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기천의 확대경]

글을 쓰다가 궁금한 사항을 알아보고자 한 공단에 전화했다. 신호가 가고 ‘고객센터입니다’라는 멘트에 이어 ARS 음성 안내가 나왔다. 안내에 따라 상담원 연결을 원하는 번호를 누르니 개인정보를 확인 후 연결해주겠다며 주민등록번호 13자리를 입력하라고 했다. 입력하자 ‘상담하려는 사람이 많으니 기다리라’는 음성이 들렸다. 전화기를 들고 한참을 기다리니 ‘계속 상담원 연결을 원한다면 1번을 누르라’고 했다. 꼭 문의해야 할 일이기에 1번을 누르고 기다렸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가기천 전 서산부시장, 수필가
가기천 전 서산부시장, 수필가

얼마 뒤 또 같은 멘트가 나왔다. 이렇게 하기를 6번. 

그러더니 ‘지사로 연결해 줄 테니 주민등록번호 13자리를 누르라’고 했다. 다시 주민등록번호를 누르고 나니 얼마 후 지사 직원과 연결됐다. 고객센터 상담원과는 통화 한마디 하지 못하고 15분쯤 지나서 지사와 연결된 것이었다. 전화를 받은 직원은 ‘〇〇〇입니다’라고 하는데, 마스크를 쓴 때문인지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수고 많으시지요?”라고 인사하며 “전화하기 참 힘드네요. 고객센터에 전화했는데 1번을 누른 후 기다리라고 몇 번을 거듭하다가 지사로 연결해주네요”라고 했다. 그러자 그 직원은 아무 말 없이 “말씀하세요”라고 했다. 듣는 순간 ‘이럴 수가 있을까’ 싶었다. ‘오래 기다리셨네요’라든가 ‘그렇겠네요’라는 말 한마디쯤 하고 나서 “무슨 일이세요?”라고 물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상담 한 번 받기 힘들다고 말하는데 ‘말씀하세요’라는 말만 하는 자세는 바른 서비스가 아니라는 생각이라고 했지만, 여전히 ‘말씀하세요’라고만 했다. 로봇과 이야기하는 것만 같았다. 문득 공직선거 후보자 토론회에서 상대방 후보의 질문에 답변은 하지 않고 계속 “말씀하세요”라고만 하던 어느 후보의 모습, 인사청문회에서 청문위원의 질문은 외면하듯 “말씀하세요”라고 하던 공직 후보자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렇겠네요”라는 말을 듣고 싶다

직원에게, 궁금한 사항이 있어서 전화했다고 하자 또 주민등록번호를 말하라고 했다. ‘개인적인 상담이 아니라 제도에 관하여 묻고자 하는 것’이라며 알아보려는 내용을 말하니까 ‘구체적인 내용은 본부에 문의하라’고 했다. 본부 고객센터에서 지사로 연결해주었는데 다시 본부로 알아보라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 이미 고객센터상담원과 연결하지 못하여 이렇게까지 되었으니, 본부 담당 부서 직통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고 하여 알아냈다.

본부에 전화하여 궁금한 사항을 문의했다. 답변을 듣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왕 본부 직원과 통화가 이루어진 기회에 평소 가졌던 생각을 얘기했다. 먼저 그 공단에 문의하는 사람 대부분은 좋은 이야기보다는 불만을 토로하거나 항의하는 사람이 많아 힘들 것이라는 말을 했다. 이어 상담하려는데 주민등록번호 13자리를 세 번이나 밝혀야 하는 경우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과 함께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의견이 반영될 것이라는 기대는 접었다.

상담을 하다 보면 ARS의 불편함과 더불어 일부 공공기관 종사자의 메마른 태도에 장벽을 느낄 때가 있다. 상담원은 많은 고객을 응대하다 보면 힘들고 스트레스가 쌓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감정노동자를 ‘보호해달라거나 대화 내용을 녹음한다’는 멘트를 해야 할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따뜻한 상담을 바라는 고객의 바람이 지나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렇겠네요!’ 그 한마디가 그렇게 힘든가? 혹시 ‘수긍’했다는 것으로 듣고 나중에 추궁하거나 책임이 뒤따를 것을 염려해서인가? 고객을 잘 응대하고 난 뒤에 얻는 보람도 있지 않을까? ‘고객은 왕’이라는 기울어진 상태에서 대접받고 싶어서가 아니다. 상황은 상대적이다. ‘효자는 부모가 만든다’는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공직자의 바람직한 민원인 응대 자세를 생각한다. 민원인도 답답하고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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