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기천의 확대경

모든 사물에는 명칭이 있고, 명칭은 그 사물을 상징하는 핵심적인 요소다. 따라서 명칭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때문에 우리는 사물이나 상징에 가장 가깝고 인식하기 좋은 명칭이나 용어를 붙이고자 궁리한다. 또한 길고 복잡한 명칭을 간결하고 상위개념의 인상을 주는 방향으로 바꾸어 가는 추세다. 

최근 정진석 국민의힘 국회의원(충남 공주·부여·청양)은 정부 행정기관 명칭에서 위계적 구조를 나타내는 ‘중앙’, ‘지방’ 표현을 삭제하는 ‘정부조직법’, ‘법원조직법’, ‘검찰청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정부조직법에 ‘중앙행정기관에는 소관 사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때에는…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지방행정기관을 둘 수 있다’고 규정되어있다. 현재 일정지역을 관할 하고자 설치된 기관 명칭에는 ‘지방’이라는 표현을 포함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몇 년 전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에 따르면, 정부 행정기관의 명칭에 ‘지방’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기관은 14개 정부 부처 산하에 총 153곳인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면 지방법원, 지방보훈청, 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 지방국세청, 지방조달청, 지방통계청, 지방우정청, 지방검찰청, 지방병무청, 지방산림청, 지방기상청, 지방환경청, 지방노동청, 지방국토관리청, 지방해양경찰청, 지방산림청? 등이 있다. 

‘지방’은 공간적으로는 서울이외의 지역을 일컫는 용어이지만 행정기관에서는 ‘서울지방국세청’, ‘서울지방조달청’ 등 서울에 소재하고 있는 기관도 중앙부처 소속 하부기관일 경우에는 기관 명칭 앞에 ‘지방’을 붙인다. 

일반적으로 ‘지방’이라함은 상대적으로 중심에서 벗어난 주변, 즉 변두리라는 인식이 퍼져있다. 상하관계를 나타낸다고도 볼 수 있다. 정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기관 명칭에서 ‘지방’을 삭제해도 관할 구역 식별에 어려움이 없으므로 특별지방행정기관 명칭을 ‘특별관할 행정기관’으로 용어를 정비해 위계적 구조를 배제한 표현을 사용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가기천 전 서산부시장, 수필가
가기천 전 서산부시장, 수필가

이미 지방경찰청은 올해 1월부터 ‘지방’을 빼고 ‘시·도 경찰청’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이로 인해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는 여론은 듣지 못했다. 이번 개정안의 조속한 처리로 중앙과 지방이라는 수직적 위계와 종속적 인식구조를 바꾸는 계기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지방공무원’ 명칭에서 ‘지방’을 지울 것도 제안한다. 이 일은 2014년에 추진한바 있으나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당시 안전행정부장관은 “지방자치단체가 국가기관과 상하관계라는 인식자체를 바꾸기 위해 지자체 공무원의 직급이나 기관 명칭에서 ‘지방’을 삭제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지방행정주사’나 ‘지방행정사무관’, ‘지방기술서기관’ 등 직급명칭에서 ‘지방’을 삭제할 방침이라고 했으나 장관이 바뀐 후 없던 일이 되었다. 

사실 국가공무원이나 지방공무원은 신분보장이나 보수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동일 직급에 같은 호봉이면 국가직이나 지방직이나, 중앙부처 공무원이나 일선 공무원이나 봉급액은 같다. 고시에 합격해 국가기관에 발령을 받으면 국가공무원이 되고 지방자치단체에 임용되면 지방공무원의 신분을 가진다. 

즉, 국가직과 지방직의 차이는 임명권자가 누구인가, 법적으로는 국가공무원법의 적용을 받느냐 아니면 지방공무원법에 따르느냐에 달려있고 또한 보수재원이 국비인가 지방비인가에 따라 구분한다. 이참에 지방공무원법 개정을 함께 추진하기를 기대한다.

또한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의료원에 ‘지방’을 붙여 왠지 차별하는 감을 갖게 하는 ‘지방공사 ○○의료원’이라는 명칭도 바꾸었으면 한다. 지방공기업 성격상 대내적으로는 ‘지방공사’를 붙여도 무방하겠으나 굳이 대외적으로까지 붙여야 할까는 의문이다. ‘천안의료원’, ‘서산의료원’이라고 하는 것이 부르기도 쉽고 위상으로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비록 작은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명칭 하나가 주는 의미와 바라보는 인식은 다르다. 정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부터 차별적인 요소나 상하관계, 변두리라는 인식을 주는 명칭은 하루 빨리 바꾸어야 할 것이다. 시대적 변화의 흐름에 맞추어 사회 각 분야에서 차별적인 요소를 제거하는데 힘써야 할 것이고 그 하나가 행정기관 명칭을 바꾸는 일이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