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⑤ 자본주의 재정립 담론 고개
정쟁 속 의제 침몰, 5000만 촛불의 방향성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은 지난 한 해 개인의 일상을 붕괴시킨 동시에 인류 공동운명에 대한 감각을 일깨웠다. 효율적인 감염 차단을 위해 지방정부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해졌고, 이는 지방분권시대의 가능성을 엿보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코로나 1년, 백신 접종을 앞둔 지금. 바이러스로 촉발된 기후위기와 돌봄 노동, 공교육의 역할, 민주주의 위기론에 대한 백신 준비는 잘 되고 있을까? ‘코로나 1년,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들’을 주제로 앞으로 지방정부가 의제화해야 하는 문제들에 대해 살펴본다. <편집자주>

① 세종시, 빛바랜 '친환경 생태수도' 슬로건

② 세종시 4년차 사서교사의 배달독서 1년 

③ 코로나 방역, 칸막이에 갇힌 '언론' 문제없나? 

④ 돌봄책임과 여성, 코로나 이후 ‘리더의 자격

 코로나 이후의 촛불, 분배 논의 떠오른 이유 <끝>.

고김주희 저자.
고김주희 저자.

코로나 이후 기본소득, 이익공유제, 사회연대세 신설 등 분배에 관한 의제가 주목받고 있다. 전 세계적 바이러스의 출현이 노동과 소득, 자본주의의 정의를 재정립할 수 있는 길목으로 이끈 셈이다.

감염 공포 속에서 공론의 장이 축소되고, 소용돌이 같은 거대 담론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생존의 문제는 거대 자본가가 아닌 하위 노동자나 소상공인에게 집중됐고, 여전히 이들은 연대와 평등의 가치가 위협받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자본에 대한 욕구, 무한정한 자유 속에서 누군가의 생명과 건강을 해치지 않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 이 물음에 최근 몇 년 간 책을 통해 답하고 있는 작가가 있다. 고김주희 철학박사다.

저자는 한양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철학과에서 석사 과정을 수료한 뒤 프랑스 파리8대학 철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세종에 머물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소득상한제>(2018), <소리 없는 우리의 폭력>(2018), <민주주의라는 난제>(2019) 등이 있다.

촛불 이후,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 하기 위해 저자와 만났다. 저자는 현재 21세기 팬데믹 유행 시대에 달라진 통치의 성격을 주제로 한 신간을 집필 중이다.

다음은 고김주희 작가와의 일문일답.

ㅡ 지난 한 해 코로나로 인해 공동체라는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게 된 반면, 모든 담론이 감염병에 집중되면서 발전적인 의제가 묻히는 현상도 나타났다. 지난 1년을 민주주의 발전 측면에서 되돌아보자면.

“2020년은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사회 전체가 시험대에 오른 힘든 시기였다. 정부와 지자체, 대부분의 시민들이 감염 예방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어느 정도 긍정적인 성과도 있었다. 방역당국과 의료진은 검사와 추적, 치료에 많은 힘을 쏟았고, 시민들은 마스크 착용이나 거리두기, 모임 자제 등 대체로 자율적으로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반대로 일부 교회와 보수 단체들이 종교의 자유를 내세우며 방역 수칙을 지키지 않고 집회를 강행해 방역 당국과 국민 안전에 어려움을 초래한 점은 오점으로 남는다. K-방역이 자랑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실제 일선 의료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 방역의 성과가 결국 노동자들의 고통을 동반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잊어선 안 될 문제다.”

ㅡ 바이러스와의 사투 속에서 생존의 문제는 거대 자본가가 아닌 일부 계층에 집중됐다. 한쪽 세계에선 여전히 연대와 평등의 가치가 위협받고 있다.

“코로나 확산 상황에서 이미 심각한 수준이었던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화됐다. 비대면 활동이 일상화되면서 택배 이용량이 크게 증가했지만, 택배 기사들의 처우가 개선되기는커녕 늘어난 업무량 때문에 과로로 숨지는 사건이 속출했다. 뒤늦게 택배 분류 인력을 추가 투입했지만, 그 비용을 다시 노동자에게 전가시키려는 행태도 목격됐다.

안전사고로 인한 추락사,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사망하는 사건이 연일 이어지는 데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뒤늦게 국회를 통과했고, 취지에 부응하지 않는 미흡한 수준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총선에서 국민들은 현 여당에 많은 힘을 실어줬지만, 이들의 행보가 실제로 보다 많은 국민들의 이해와 안전을 반영하고 있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회의적이다.”

ㅡ 코로나 이후 분배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정부 재난지원금 지급 방식에 대한 선별·보편 논란,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기본시리즈(기본소득, 기본주택), 이낙연 대표의 이익공유제 등이 그 예다. 이런 논의가 나오는 흐름을 어떻게 보고 있나.

“정치권에서 분배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 점은 긍정적인 일이다. 정치가 수행해야 하는 본연의 역할은 경제 성장이 아닌 ‘부의 분배’에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많은 정치가들은 본연의 임무는 뒤로 한 채 마치 자신들이 기업가들인 양 행동해왔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는 저성장이 일반화됐고, 지나친 양극화 문제는 경제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기존의 방식대로 경제를 부양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뻔하다. 개인적으로 이 지사가 제안하고 있는 기본 소득 논의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이 기본소득 논의에 소득상한제까지 병행돼 그것이 기본소득제를 위한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으로 기능하게 된다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경제적 주권을 모두가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시스템 안에서만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이 가능하다.”

ㅡ 3년 전 소득상한제를 다룬 책을 냈었다. 기본소득제와 연동될 수 있는 이 소득상한제의 개념과 현실화 방안에 대해 말해 달라.

“최저임금의 10배 내외(정확한 배수는 사회구성원 합의에 따라)로 최고 소득에 상한을 두고, 이 상한분 100%에 소득세를 과세하는 것이다. 축적된 재원은 완전고용 실현과 복지시스템 구축에 사용한다. 나아가서는 개인뿐 아니라 기업 법인에도 법인 간 소득 차이에 제한을 둔다.

우리나라 소득세법상 개인에 과세하는 소득 종류는 모두 9가지다. 일시적 소득에 해당하는 퇴직소득과 양도소득을 제외하면, 종합소득으로 합산해 과세할 수 있는 항목은 7가지다. 이 7가지 소득을 합산한 총소득을 일정 배수만큼 최저임금에 연동시켜 상한에 대해 100% 소득세율을 부과하면 된다. 그 이하 소득에 대해서는 세분화한 누진세를 유지한다. 상속과 증여세도 여기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본다.”

저자가 지난 2018년 출간한 소득상한제 책 표지.
저자가 지난 2018년 출간한 소득상한제 책 표지.

ㅡ 기본소득제나 이익공유제, 소득상한제 등의 개념은 개인과 기업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 받기 쉬운데.

“자유롭다는 것은 모든 개인의 권리가 어떤 위계적 권력에도 종속되지 않는, 평등한 관계에 놓인 것을 의미한다. 평등하다는 것은 곧 서로의 권리가 모두 동등하게 존중돼 누구의 자유도 침해받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개인과 기업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 분배 논의를 향한 비판의 이유가 된다면, 자유와 평등이 서로 대립할 수 있는 개념인지 되묻고 싶다. 우리는 진정한 자유와 평등이 무엇인지에 대해 숙고해보지 않았다.

무한한 자본 소유의 욕구가 자유라는 명분으로 누군가의 건강과 생명을 해치고 있다. 고위공직자나 대기업 총수의 어린 손주들이 억대 주식을 상속받는 동안, 저임금 초과노동에 시달리는 하청업체 직원들은 안전장치가 미비한 작업장에서 사고로 사망한다. 자본주의가 자유라는 가치를 추구한다 할지라도, 타인의 건강과 생명을 앗아갈 자유는 없어야 하지 않을까.”

ㅡ 경제 불황에도 부동산 상승세와 주식 투자 수요는 꺾이지 않고 있다. 부동산이나 주식 등 불로소득에 열광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연해졌다. 

“부동산 가격 상승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 탓이 크다. 현 정부는 주택을 투기 목적으로 삼지 못하게 하겠다 공언했지만, 정작 실시된 부동산 정책은 그런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지 못했다. 세입자들을 위한 법안 마련도 뒤늦게, 불충분하게 이뤄졌고, 다주택자의 보유세 인상에 굉장히 소극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근로소득만으론 주택 마련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탓에 많은 국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주식에 열광하고 있다.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라는 이름을 붙여 고상하게 부르고는 있지만, 사실 투기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에 유익하고 창조적인 가치를 생산해 내는 일이 아니라는 관점에서 볼 때, 불로소득의 비중은 줄어들어야 한다.”

ㅡ 이익공유제, 협력이익제, 착한임대인운동 등 경제적 배분에 관한 다양한 의제가 나왔다. 하지만 현금성 피해 지원 정도만 이뤄졌을 뿐 혁신적인 대안이 실행으로까지 이어지진 않고 있다.

“비상시국에서는 정부가 직접 임대료 납부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맞다. 최근 참여연대는 임차인, 임대인, 정부가 ‘1대 1대 1’로 임대료를 분담하는 ‘임대료 일괄 감면 제도’를 제안했다. 피해 지원 재원 마련을 위해 법인세와 소득세 상위 구간 세율을 한시적으로 인상하자는 ‘사회연대세’ 신설도 건의했다. 좋은 제안들로 보인다.

선거를 통해 옥석을 가려내는 일에 참여하는 일은 꼭 필요하다. 동시에 선출과 상관없이 정치적 권력을 행사하는 행정 관료나 사법부에 대한 비판과 감시도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보다 많은 국민들이 정당 활동이나 시민 단체에 참여해 생활 정치를 실천해야 하고, 이런 활동에 들이는 개인의 시간도 많아져야 한다.”

ㅡ 지난해 서울 동부구치소 집단감염 사례는 또다른 시사점을 남겼다. 사회 기득권층이 누리는 교도소 내 특권에 대한 문제다. 1인실에서 생활하는 기득권 수감자들만이 안전을 담보할 수 있었다. 감옥에서도 여전히 특별한 자유가 존재한다.

“한국의 교정시설은 선진국에 비해 수감자 1인당 할당되는 면적도 작을 뿐더러 그마저도 늘 포화상태다. 다수의 수감자들은 생활고를 겪다 경제적 문제로 인해 범죄자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달리 말하면, 우리 사회가 그만큼 많은 이들의 경제생활을 합법적으로 보장해 주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 원인이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과 같은 권력층의 부패와 비리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현재 이들이 수감 중에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은 사회 발전 가능성에서 볼 때 전혀 긍정적이지 않다. 아무런 국민적 동의나 합의도 없는 상태에서 전직 대통령의 특별사면 가능성이 언급된 것도 여전히 우리 사회가 법 앞에 평등한 사회가 아님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ㅡ 지난해 뜨거웠던 ‘조국 이슈’도 개인의 문제로 국한되는 데 그쳤다. 공정의 가치가 중요한 담론이 됐지만, 엘리트주의, 계층 세습 등의 의제는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

“우리 사회의 위계화와 서열화 문제는 신자유주의적 교육, 가치관의 문제와 연관된다. 지상의 목표와 가치를 경제 성장, 부의 소유에만 두는 학교, 일터의 모습들이 공동체 의식을 상실한, 지극히 이기적인 개인과 엘리트를 양산하고 있다. 심각한 코로나 확산 시기, 의대 정원 확대를 반대하며 일어났던 의사들의 총파업이나 검찰 개혁에 반발하며 집단행동을 보인 검사들의 모습에서 그 징후를 분명히 읽을 수 있다.

분배 논의에 더해 대학 서열화 해소 방안이나 공교육 방향에 대한 논의들이 지속적으로 공론화되길 바란다. 주류 언론과 1인 미디어가 특정 이슈에 많은 시간을 쏟으면서 정작 중요한 의제들이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

ㅡ 우리 사회가 앞으로 지난 촛불의 방향성을 어떻게 가지고 가야 한다고 보나. 정권 재창출을 위해 든 촛불 이후 사회는 다시 분노와 진영논리를 앞세운 촛불만을 들고 있다.

“지난 촛불은 부패하고 무능한 기존의 정치 세력을 뒷걸음질 치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코로나 이후 발휘된 시민의식과 공동체의식을 후퇴시키지 않으려면, 지속적으로 우리 사회가 진일보 할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가정이나 일터, 이웃과의 관계 등 일상 속에서 타인에 대한 폭력을 최소화하려는 태도도 필요하다.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직장에서는 부하직원들에게 막말과 욕설을 퍼부으며 아파트 경비원이나 배달 노동자들에게 갑질을 일삼는 이들이 엄연히 존재하는 한, 부패하고 비도덕적인 정치가들에게 아무리 비난을 퍼부은들 우리 사회가 민주화될 일은 없다. 우리의 눈빛과 목소리가 자신보다 낮은 곳에 머물 때, 그래서 끝내 소외된 이들 없이 모두가 모두를 동등하게 바라보고 이야기 할 수 있을 때만이 좋은 민주주의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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