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기천의 확대경] 공직자의 명예와 재물탐

#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 재산목록과 예금내역 등을 알려달라고 하여 의아했다고 한다. 이유를 물으니 공직자재산등록을 해야 한다고 했다는데, 고개가 갸웃거려지더라는 것이었다. 며느리는 세무직 7급 공무원이었다.

# 재산등록을 한 어느 공무원은 윤리위원회로부터, 어머니 이름으로 된 3천만 원의 예금이 있는데, 등록하지 않은 사유를 소명하라는 통지를 받았다. 도무지 짐작조차 되지 않아 어머니께 여쭤보니,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아무도 모르게 하라며 남겨 준 것”이라고 하셨다고 했다.

# 아내 명의로 은행에서 대출 받은 사유를 밝히라는 통지받은 공무원은 전혀 영문을 몰랐다. 불편한 마음으로 아내에게 물으니 친정에 급한 사정이 있어 대출받았다는 것이었다. 왜 미리 상의하지 않았느냐고 했지만, 부인은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만일 이야기 했으면 선뜻 동의해줬을 거냐며 속상해하더라는 소명서를 냈다.

# 한 공무원은 자기 모르게 아내에게 적지 않은 예금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그동안 알뜰히 모은 것이었다고 했다. 알려주지 않은 것이 서운하면서도 고마웠다고 했다.

# 어느 공무원은 6천여만 원을 장기간 현금으로 보관하였다고 신고하여 소명토록 하였으나 석연치 않아 징계를 받았다. 재산등록과 심사과정에서 나타난 눈에 띄는 사례이다. 달리 비위 수준의 부당사례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가기천 전 서산부시장, 수필가
가기천 전 서산부시장, 수필가

신도시개발예정지역에 일부 공기업직원과 공무원, 정치인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져 국민들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더욱이 몇몇은 사전에 입수한 정보를 활용하여 토지를 매입하고 게다가 보상금을 높여 받기 위한 수목 식재 등 전형적인 투기꾼 모습을 보여주어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정부는 사정기관을 동원하여 의혹을 파헤치는 한편 입법조치 등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다. 1983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공직자윤리법은 공직자 및 공직후보자의 재산등록, 등록재산 공개, 재산 형성과정 소명과 공직을 이용한 재산취득의 규제 등을 규정함으로써 공직자의 부정한 재산 증식을 방지하고, 공무집행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등 공익과 사익의 이해충돌을 방지하여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가져야 할 공직자의 윤리를 확립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재산등록의무자는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의 장, 지방의원, 법관, 검사, 4급 이상 공무원과 특정 기관 또는 특정 사무를 담당하는 7급 이상 공무원, 대학 총·학장, 대학원장 등과 총경이상 경찰공무원, 소방정 이상 소방공무원, 대령 이상의 장교, 공기업의 임원 등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등록의무자는 공직자 본인과 배우자, 본인의 직계 존·비속(다만 혼인한 직계비속인 여성과 외가의 증조부모, 조부모, 외손자녀 등은 제외)의 부동산, 광업권, 어업권, 소유자별 1천 만 원 이상의 현금, 예금, 주식, 채권, 채무 등에 대하여 취득 일자, 취득 경위, 소득원 등을 소속기관에 정기 또는 수시로 등록하여야 한다.

공직자재산등록은 등록의무자를 비롯한 공직자 가족에게 청렴하고 투명한 공직생활과 더불어 경각심을 갖도록 하는 제도의 하나이다. 이에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는 등록사항을 심사하여 거짓이 있거나 중대한 과실로 누락한 경우,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이용하여 재물 또는 재산상 이득을 취득한 사실이 인정되는 경우 경고 및 시정조치, 과태료부과, 허위등록사실 공표, 해임 또는 징계의결을 요구하도록 되어있다.

앞으로 재산등록대상자를 전 공무원으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한다.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꼭 모든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여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대안의 하나로 개발계획 등에 정보 접근 개연성이 낮은 분야의 공무원 등은 제외하는 방안이 함께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등록대상 소방공무원 가운데 현장·상황관리요원은 제외한 경우를 본보기로 삼을 수 있겠다. 반면 ‘혼인한 직계 비속인 여성’은 등록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으나, 재산등록제도의 실효성 확보 측면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또한 독립생계 유지 등을 사유로 하는 ‘고지거부제도’에 대하여도 다시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한편 등록대상이 대폭 늘어날 경우 심사담당부서를 확대, 보강하고 전문 인력 배치와 함께 기능과 권한을 늘림으로써 깊이 있는 심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최근 일련의 상황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공직자는 명예와 재물 가운데 한 가지만 선택하는 분위기가 정착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공직자는 곁눈질하지 않고 직무에 전념하여 맑고 바른 공직관을 확립하는 계기가 된다면 그나마 값진 교훈이 되겠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