을 뜻하는 '통령'과 '총리'였다. "제 자녀들이 예의바르게 잘 커서 큰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정치를 한다면 적극 돕겠다"면서 젊은 아빠의 웃음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인생의 가치관을 묻는 질문에 그는 "살아 남으면 언제든 기회가 온다고 생각한다"면서 "더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해 사람들이 힘들 때 같이 울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힘줘 말했다.

김 위원장은 2018년 지방선거에 대전시의원에 출마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2022년 지방선거에도 출마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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