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책방을 소개합니다' 책 기부 캠페인 신선하고 고무적

한기원 칼럼니스트
한기원 칼럼니스트

사실 필자가 초등학교에 다녔던 6,70년대만 해도 교과서 외에 책다운 책을 접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동화책을 처음 접해 본 것이 언제쯤 이었던가 기억해 내는 일조차 쉽지 않다.

세월이 흐르면서 아무리 집안형편이 어려워도 아이가 있는 집이면 으래 세계 명작 동화 한 질쯤은 갖추게 되었지만 그 시절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후일 아는 분의 집을 방문해 한 쪽 벽면을 점령군처럼 차지하고 있는 책장을 보면 그게 그렇게 부러워서 샘이 날 지경이었다. 굳이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책 한 권을 손쉽게 꺼내 읽어 볼 수 있는 호사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이던가 하면서.

중학시절 대전에서 유학하면서 점차 그 누구에게도 더 이상 그 어떤 이야기를 조르지 않게 되었지만 속으로는 뭔가 세련되고 산뜻한 이야기에 대한 새로운 욕구를 키우고 있었다.
그때 마침 시립도서관이라는 데를 만난 일이었다.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은 그곳에서 살다시피 했었다. 도서관은 또한 내 구차스러운 환경으로부터의 화려한 도피처이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요즘같이 모든 정보가 자판만 몇 번 두드리면 밥상이 차려지는 인터넷 시대에 가늠하기 좀 어려운 일이지만 새 책인 채로 남아 있는 책일수록 재미가 없다는 것은 도서관 단골이 되고 나서 알게 된 책 고르는 요령중의 하나였던 기억이 그저 새롭다.

어떨 때는 도서관 문 닫을 시간이 되어 못다 읽은 책을 아쉽게 덮어두고 나왔을 때 세상이 그렇게 낯설어 보일 수가 없었다. 책에 빠져 들었다가 현실로 돌아오면 모든 게 구질구질해 보여서 짜증이 나곤 했었는데, 읽다 만 책 생각에 그만 발을 헛디딘 기억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책에서 세상은 보여 지는 면 말고 또 다른 면이 가려져 있다는 걸 엿보았고, 당시엔 그게 그렇게 충격적일 수가 없었다. 불의에 대해 가슴이 터질 듯한 분노를 주체할 길 없었으며 심지어 엉엉 울고 싶기도 했었다.

내가 몸담고 있는 현실의 궁핍과 구차함을 잠시 떠날 수 있는 재미였던 책 읽기가, 가려진 현실을 드러내 보여줄 수도 있다는 걸 처음 느껴본 경험이었다. 나는 그때 엉뚱하게도 내 정신적인 GNP가 부쩍 오른 것을 느꼈다.

책을 많이 읽게 되면 나타나는 증상중에 ‘묘한 우월감’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에 켜켜이 쌓이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던 시간이었다.
그래서일까, 함께 도서관에 다니던 단짝 친구하고 거의 말을 섞지 않기도 했으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참으로 우스운 일일 뿐이다.

지금으로서는 상정하기 어려운 얘기지만 시골 방 벽에 덧바른 옛날 신문지를 읽고 또 읽다가 나중에는 까치발을 하고 천장에 바른 종이에서까지 활자를 찾아내서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면 요즘 젊은이들은 과연 그걸 이해할 수 있을까.
철지난 사건이나 뜻이 연결되지 않은 활자들은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했던 척박한 시절이었다.

사실 어떤 종류의 책이든 모든 나프탈렌 냄새가 풍겨 나오는 활자본은 그 자체가 ‘인생의 거울’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런 점에서 <디트뉴스24>가 올 들어 지역 서점업계 활성화와 독서 분위기 형성 등을 위해 펼치고 있는「'디트책방을 소개합니다' 책 기부(寄附)캠페인」은 참으로 신선하고 고무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취지에 몹시 공감하게 된다.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고 기부된 책은 지역서점인 계룡문고 카페 내 ‘디트책방’에 보관·전시한 후 연말에 필요한 기관이나 단체 등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하니 더욱 뜻깊은 일 아니겠는가 싶다.

처음엔 ‘이 캠페인이 과연 잘 될까’하는 다소 걱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는데 그 성과가 벌써 나타나기 시작했고 참여의 폭도 점차 넓어지고 있다고 하니 애서가의 한 사람으로서 더 이상 반가운 소식이 또 있으랴 싶다.

요즘처럼 책이 잘 읽혀지지 않는 세상에서 <디트뉴스 24>의 ‘책기부 캠페인’이 지역사회에서 일상의 소소한 감동을 전해주는 ‘수필같은 이야기거리’로 회자되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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