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미래다] 김미영 아산시의원이 말하는 '생활정치의 가능성' 
남다른 출생 ‘업둥이’…‘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대변자 되다

급변하는 시대 상황에 맞춰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는 인물의 발굴과 육성이 요구되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못하다. 

대전과 세종, 충남지역에서도 새시대를 이끌 새 인물에 대한 관심이 높은 가운데 창간 20주년을 맞은 <디트뉴스24>가 10년 후 지역사회 각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할 동량 찾기에 나선다./편집자 주

김미영 아산시의원. 자격증만 24개인 그는 끊임 없이 공부하는 부지런한 의정활동으로 유명하다.  
김미영 아산시의원. 자격증만 24개인 그는 끊임 없이 공부하는 부지런한 의정활동으로 유명하다.  

훤칠한 키와 맵시 넘치는 스타일. 초선 같지 않은 세련되고 담담한 어조. 어린이날을 앞둔 지난 4일 만난 김미영 아산시의원(40, 더불어민주당, 배방·송악)의 인상은 그랬다. 부족함 없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살아온 ‘똑순이’ 같다고 할까.

실제로 그의 공부욕심은 대단했다. 상담심리학 학사, 사회복지학 석사에 이어 정보통신융합 박사과정에 도전 중이다. 의정활동과 병행하다 보니 난관도 많지만, 끊임없이 무언가를 배우고 공부하고 있다. 한마디로 욕심이 많다. 아니 ‘적당히를 모른다’는 표현이 보다 정확한 것 같다.

김 의원은 궁금증과 부딪히면 배우고 본다. 지니고 있는 각종 자격증만 23개에 이른다. 각종 심리·상담 관련 자격증은 물론, 유통관리사, 개인정보보호 전문가, 반려견 행동교정사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생활에서 배움의 필요성을 느끼고, 해당 분야를 공부하면서 얻은 지혜는 의정활동의 결과물로 이어진다. 

대표적인 입법활동을 보면 ▲아파트 고령 근로자 고용안정과 권익보호 지원 조례안 ▲동물보호 및 관리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출산장려금 및 다자녀가정 지원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장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 조례안 ▲한부모가족 지원 조례안 등이 있다. ‘사회적 약자’라는 키워드가 공통된다. 지난 2018년 처음 시의원에 도전할 때도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겠다”고 각오를 밝힌 그였다. 

공부욕심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 외모와 대조되는 말투. 김 의원의 특징들이 왠지 연관성이 부족해 보였다. 이런 의문도 잠시, 짧지 않은 대화 뒤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학업의 열망 불 지핀 수모의 시간들 
“공부, 좋아서 하기 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보상”

지난 2018년 모습. '사람의 권력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메시지가 인상적이다. [김미영 의원 페이스북]
지난 2018년 모습. '사람의 권력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메시지가 인상적이다. [김미영 의원 페이스북]

“공부를 좋아하기 보다는, 배우는 행위가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보상이라고 생각해요. 나의 발전을 위해 투자한다는 만족감 같은 거죠. 예를 들면 악세서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새로운 공부를 할 때마다 자신에게 책가방을 선물했어요. 그게 좋았어요.”

경기도 포천이 고향인 김 의원은 ‘해가 뜰 때까지’ 놀기 좋아했던 20대 초반을 보냈다. 하지만 그런 생활 직후 서울의 한 유치원 보조교사로 시작한 사회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촌티를 벗지 못한 앳된 비전공자를 기다긴 건 혹독한 멸시와 수모였다. 청소와 잡일을 도맡으며 아침 7시에 출근해 새벽 2시에 퇴근하는 생활을 반복해야 했다. 학부모 방문 때는 주방에 숨어있으라는 모욕도 감내해야 했다. ‘공부’에 대한 욕심이 꿈틀거렸다. 그때부터 틈만 나면 공부를 시작했다.

당시 일기장에는 ‘원장님과 나, 누가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보자’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그가 어떤 각오로 하루하루를 버텼는지 가늠케 한다. 그리고 최후까지 버틴 사람은 김 의원이었다. 매일같이 30명의 원아들에게 일일이 손편지를 써준 정성은 학부모들의 인정을 받았고, 24살 때 자치구 내 최연소 주임을 거쳐 영어유치원 부원장으로 승진한다. 

“몸이 아파 병원에서 링거를 맞으면 학부모님들이 알아서 하루를 등원시키지 말자고 하기도 했어요. 그때 다니던 7살 꼬마가 얼마 전에 군대 간다고 문자가 왔어요. 이때 한국자살예방시민연대의 자살예방운동도 같이 하게 됐는데, 이런 경험들이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게 만든 것 같아요.”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했던가. 남들보다 다소 늦었지만,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자살예방상담을 거치며 김 의원의 학업은 깊이를 더해간다. 각종 아동 및 심리학과 상담분야에서 학업과 자격증을 취득하던 시기다. 일을 더 잘 하고 싶은 마음이 학구열로 승화된 셈. 정보통신융합 박사과정 역시 독거노인을 돌볼 수 있는 로봇기술을 찾기 위한 도전이었다. 왜 공부를 ‘보상’이라고 표현했는지 납득이 갔다.

‘업둥이’ 불구, 가장 예쁨 받은 어린 시절
“약자의 편에 서는 게 운명일지도…”

김미영 의원은 뒤늦게 '업둥이'였던 사실을 알게됐다고 털어놓았다.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암시한 페이스북 글.
김미영 의원은 뒤늦게 '업둥이'였던 사실을 알게됐다고 털어놓았다.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암시한 페이스북 글.

어린 김미영은 온 동네 사람들이 가장 예뻐하는 아이였다. 본인도 어른이 되면 당연히 미스코리아가 될 거라고 믿을 정도였다. 부모님도 너무 예뻐하셨다. 오죽했으면 한 살 아래 여동생은 서른이 다 될 때까지 ‘부모님은 언니가 원하는 것은 다 들어주셨다’면서 원망했을까.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였다. 술에 취한 작은 아버지로부터 자신이 ‘업둥이’였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의외로 충격은 크지 않았다고 한다. 서른다섯 해가 지나도록 전혀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사랑을 듬뿍 주신 부모님의 고마움이 더 컸다. 함께 보안을 유지해준 동네 어른들께도 감사했다. 그는 마을이 사랑으로 키운 아이였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서는 게 내 운명이구나 생각했어요. 태어나자마자 누군가의 문 앞에 버려진 아이, 사실 어느 누구보다 작은 존재잖아요. 나중에 들은 거지만, 어머니가 항상 제 전화를 받을 때 ‘왜 미영아’라며 긴장하셨던 이유도 제가 그 사실을 알고 전화했을까봐 마음을 졸이셨던 거였어요. 어쩌면 제가 가진 당첨운은 부모님을 만날 때 다 써버린 것 같아요.(웃음)”

덤덤하게 말하는 김 의원의 얼굴은 구김 없는 미소가 가득했다. 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부모님을 뽑는 이유이기도 하다. 불편했던 동생과의 관계도 오히려 ‘출생의 비밀’을 공유한 뒤 좋아졌다고 귀띔한다.

이런 남다른 경험과 이력들은 심리학 분야에서 두각을 보였다. 열악한 환경의 사람들을 만났을 때 공감하는 진동 폭이 달랐다. 자신도 이해 못한 심리적 상황을 진단 받았을 때 감사해 하는 상담자들을 보며 천직이라 생각했고, 직접 한국자아교육개발원을 설립해 강사 양성에 나선다. 본격적인 활동가의 삶이 시작됐다.

우연히 만난 아산, 운명의 전환점
‘정당정치의 상향식 변화’…생활정치가 갖는 힘

이후 장애인 재활활동과 심리상담 강의 등 그의 무대는 전국으로 확대된다. 하지만 서울에서 전국을 다니는 건 쉽지 않았기에, 외래교수로 강의를 다녔던 경찰교육원이 위치한 아산시 배방읍 북수리에 자리를 잡는다. 한국자아교육개발원 소속 강사들의 쉐어하우스 겸 활동거점으로 삼았다. 그리고 아산에 반하게 된다. 

김 의원은 '생활정치를 통해 중앙과 정당정치가 별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확신을 보였다. 
김 의원은 '생활정치를 통해 중앙과 정당정치가 별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확신을 보였다. 

그의 눈에 비친 아산은 도농 복합도시로서 한적한 여유로움과 꿈틀거리는 가능성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었다. 다른 한편에서도 운명의 실이 닿았다. 양성평등교육원의 미국연수에서 인연이 된 여성인권운동단체에서 정춘숙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경기 용인시병)을 알게 됐고, 지역구인 강훈식 국회의원을 소개받는다. 시의원이라는 전환점을 가져다 준 만남이었다.

처음 시의원 제안을 받았을 때 김 의원은 ‘할 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에 거절한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건 인권운동보다 제도권 안이 더 빠르다는 말을 듣고 출마를 결심하고 당선에 성공한다. 그때 마음속 기도가 ‘사람의 권력에 굴복하지 않게 해달라’였다고. 이렇게 발을 들인 시의회에서 어느덧 3년차를 맞고 있다. 

첫해에는 ‘정치인은 이래야지’라는 사람들의 인식에 맞춰 사는 게 어려웠다. 이제는 본인의 자유로움과 사람들의 시선 사이 중간지점을 찾았다. 그리고 정책적으로 민원을 해결하고, 자신과 주변의 이야기를 정책으로 만들어가는 게 너무 멋지고 재미있다. 무엇보다, 시의회의 ‘생활정치’가 갖는 힘에 확신을 갖게 됐다. 지방의회가 정당공천제라는 틀에 묶여 자율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우려와 상반되는 시각이다.

“시의원들의 생활정치가 중앙의 정당정치를 바꿀 수 있다고 믿어요. 가까운 예로, 경로당에 필요한 접이식 식탁을 직접 업체에 의뢰해 보급하는 시범사업이 있는데요. 반응이 좋았고 타 시·군에서 문의전화가 왔어요. 이런 식으로 작은 것이라도 퍼지고 확산되면 중앙정부와 정당정치를 움직이는 상향식 정책이 될 수 있지 않겠어요? 이런 게 생활정치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작은 존재에서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대변자가 된 김미영 의원. 그의 생활정치가 어떤 열매를 맺을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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