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창호의 허튼소리]

나창호 수필가(전 충남도 부여부군수).
나창호 수필가(전 충남도 부여부군수).

청백리는 고려시대에도 있었고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아니 그 이전 시대부터 있었을 것이다.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평생 새기며 살았다는 최영 장군도 청백리임이 분명하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네 임금을 섬기며 우의정까지 지낸 유관(柳寬)도 평생을 청렴하게 살았다고 한다. 어찌나 청렴한지 울타리조차 없는 집에서 살았는데, 어느 해인가 비가 한 달이 넘게 내리자 집이 여기저기 줄줄 샜다. 우산을 받쳐 든 유관이 “우산조차 없는 집에서는 이 장마를 어찌 견딜꼬?” 하며 걱정했다고 한다. 얼마 전 통장에 15억원 가까이나 넣어놓고도 돈이 필요하다며 전세 값을 턱없이 올렸다가 자리를 물러난 어느 고위공직자가 생각난다. 아무리 시대상황이 다르다 해도 파렴치함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영의정 자리에만 18년이나 있었다는 황희 정승도 청백리의 대명사다. 기와집이라고는 하나 서까래가 시커멓게 썩고 성한 기왓장이 없어 곧 무너질 것 같은 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황희의 청렴함은 한결 같았고, 나라의 재물을 아끼고 공무를 처리함에 있어서도 대단히 엄격했다. 그가 영의정일 때 국사를 논의하기 위해 삼정승을 비롯해 판서들이 모두 모였는데 공조판서 김종서가 공조로 하여금 약간의 술과 음식을 마련해 삼정승 이하 판서들을 대접하게 했다. 이에 황희는 사사로이 음식을 제공했다면서 김종서를 호되게 꾸짖었다. 시장하면 국가예산이 책정돼 있는 예빈사(禮賓舍)로 하여금 음식을 마련해 오게 해야지 공조에서 명목에도 없는 예산을 지출하느냐며 나무란 것이었다. 요즘 총리를 지낸 분들까지 국가재정 형편은 고려하지 않고 퍼주기 공약을 선호하는 것을 보면 과연 그것이 합당한 일인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영조 때의 청백리 김수팽은 호조에서 (그리 높은 자리가 아닌) 관리로 일했다. 그의 동생도 말단 관리였는데, 어느 날 동생 집에 놀러갔더니 뜰에 염색물감이 담긴 항아리들이 즐비했다. 제수(弟嫂)가 어려운 집안 살림에 보탬 하려고 옷감 물들이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초지종을 들은 김수팽은 불같이 화를 내며 “형제가 나라의 녹을 먹는데 곤궁하면 곤궁한 대로 살 일이지 관리의 집에서 영업을 하면 관리체면은 무엇이 되며, 생활이 어려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살라는 것이냐”며 물감을 모두 쏟아버렸다고 한다. 시대를 불문하고 찾아보기 힘든 청백한 공직자가 아닐 수 없다.
 
청백리는 맑고(淸) 깨끗한(白) 관리(吏)다. 즉 청렴하고 결백한 공직자를 이름이다. 청백정신은 청렴하고 결백한 정신을 말한다. 곧 공직자들이 지녀야할 맑고 깨끗한 정신이다. 이런 정신을 지닌 청백리들이 조선시대에만 218명이나 있었다고 한다. 영의정 같은 고위층도 있었고 아전 같은 미관말직도 있었다. 이들은 하나 같이 공직사회를 썩지 않게 하는 소금이었고, 사회를 밝게 비추는 빛이었다.

어느 학자는 말했다. ‘약소국 우리나라가 고유의 문화를 발전시키고 나라를 유지해 온 원인 중 가장 큰 것의 하나는 청백리가 많았다고. 어느 나라의 역사에서도 우리나라처럼 청백리가 많은 나라를 찾아내기가 어렵다고. 훌륭한 영도자와 청백한 관료들에 의해 나라가 융성하고, 포악·우매한 영도자와 탐관오리들에 의해서 나라가 쇠퇴한다고.’ 

이달 초에 5개 부처 장관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렸는데 야당이 세 사람에 대해 부적격 판정하고 청문보고서 채택을 거부하는 사태가 일었었다. 우여곡절 끝에 한 사람은 낙마하고 두 사람은 끝내 임명이 됐지만 이들에 대한 야당의 부적격 판정은 매우 합당했다고 본다. 

야당이 낙마 1순위로 꼽은 과기부장관 후보자는 아파트 다운계약, 논문표절 의혹과 더불어 교수 시절 국비로 해외학회에 참석하면서 수차례나 딸들과 남편을 동반하고, 세금을 체납한 일이 있으며, 제자들의 논문에 남편을 공동연구자로 십 수차례나 등재하는 등 부적격 사유가 제시 됐었다. 숱한 부적격 사유에도 불구하고 여성이라서 장관에 임명했다니 납득하기가 어렵다.

또 한 후보자는 영국에서 외교관 생활을 하다가 귀국할 때 부인이 고급 샹들리에와 1250여 점에 이르는 영국산 도자기를 외교행낭으로 반입하고, 일부는 SNS로 판매까지 했다고 한다. 이 후보자는 결국 낙마했지만 영조 때의 청백리 김수팽을 생각하면 착잡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 한 사람은 부인이 절도행위를 해 벌금형을 선고받은 바 있고, 그가 정부 관료로 세종시에 거주할 때는 특별 분양받은 아파트를 사용하지 않고 관사생활을 하다가 이를 처분해 고액의 차익을 남기는 등의 부적격 사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능력 운운한 모양인데 설사 능력이 뛰어나다 해도 하필 국토부 장관에 임명했다니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공자는 “덕 없이 머리만 좋은 사람은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天才不用)”고 했다는데 미래가 궁금하다. 

인사는 만사라고 한다. 하지만 이번의 인사는 아무래도 만사가 아닌 것 같다. 떠들썩한 정치권과 달리 민심의 밑바닥을 소리 없이 흐르는 잔잔한 물결이 언제 어떤 파문을 일으킬지 모를 일이다. 기왕에 임명된 당사자들이 늦게라도 옛 청백리들의 청백정신을 본받아 국민을 위해 사심 없이 일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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