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기현 대전시의원
더불어민주당 유성3지역구, 교육위원, 예결위 부위원장

제8대 대전시의회 개원 당시 모습. 자료사진.

최근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는 8대 대전시의회 의원들의 지난해 활동을 평가했다. 시민단체가 선출직의 의정활동이나 단체장 평가를 하는 것은 본연의 역할이라 하더라도 이제는 수준이 좀 높은 평가를 받고 싶다.

이번 평가는 예년과 같이 회의 출석률, 조례 대표발의 건수, 시정 질문과 5분 자유발언 건수, 토론회 개최 건수, 행정사무감사 모니터링 결과 등을 위주로 평가를 했는데 매년 반복되는 평가와 비슷하다.

지난 2019년 2월에 더불어민주당 대전시당과 한국지방정치학회와 공동으로 개최한 의정혁신토론회에서 필자는 방청석에서 의견을 제시한 바가 있는데, 의회 평가를 “양 중심의 평가에서 질 위주의 평가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필자가 29년간 근무했던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등 연구기관은 1990년대에 논문 특허 프로그램 등을 평가하여 승진에 반영하기 시작, 이 부문에서 일정정도의 성과를 냈지만,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 

논문 발표를 위해 여러 학회와 국외 출장이 이어져 본연의 연구업무 수행에 차질이 빚어질 정도였고, 특허도 사업성 여부와 무관하게 건수 위주로 엄청나게 쏟아졌다. 이후 특허는 1년 유지비만 수십억에 달해 수억 원의 용역비를 들여 특허 폐지 비용도 만만찮게 들었고, 프로그램도 길이 위주로 평가하다보니 비효율을 낳게 된 것이다.

이후 2000년대 들어 논문의 편수 위주보다 국제 SCI급 논문 편수 등 등급을 두어 질 위주로 전환했고, 특허도 국제 표준화 등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개선되었다. 이처럼 연구자에게는 연구 결과를 중심으로 우선 평가한 뒤, 부수적 산출물인 논문 특허 등을 보완하여 평가하는 게 바람직하다.

정기현 대전시의원.

마찬가지로 의정활동 결과물이 조례와 사업인데, 시민들을 위한 정책 사업을 얼마나 창출했는지, 아니면 시민들의 의견을 대변하여 시정을 비판 견제하여 ‘성과’를 남겼는지, 상임위 예결위 등 활동을 통해 예산 절감은 하였는지 등이 우선 평가되어야 함에도 단순 건수 위주로 평가하는 것은 시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방향으로 이끌어 내지는 못할 것이다.

국회도 건 수 위주로 평가를 하다 보니 법률 제·개정안 발의가 수만 건에 이르고 본회의 통과되는 비율은 20대 국회 36% 남짓에 머무르는 실정이다. 법률이든 조례 제·개정이든 입법 과정에 비용이 따르게 되어 있는데 20대 국회에서 폐기된 법률안 수가 1만 5000여건에 해당한다고 하니 낭비된 예산이 얼마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지방의회 의원들은 보좌관 한명 없이 의회 공무원들의 도움으로 실적을 쌓아가고 있다. 2018년 국회입법조사처의 분석에 따르면, 대전시의회는 타시도의회에 비해 1인당 조례 제정 건수가 2~3배가량 많다고 보고되고 있다. 최근에는 평준화되는 경향이 있으나, 2019년에는 대전시의회가 1인당 5.1건으로 지방의회 평균 3.5건의 약 1.5배에 달해 상위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기존에 이미 시행중인 정책이나 사업을 제도화하는 차원에서의 조례제정도 있고, 집행기관이 해야 할 용어 수정 등의 조례 개정도 있다. 새로운 사업이나 정책을 마련해 예산 반영까지 나아가 시민들에게 직접 도움이 되는 조례가 있는가 하면, 특정 지역이나 계층에 한정되는 조례, 전체 시민에게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조례 등 다양한 목적과 기능이 존재한다. 따라서 조례의 질을 평가하는 데는 여러 측면이 반영되어야 한다. 시민들의 공론화 과정을 거쳤는지도 평가할 대목이라고 본다.

마찬가지로 시정 질문도 지역구에 해당하는 질의인지, 전체 시민의 문제에 해당하는 질의인지, 이후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했는지 등 그 경중에 따라 평가해야 바람직 할 것이다.

5분 자유발언은 집행기관의 답변이 필요 없고, 의원들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도 없어 그야말로 자유인데 이 건수는 실적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것이다. 오히려 시민들과 소통하는 측면에서는 의원들이 언론에 직접 기고하는 칼럼보다 못한 수준일 수 있다. 

또, 의원들 동의를 구하여 안건을 상정하고 본회의를 통과해 의회 공식 의견으로 성립하는 건의안이나 결의안 채택이 조례의 수준으로 인정하는 더 의미 있는 실적이어서 이를 제외한 평가도 납득하기 어렵다. 의정연구회의 실질적인 활동이나 특별위원회의 활동 등도 평가할만한 대상이지만 늘 제외되어 있다. 즉, 시민단체가 평가하고 싶은 것만 평가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정당에서도 소속 현역 의원의 의정활동을 평가한다고 실적을 제출하는데 마찬가지로 양에 의한 평가만 형식적으로 한다. 시민단체마저 의정활동 평가를 단순 숫자 늘리기 경쟁을 유도하면 의정활동의 질도 그 수준에 머물게 될 것이다.

이렇게 시민단체의 평가가 제시되자 의회 입법정책실 등 관련부서는 업무가 대폭 늘어나고 있다며 일손 부족을 호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집행기관의 장인 시장이나 교육감 구청장에 대한 평가를 제외한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물론 시민단체도 활동가 확보에 어려운 실정이긴 해서 여러 평가를 모두 주문하는 것은 어렵다. 그렇다 하더라도 건수 위주로 의회를 평가하는 방식은 이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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