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미래다] 신은미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급변하는 시대 상황에 맞춰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는 인물의 발굴과 육성이 요구되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못하다. 

대전과 세종, 충남지역에서도 새시대를 이끌 새 인물에 대한 관심이 높은 가운데 창간 20주년을 맞은 <디트뉴스24>가 10년 후 지역사회 각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할 동량 찾기에 나선다./편집자 주

신은미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어린이도서관 확충 운동으로 시작했지만, 예산과 홍성은 물론 충남 전역의 환경문제를 다루는 활동가로 자리잡았다. 
신은미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어린이도서관 확충 운동으로 시작했지만, 예산과 홍성은 물론 충남 전역의 환경문제를 다루는 활동가로 자리잡았다. 

흔히 환경운동 하면, 지구촌의 미래와 운명을 논하는 거대담론과 전문가의 영역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왠지 문명의 이기를 모두 외면한 채 자연의 불편을 오롯이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는 부담감이 그것이다. 사람들이 ‘환경운동’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충남지역에서 가장 왕성하게 움직이는 환경운동 활동가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신은미(41)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의 얘기다. 농민들이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이는 4월의 끝자락인 29일 홍성군 홍동면의 마을협동조합 식당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화장기 없이 햇볕에 그을린 까무잡잡한 피부임에도 그의 미소는 너무나 환했다. 

‘지방’과 ‘환경’, 그리고 ‘농촌’
책 읽기 좋아한 소녀를 ‘활동가’로 이끌다 

경기도 포천, 농촌마을이 고향인 신 국장은 유독 ‘읽기’를 좋아했다. 한글을 읽기 시작한 유년시절 읽을 수 있는 글자에 목이 말랐다. 책이 귀했던 시골 농촌은 간판이나, 활자로 된 안내문도 많지 않았다. 그 갈증은 학창시절로 이어져, 도서실 단골손님으로 자라게 됐다. 고등학교 때 만난 독립도서관 사서 선생님의 친절함은 그를 주저 없이 대학 문헌정보학과로 이끈다.

그런데 대학에서 배운 학문은 기대와 달랐다. 사람들이 책을 좋아하게 만드는 방법을 원했지만 검색과 정리, 관리를 위한 숫자와 기술, 자격증이 기다렸다. 그러던 중 시민단체의 어린이도서관 확충 운동에 참여한다. 방송을 통해 사회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친 이 독서운동에는 많은 건축가와 사회단체들이 참여했고, 그들과의 만남은 인생의 첫 번째 전환점이 된다. 

어린이도서관 짓기 운동은 상대적으로 문화혜택이 적은 지방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 때문에 신 국장은 지방의 중·소도시 40여 곳을 답사한다. 서울 말고도 살기 좋은 곳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고, 자신보다 지역의 발전과 공익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신 국장은 이때부터 귀촌을 꿈꾸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침, 충북 제천의 대안학교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소식을 접한다. 직장생활을 하며 정착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5년간 지냈다. 아이들과 지내며 스스로도 성장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다만 농사를 제대로 짓고 싶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래서 농사를 배우러 다닌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하던 시기였다. 

신은미 사무국장(왼쪽)이 탄소중립운동과 탈석탄 캠페인을 벌이는 모습.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 제공]
신은미 사무국장(왼쪽)이 탄소중립운동과 탈석탄 캠페인을 벌이는 모습.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 제공]

“큰 충격이었어요. 기존에 기본으로 깔려 있던 환경에 대한 인식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죠. 마음 편히 농사를 짓고 살 수 있으려면 환경 문제에 관심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죠. 이때부터 활동가로서 자아를 찾았던 거 같아요.”

이를 계기로 신 국장은 환경의 가치를 내걸었던 녹생당의 과천시장 캠프에서도 활동한다. 선거 이후 진로를 고민한던 중 2014년 지인의 소개로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 출범에 동참하며 본격적인 ‘활동가’의 길을 걷게 된다.

도시보다 열악한 농촌의 ‘환경문제’
‘정통’ 벗어난 시각…다양한 활동의 원천

농촌은 깨끗하고 친환경적일 거라 생각했다. 텃밭을 가꾸고 주민들과 어울리며 ‘반 활동가, 반 농부’로 살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홍성과 예산의 농촌지역은 도심지가 만나기 힘든 폐기물매립장, 산업단지 조성, 축산업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도시에 제공되는 전기와 고기를 위해 석탄화력과 축산업 생산지역은 고스란히 피해를 겪어야 했고, 자연훼손뿐 아니라 공동체의 파괴, 농촌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었다. 

“꼭 환경운동을 해야겠다는 건 아니었지만, 내가 좋아해서 살기로 한 동네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것 같아요. 농촌에 살지 않았으면 모를 일들을 많이 만났고, ‘혼자서는 어렵겠다. 모두 함께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죠.”

앞서 언급했듯 신 국장은 ‘정통’ 환경운동가가 아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생활형 활동가’라고 할까. 그래서 전문가를 찾아 나섰고 비상근 전문인력 3명(축산·미세먼지·행정)이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에 합류한다. 공교롭게 3명 모두 환경운동가는 아니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환경운동은 선배들과 결이 달랐다. ‘심판’과 ‘응징’이 아닌 ‘협의’와 ‘실험’에 무게가 실렸다. 

대표적인 게 축산분야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돼지를 키우고 있는 홍성은 악취와 축사주변 오염, 밀식 사육이 현안이었다. ‘환경파괴를 줄이고, 건강한 고기를 위해 돼지를 더 잘 키울 방법은 없을까’라는 고민으로 다양한 시도를 한다. 불필요한 축산소비를 줄이기 위해 채식을 늘렸고 오리농법 등 홍동지역 친환경농법에 집중한다. 

직접 돼지를 입식해 키우기도 했다. ‘예산’과 ‘홍성’이라는 이름을 붙인 두 돼지는 텃밭이 있는 정원에서 방목형으로 키워졌다. 동네 유기농 두부공장의 비지 등 사료보다는 농업부산물로 밥을 줬고, 온 동네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아이들 친환경교육에도 ‘살아있는 교재’가 됐다. 하지만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유행하며, 축사로 보내던지 도축을 해야 하는 운명을 맞는다.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사육했던 돼지 예산이와 홍성이. 아프리카 돼지열병이라는 복병을 만나 조기 중단됐지만, 지역의 축산문제를 현실적으로 고민하는 상징적인 계기로 평가받고 있다.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 제공]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사육했던 돼지 예산이와 홍성이. 아프리카 돼지열병이라는 복병을 만나 조기 중단됐지만, 지역의 축산문제를 현실적으로 고민하는 상징적인 계기로 평가받고 있다.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 제공]

“주민들과 회원들이 3시간동안 회의한 끝에, 축사로 들어가는 것보다 ‘행복하게 살다가 그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먹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순환구조를 만들자’는 취재에 맞게 국밥을 해먹었어요. 뼈는 묻어주고 장례의식도 치러줬죠. 사람들이 돼지가 자라는 과정을 함께 보고 앞으로 축산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고민하는 상징적인 계기가 됐다고 생각해요.”

예산군 대술면의 폐기물처리장도 큰 충격이었다. 대규모 매립장이 들어설 마을의 주민들이 사업 허가 때까지 전혀 내용을 모르고 뒤늦게 대응할 수밖에 없는 현실, 앞으로 도시의 폐기물 처리를 위해 끊임없이 위협받아야 하는 농촌이 처한 위기에 눈을 떴다. 현재는 예당2산단이 가장 큰 관심사다. 이미 열악한 환경에 대한 해결 없이 더 큰 위험소지를 안게 된다는 이유에서 반대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이외에도 장례식장 일회용품 줄이기 설문조사, 바닷가 폐기물 수집활동, 축제 모니터링 등 생활과 맞닿는 부분에서의 환경운동을 시도해 왔다. 

“예산군 덕산면 세탁공장도 주민들은 몰랐다가 뒤늦게 반대하니까 사업자와 주민들의 ‘민민갈등’으로 번지게 됐어요. 농촌지역에서 발생하는 환경문제들의 전형적인 공통점인데요, 본질적인 문제도 있지만 진짜 지역에 도움이 되는지 고민하고 공론화 되지 못하는 절차적 문제도 제기해야 할 것 같아요.”

자동차·스마트폰 없는 ‘슬로우 활동가’
“환경문제 관심 문턱 낮추는 일 가장 중요”

신 국장은 당초 정착하며 살게 될 홍동지역의 문제만 관심을 갖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도청이 이전하면서 홍성·예산은 충남의 모든 현안과 연관을 맺게 되고 그의 활동반경은 도 전역으로 넓혀졌다. 그럼에도 그는 아직도 스마트폰 대신 구형 폴더폰을,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이용한다. 마을 주민들이 차도 태워주고 연락도 대신해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도록 SNS활동도 해야 하고, 급변하는 현안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려면 자동차도 있어야 하지만, 왠지 빠르게 변하는 기류에 휩쓸리는 것 같아서 좀 망설여져요. 덕분에 농촌지역 대중교통 환경이 열악하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려고 현장을 다니게 돼요.(웃음) 좀 천천히 가더라도 다함께 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요. 스마트폰을 잘 사용하지 못하는 분들과 눈높이도 같이 하니까 좋지 않을까요?"

신은미 국장은 자동차 대신 자전거로 이동하며, 스마트폰 없이 구형 폴더폰을 사용하고 있다. 다소 느리더라도 함께 변화하는 세상을 꿈꾸는 그의 실천이기도 하다. 
신은미 국장은 자동차 대신 자전거로 이동하며, 스마트폰 없이 구형 폴더폰을 사용하고 있다. 다소 느리더라도 함께 변화하는 세상을 꿈꾸는 그의 실천이기도 하다. 

농촌의 보수적인 성향과, 농사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특성 때문에 군 단위가 연합한 지역에서 상근 활동가를 둔 환경단체를 운영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의 활동은 주목받고 있다. 특히 일상에서 대안을 찾는 노력, 생활형 환경운동은 시대의 변화에 대한 응답이 될 수도 있다.  

물론 해결해야 할 숙제도 많다. 회원들의 회비와 수익형 공모사업으로 운영재원을 마련하고 있지만 아직 열악하다. 물리적으로 부족한 인력, 상대적으로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는 현안과 대응력과도 연관된다. 이런 여유가 없다 보니 주민들과 같이 하는 구조에서 활동가가 주도해야 하는 환경운동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그의 미소는 빛을 잃지 않는다. 

“물질적으로 풍족하진 않아도 딱히 부족하지도 않아요. 주민들이 주는 쌀, 참기름, 감자·고구마는 마음을 풍요롭게 하죠. 주민들과 함께 현안을 해결하고 가치를 창출할 때의 만족감은 매우 높아요. 사실 마음의 짐 없이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는 문턱을 낮추는 일이 가장 중요한 지향점입니다. 농촌의 환경문제는 저희가 가장 잘 대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