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미래다]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대전 동구)
"국민들과 소통하고 공감하고 연대하면서 새로운 정치문화 만들겠다"

급변하는 시대 상황에 맞춰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는 인물의 발굴과 육성이 요구되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치 못하다. 

대전과 세종, 충남지역에서도 새시대를 이끌 새 인물에 대한 관심이 높은 가운데 창간 20주년을 맞은 <디트뉴스24>가 10년 후 지역사회 각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할 동량 찾기에 나선다./편집자 주

장철민 국회의원이 디트뉴스와의 인터뷰를 갖고 있다.
장철민 국회의원이 디트뉴스와의 인터뷰를 갖고 있다.

젊다는 것은 무엇일까. 

단지 연령이 낮아 혈기왕성하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꿈을 가지고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며 도전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내포한 것일까.

우리사회에서 30대의 나이로 세상의 주목을 받기는 쉽지 않다. 시대가 급변하면서 종종 30대에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들이 출현하고 있지만 기성세대들과 숫적으로 비교해 볼때 그다지 많은 규모는 아니다.

대전 출신으로 30대에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이가 있다. 주인공은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대전동구)이다. 장 의원은 1983년 생으로 우리나이로 서른 아홉살이고 만 나이로 서른 일곱이다. 30대 젊은 나이에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여의도와 대전을 오가며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공부 잘했던' 장철민 국회의원, 대전 동구에서 여의도 진출 성공

장 의원을 처음 만난 것은 2019년 가을께 원도심의 한 치킨집에서였다. 당시 훤칠한 키(184cm)에 미남형인 그가 기자에게 건넨 명함에는 '홍영표 국회의원 보좌관'이라는 직함이 적혀 있었다. 당시 한 시간 여 동안 자신이 걸어온 삶의 궤적과 앞으로 가고 싶은 길의 모습을 대략적으로 소개한 장 의원이었다. 기자 눈에 비친 장 의원은 지인의 소개로 처음 만나긴 했지만 정치를 꿈꾸는 신인 중의 신인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년 5개월 가량이 지난 지금은 '새내기 국회의원'으로 업그레이드됐다. 막연하게 정치를 꿈꾸던 지망생이 아닌 현실 정치에서 자신의 정치적 스펙트럼과 확고한 가치관을 토대로 너무나도 치열한 생존 경쟁속에서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는 '정치인'으로 거듭났다.

지난 16일 대전 동구 그의 지역 사무실에서 만난 장 의원은 '자신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당내외 인사들의 응원 및 축하 전화를 받느라 여념이 없었다. 기자와 만난 그날 오전 민주당은 원내대표 경선을 했다. 그리고 그 즈음 민주당은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재보궐선거에서 참패로 내홍이 한창이었다. 그 중심에 장 의원이 있었다. 장 의원은 당내에서 '할 말하고 제 목소리'를 내는 초선 5인방 중 한명이었던 것이다.

바쁜 시기였지만 기자 또한 그런 장 의원의 모습을 담기 위해 여러차례 인터뷰 요청을 했고 어려움(?)을 겪은 끝에 비교적 짧은 만남이 성사됐다. 기자는 장 의원에게 많은 질문을 쏟아내려는 심산으로 질문지를 만들었지만 대부분 허사로 끝났다. 워낙 바쁜 일정으로 인해 기자에게 허락된 시간이 많지 않은 이유에서다. 그래도 궁금한 것은 질문해야겠기에 인터뷰는 시작됐다.

장 의원의 어린 시절. 늘 모범생이자 공부 잘한 우등생이었다고.
장 의원의 어린 시절. 늘 모범생이자 공부 잘한 우등생이었다고.

첫 질문은 <디트뉴스24>가 창간 20주년을 맞아 새롭게 기획해 추진 중인 '인재발굴 프로젝트'에 주인공으로 선정된 소감을 물었다. 그랬더니 이런 말이 돌아왔다.

"젊은 사람들이 성장해야 지역과 국가가 성장" 디트뉴스 기획 공감

"저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대전과 충청지역에서 젊은 사람들이 성장해야 지역과 국가가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세대 뿐 아니라 다음 세대까지 성장할 수 있는 제도와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젊은 정치인들이 많이 있어야 합니다." <디트뉴스24>의 기획 의도에 100% 공감한다는 취지다.

사실 <디트뉴스24>도 장 의원처럼 젊은 정치인이 계속 발굴 육성되고 그런 정치인들이 지역사회의 발전을 이끌 선봉장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번 연중기획을 추진 중인데, 장 의원도 당내에서 젊은 정치인 찾기를 해야겠다는 마음은 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쉽지 않은 여건이라는 푸념을 했다.

장 의원의 어릴적 모습이 궁금했다. 어려서부터 키가 컸는지 공부를 어떻게 했는지 등등. 그가 설명한 자신의 성장 이력을 요약하면 이렇다. 1983년 동구 가양동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와 누나랑 함께 살았다. 과학상자나 레고에 한번 빠지면 4~5시간이 지나가는 줄 모를 정도로 집중력이 좋았다고 한다. 동네 친구들과 노는 것도 좋았지만 집에서 집중하는 걸 더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공부를 잘했다. 

초등시절 둔산지역으로 이사를 가면서 한밭초등학교를 다녔다. 6학년때 키가 164cm일 정도로 키도 크고 공부를 잘했다. 학급 반장은 늘 그의 차지였다. 한국해양대학교를 졸업하고 기관장으로서 해외에서 배를 타던 부친과의 추억은 다소 부족했지만, 학창 시절은 모범생이었다. 탄방중학교에서도, 서대전고등학교에서도 그의 장기는 유감없이 발휘됐다. 전교 1등 부근에서 늘 맴돌았다.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평상시 하는 얘기처럼 그도 공부가 재밌고 쉬웠다고 한다. 수업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혹여나 시간이 남으면 예습과 복습을 반복했다. 야간자율학습이 늦게 끝나 학원은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그만큼 학교 수업에 집중했다.  대학은 서울대학교로 갔다. 사회과학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실제 정치를 위한 진로가 아닌 활동 범위가 넓은 직역군을 선택하고픈 마음에서다. 국회의원이 되고자 마음 먹은 것이 아닌 막연하지만 정치나 언론, 그리고 관료 등 공공영역에서 일해보고픈 요량이 전공을 선택한 계기가 됐다.

이 때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게 된다. 부인과 같은 과 동기인 CC(캠퍼스 커플)이었다. 대학 3학년때부터 사귀기 시작해 10년을 연애하고 결혼에 골인했다. 지금은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부인과의 사이에 딸을 뒀다.

행정고시 실패..국회로의 진로 바꾼 결정적 계기된 사건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에 입대한 그는 진로에 대해 고민하다 공부 쪽으로 선회한다. 군 제대 후 1년 동안 행정고시를 준비한 그는 본인 스스로 "진짜 열심히 했다"고 말할 정도로 노력했지만 결국 낙방하고 공무원 시험을 포기한다. 하루에 11시간을 공부했지만 허사였다. 하지만 이 시기가 장 의원 본인에게는 인생의 과도기가 됐다. 

"진짜 열심히 준비한 행정고시에서 떨어진 뒤 곧바로 포기했는데 1년 동안 공부를 해보니 내가 바라는 내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게 됐어요. 국회에서 정당 정치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입법부를 선택했죠."

그가 이 시기에 깨달은 자기 모습은 바로 정당이나 국회에서 일하고 싶어한다는 것. 이때가 2011년. 마음을 고쳐먹은 장 의원은 국회에 공고가 뜨는 국회의원 보좌진 채용은 모두 응시했다. 그러나 번번이 탈락했다. 관련 아르바이트도 서슴치 않았다. 궂은 일을 마다않고 국회와 관련된 일은 찾아다녔다. 그러던 중 정치적 스승이자 인연을 만나게 된다. 바로 홍영표 국회의원이었다.

장 의원은 2012년 7월부터 2019년 9월 20일까지 홍 의원을 보좌했다. 처음에는 7급 정책 비서로 채용된 뒤 승진에 승진을 거듭한 끝에 보좌관에 이어 원내대표 정책조정실장(2급 상당)까지 지냈다. 그리고 지난해 4월 치러진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첫 출마 후 당선이라는 쉽지 않은 성적을 냈다. 여기까지가 그가 살아온 지금까지의 삶이다.

장 의원의 보좌진 시기는 홍영표 국회의원과 늘 함께였다.
장 의원의 보좌진 시기는 홍영표 국회의원과 늘 함께였다.

궁금했다. 왜 정치를 시작했고, 그가 꿈꾸는 정치는 무엇인지.

그는 대학 시절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역사의 현장에서 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통일부 관료가 돼서 평화적인 남북 통일을 이루고도 싶었어요." 

하지만 행정고시에서 실패를 맛본 뒤 정치 분야에 발을 들였다. 홍 의원실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홍 의원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이자 예결위 계수조정 위원으로 활동하고, 대선 상황실장까지 맡으면서 다양한 업무를 체험했다. 엄청난 속성과외로 쌓은 경험은 반대로 우리 정치의 민낯을 속속들이 알게 한 계기가 됐다.

이런 정치적 기반은 본인이 정치인으로 출마를 결심하는 데 원동력이 됐고 국회의원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자양분이 됐다.

장 의원은 "책임감의 크기는 가면 갈수록 커지는 것 같아요. 더구나 이번에 재보궐 선거 참패를 보면서 그 책임감은 완전히 다르고 더욱 강하게 느껴집니다"라며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당연하고 국가와 사회에 대한 책임의 무게는 갈수록 커지네요"라고 말했다.

"국민과 소통하고 공감하고 연대하면서 새로운 정치문화 만들터"

"예전에는 역사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남북 통일을 추진하는 정치인이 멋있어 보였는데 지금은 영웅적인 정치인이 활동할 수 있는 여건과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제 맞는게 오늘 틀릴 수 있고 어제 맞았던 정책이 오늘은 다른 부작용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부하고 국민들과 얘기하며 반성하고, 또 그 것을 정책에 반영하면서 계속 뛰는 정치인이 이 시대에 맞는 정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혼자 할 수 없어요. 지치기도 하고 너무 힘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정당이라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올바른 정당 정치가 필요합니다. 정당 정치가 발전하지 못하면 미래 걱정을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민주당이 더 나은 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올바른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장 의원은 최근들어 중앙 언론에 자주 회자되곤 한다. 그만큼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방증이다. 초선이라 위축되거나 숨 죽이지 않고 당내 잘못된 민주화에 대해 가감없이 쓴소리를 내뱉는 정치인, 바로 그가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런 그의 모습은 바라보는 위치나 성향에 따라 호불호가 나뉠 수 있다. 그래서 칭찬과 비난, 응원과 질책이 번갈아 그 앞에 다가오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올곧게 자신이 생각하는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결심한다.

장 의원은 국민들과 대화하고 소통하며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장 의원은 국민들과 대화하고 소통하며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갖고 있던 구체적인 방향성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개혁방향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국민들이 심판하는 겁니다. 왜 말로만 민주주의를 말하고 당내 민주성을 제대로 발전시키지 못했는가. 지도부가 결정하고 무조건 따르라는 것은 절대 안됩니다. 민주당이라는 이름답게 당이 갖고 있는 민주성을 다시한번 고찰하고 끊임없이 치열하게 반성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장 의원이 바라는 정치의 모습은 의외로 간단했다. 지역을 이끌 정치인들을 발굴하고 육성할 수 있도록 당내에서 선순환적인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들과 토론하면서 지역은 물론, 국가 전체적으로도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환경 조성,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주당 스스로도 비판을 수용하고 반성을 통해 새로운 정치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10년 전 저는 행정도시를 때려치고 입법부에서 일하고자 이력서를 넣었던 사람인데 10년이 지난 지금은 새로운 모습이 됐어요. 또 앞으로 10년 후 지금보다는 많이 변화한 사람이 돼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촛불을 보면서 진짜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람들과 만나 얘기하고 공감하면서 연대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정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같이 일하며 소통하고 공감하고 연대하면 10년 후에는 새로운 세대로서 새로운 정당과 정치의 모습을 실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10년 후 장 의원의 모습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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