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자들이여, 달빛창가에 눈을 씻어 보기를 권한다

한기원 칼럼니스트
한기원 칼럼니스트

그야말로 완연한 봄이다. 일찍이 담장 너머로 까치발을 섰던 하얀목련부터 삭막한 도심을 뒤덮은 소박한 듯 보이지만 고고한 자태의 벚꽃, 산야의 제비꽃, 민들레가 한창이다.

꽃이 진 뒤의 새하얀 깃털이 아름답다는 민들레, 철죽, 연산홍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분수에 맞게 척척 피워 올리겠지만 곧 가는 봄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싶기도 하니 아련하다.
한껏 기지개를 펴고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땅을 딛고 올라 온 초록의 향연은 우리의 크고 작은 근심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새삼 생각하게 만든다.

1980년,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도 여느 때처럼 봄이 왔었다. 이른바 80년의 봄. 자칭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쏜' 김재규의 손에 의해 박정희의 기나긴 독재는 막을 내리고 그 암울했던 대한민국에도, 그 삭막했던 서울에도 막연한 기대감이 피어오르던 시기 아니었던가. 그리고 그 기대감은 따사로운 햇살의 봄바람을 타고 꽃가루처럼 대학가를 중심으로 빠르게 흩날려 갔었다.
대학가의 열정적인 민주화 열망, 자유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 그야말로 기대 이상이었던 ‘봄’이 있었다. 그리고 그해 5월 18일, 광주는 고립되었다. 먼 훗날 역사는 박정희와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를 과연 어떻게 기록할까.

지금으로부터 9백여년 전 남송(南宋)의 4대 시인 중 하나인 양만리(楊萬里)는 월계(月桂)에 대해  바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싯구를 사용했었다.
그러니까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한다’는 일종의 봄꽃의 짧음을 탄식하는 말이었다.

이후 그 싯구는 젊음의 유한함, 인생의 덧없음을 비유하는 말로도 쓰여 왔다.
즉, 화무십일홍 뒤에 ‘인불백일호’(人不百日好 : 사람의 좋은 날도 백일을 넘기지 못한다)라든가, ‘세불십년장’(勢不十年長=權不十年 : 권세도 10년을 넘기지 못한다) 같은 댓구가 으레 수식어처럼 따라 다녔다.

요즘 4·7 재보궐선거로 인한 온갖 기계적 소음이 나라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그야말로 자연이 내는 푸르름의 소리를 압도하고 있다.
과거 선거가 ‘빨갱이시비’로 도배되었다면 이번 선거는 그야말로 온통 ‘부동산문제’로 난도질당하고 있는 양상이다.
이 땅의 모든 권력자들의 가슴에 북풍한설이 휘몰아치고 있다. 그 기막힌 민낯이 드러나고 있으며 그 끝을 알 수도 없게 되었다.

과거 수구세력은 ‘민족공동체의 진로에 대한 역사의식이 확실한 사람’을 ‘빨갱이’라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고 비판이라도 받아 왔지만, 이번 LH발 부동산게이트는 여야를 막론하고 그야말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블랙홀이 되어 버렸다.

선거결과를 차치하고라도 ‘정치’가 80년 5월의 광주처럼 완전히 고립된 모양새다. 사실 선거는 어떤 방식으로든 정치노선, 정책으로 검증받아야 하나 철저히 배제된 형세다.
어찌 보면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여야 모두는 포토제닉 이미지로 후보를 내세운 느낌마저 든다.
엄밀히 말해 국민이 보기에 그 어떤 후보도 정치인으로서 의미 있는 경력을 축적한 흔적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의 처절한 요구, 국민의 절실한 삶에 비해 이번 여야 후보는 모두 역사앞에 너무 빈약해 보이기까지 한다.
심지어 진실을 받드는 대범함 보다는 비겁함마저 엿보이니 국민은 허탈함을 넘어 배신감으로 큰 상처를 입고 말았다.  
어떤 꽃이든, 혹여 아무리 세상에서 아름답거나 별 볼 일 없고, 제멋대로 피는 꽃이라 할지라도 그 ‘꽃’은 끝내 모두 지게 되어 있다.

이 땅의 모든 위정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오늘 저녁, 창가에 앉아
달빛에
눈을 한번 씻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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