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창호의 허튼소리] 수필가, 전 부여 부군수

나창호 수필가.
나창호 수필가.

넥타이를 단정히 맨 친구가 사진 속에서 엷은 미소를 띠고 있다. 젊었을 때의 모습이다. 코로나 때문에 서너 명씩 나누어 절을 하려는데 “친구들은 여기 있는데 당신은 왜 거기 있어?” “당신은 왜 거기 있어?” 친구의 부인이 소리죽여 흐느낀다. 조문객을 맞는 친구의 두 아들도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에 얼이 빠진 듯 망연자실 서있다. 

비보를 접한 건 월요일 카톡을 통해서였다. 전날 고등학교 동창이 세상을 등졌다는 부고가 떴다. 말이 없고 점잖던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에 단톡방은 이내 불이 났다. 그동안 코로나 여파로 동창모임마저 중단한 채 서로 간에 소원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투병중이라는 말은 전혀 듣지 못했던 터라 사인을 묻는 말부터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말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속 시원하게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설왕설래 하던 중에 회장을 맡고 있는 친구가 그날 오후 5시까지 장례식장에서 모두 만나자고 해 단체로 조문하던 중의 슬픈 정경이다.

조문을 끝내고 서너 명씩 거리를 두고 자리에 앉았을 때 먼저 와서 사인을 알아봤다는 회장 친구가 말했다. 일요일에 동생과 함께 공주의 고향마을에 있는 밭일을 마친 후 (차를 가져간) 동생이 같이 대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을 “고향에 왔는데 친구들하고 술 한 잔 하겠다“며 동생을 먼저 보냈다고 한다. 이후 고향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고 나서 고향집으로 가던 중에 쓰러진 것을 행인이 발견했고, 행인이 부른 119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심정지가 됐다는 것이다. 

친구들은 ‘동생 따라 왔으면 아무 탈이 없었을 것’이라며 한탄하기도 하고, ‘요새 시골길에 사람이 있었겠느냐’며 일찍 발견하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 하기도 했다. 또 평소 당뇨가 심했던 고인이 ’저혈당 쇼크로 쓰러진 것 아니냐’는 추측들과, 그날은 전날 봄비가 온 탓에 기온이 많이 내려가고 바람까지 불어 추웠는데 저체온증이 왔지 않겠냐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아쉬워하고 한탄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났는데. 

술을 한잔씩 하면서 하는 말에는 견해들이 달랐다. 누구는 “산 사람이 걱정이지 죽은 사람이야 편한 것 아니겠냐”며 냉정히 말한다. 참나무 장작처럼 말라서 오랫동안 앓는 고통은 없었지 않느냐고 한다. 이미 죽은 사람을 자꾸 생각하면 뭐하냐는 체념의 말 같았다. 누구는 한 세대 전만해도 70이면 고래희라지만 아직은 아쉬운 나이라고 한다. 또 누구는 자식들도 몰라보며 몇 년씩 누워 고생만 하다가 가느니 조금 아쉽다 싶을 때 홀연히 가는 것도 복 아니냐고 한다. 하지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사람도 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누구는 가급적 오래 살고 싶을 것이고, 누구는 인간의 존엄성마저 상실한 추한 모습을 보이느니 조금이라도 좋은 모습을 보일 때 죽고 싶을 것이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도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서왕모(西王母)의 선도(仙挑)를 훔쳐 먹고 삼천갑자를 살았다는 동방삭(東方朔)이야기가 떠올랐다. 동방삭이 삼천갑자를 살고 나니 지혜가 쌓이고 영리해져서 저승사자조차 잡을 수가 없었다. 꾀를 낸 저승사자가 냇가에서 숯을 씻었다. 오가는 사람들이 궁금해서 물으면 숯이 하얘지도록 빤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그를 미쳤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백발노인이 지나가다 “뭐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저승사자는 “숯이 백색이 되게 빤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노인은 “삼천갑자를 살았어도 그런 것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저승사자는 그 노인이 동방삭임을 알고 얼른 붙잡아 데려갔다고 한다. 

과연 동방삭은 18만 년을 살고도 저승사자를 피해 다녔던 걸까? 그렇다면 삶에 대한 욕심이 너무 지나치다. 사실 동방삭에 대한 설화는 이설이 많다. 어느 것은 삼십(三十)살을 타고난 동방삭에게 후한 대접을 받은 저승사자가 그를 차마 잡아가지 못하고 그냥 돌아간 후 명부(冥府)관리자가 조는 틈을 타 점 하나를 찍어 삼천(三千) 살로 고쳤다고 한다. 어느 것이든 사람들의 장수하고 싶은 욕망이 배어있다. 하지만 중국 전한(前漢) 때, 사기(史記)의 저자인 사마천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실존인물 동방삭은 환갑을 겨우 넘긴 61살에 죽었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왜 동방삭이 장수한 인물로 그려졌는지 모를 일이다. 

일본의 전국시대에 사무라이(武士)들은 화려하게 폈다가 한순간에 지는 벚꽃 같은 삶을 동경했다고 한다. 난세를 살면서 화려한 명성을 얻은 후에 미련 없이 죽겠다는 인생관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동방삭 같이 무지 오래 사는 삶이 행복한 삶은 아닐 것이다. 화려하지만 한순간에 지는 벚꽃 같은 짧은 삶도 좋은 삶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삶이 좋은 삶일까. 아픔 없이 건강하게 살다가 고통 없이 죽는 것이 좋은 삶이며 죽음의 복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런 복을 사람마다 타고날 리는 없지 않은가. 사람마다의 삶은 저마다 다르고, 맞는 죽음도 저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누구라도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상실한 채 추한 모습으로 오래 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도 언젠가 스위스처럼 존엄사를 택할 수 있는 법제화가 실현되리라고 본다. 그런 시대가 오면 나는 건강상태가 여의치 않을 경우 존엄사를 택할 것이다. 의식이 없고 거동하지도 못하는 상태라면 차라리 존엄사가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오래 살아도 짧게 살아도 어차피 허무한 일 아닌가. 그저 평범한 삶을 살지만 좋은 죽음을 맞는 복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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