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로 지칭되는 ‘노인’, 안타까운 일

한기원 칼럼니스트
한기원 칼럼니스트

프랑스의 낭만주의 작가 빅토르 위고가 35년 동안 마음속에 품어 오던 이야기를 17년에 걸쳐 완성해 낸 작품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은 프랑스의 19세기를 관통한 역사적 격변이 생생하게 담긴 역사소설로 당시 사람들의 지난한 삶과 한을 담은 민중 소설인데, 현대에 이르러서는 점차 궁핍으로 내몰리는 ‘노인’을 지칭하기에 이르렀다.

오래 전 얘기지만 숭실대 정재기교수팀이 연구한 자료에 따르면,
부모의 소득이 많을수록 자녀와 자주 만나며, 부모의 소득이 1% 늘어나면 자녀와 1주일에 한 번 이상 만날 확률이 2.07배 이상 높아진다는 통계는 가정의 달 5월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 통계는 얼핏 우리의 자식들이 유독 부모 재산을 탐내는 이기주의적 성향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조금만 깊이 살펴보면 사실 꼭 그렇게 볼 것만은 아니다.

우리의 자식들은 외국의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대부분 어떤 형태로든 부모 부양의 짐을 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은 노인 복지를 향상시키려는 노력이다.
부모 봉양을 자녀에게만 떠맡기고 효를 강조하던 시대는 지나지 않았던가.

마땅히 효(孝)가 바탕이어야 할 부모 자식 관계에 돈이 더 큰 자리를 차지한 것은 배금주의의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배금주의를 극복하고 건전한 가족관계를 복원할 수 있는 국민적 각성운동이 시급하다.

우리 주변의 어버이날 풍경은 대체로 정겹고 훈훈하다.
부모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은혜를 기리는 모습은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내리사랑 못지않게 부모공경 또한 각별했던 게 우리 사회의 전통이었다.
지성으로 웃어른 섬기는 게 인간의 도리이고 자식된 보람으로 여기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경로효친의 실천은 오랜 세월 가정의 질서를 주도하고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지탱시켜준 토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대상황의 변천에 따라 이처럼 훌륭한 전통이 날로 퇴색해감은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니다.
핵가족화와 함께 서양식 합리주의라는 미명 아래 부모의 품을 벗어나려 애쓰는 게 요즘 세대의 특성이다.
부모와 자식사이에까지 확산된 이기주의 풍조는 효정신을 한낱 구시대의 유물쯤으로 치부하기에 이르렀다.

노인들도 홀대받지 않고 경제활동에 참여하도록 정년 연장과 일자리 할당제, 임금피크제 등의 도입을 서둘러 확대해야 한다.
노인 인력 활용에 경제의 미래가 달렸다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

고령화 정도는 총 인구 대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인 고령인구 기준으로 판단한다. 7~14%인 경우 고령화 사회, 14~20%인 경우 고령사회, 20% 이상을 초고령사회로 분류한다.

우리나라의 고령화율은 2019년 기준 14.9%로 고령사회에 해당한다. 오는 2067년에는 46.5%까지 증가할 가능성이 높아 초고령 사회로의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여기다 한국개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의 기대수명 증가 속도는 OECD 회원국 중 2위이다. 
더 큰 문제는 소득이나 재산이 전혀 없는 노인가구가 전체의 32%나 된다는 점이다.

노인복지의 요체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노인에게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어느 정도 여유 있는 노인에게는 사회참여와 문화향유의 여건을 갖춰 주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지혜와 봉사와 푸근함을 젊은 세대에게 나눠주는 당당한 사회 구성원 역할을 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노인복지를 국가·사회 차원에서 다시한번 진지하게 고민하고 해법을 구체화해야 한다.

이 문제는 결국 정부와 사회가 맡아서 풀어야 한다.
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정책을 개발하고 강력히 실시해 가장 심각한 노년층의 빈곤을 해소하고 사회와 기업은 노인들이 일을 통해 사회참여의 보람을 얻도록 적극 협력해야 한다.

이와 아울러 장기적으로 교육을 통해 윤리와 도덕을 재건, 효를 바탕으로 해서 노인문제가 원활하면 청소년문제도 한결 가벼워짐을 일깨워야 한다.
어느 한 계층만의 일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늙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실은 이미 붕괴된 전통윤리를 거론하고 사회의 도덕성 회복이나 언급할 만큼 한가롭지 않다.
‘노인’이 더 이상 ‘레미제라블’로 지칭되어져야 하는 사회는 참으로 불행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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