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원 칼럼]

신축년 새해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이 1주일 앞으로 다가 왔다.
‘설’하면 떠오르는 우리네 옛 정경들이 있었다. 우선 부엌에선 솥뚜껑에 부침개 부치는 맛있는 냄새가, 안방에선 광주리뚜껑에 스르륵 스르륵 산자무치는 소리와 술잔 기울이는 소리가 마당까지 가득했었다. 다음날 떡국과 함께 나이를 한살 더 먹은 총생들은 하얗게 눈덮인 들판에 나가 연을 날리고.
그런 모습들을 넉넉한 품으로 품은 고향마을. 거기에 가족이 있고 정이 있었다.

이제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올 법한 풍경이지만 그것이 진정 우리 모두의 설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우리의 설명절은 전통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풍속을 자아내 왔다.굳이 코로나 사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오늘의 냉혹한 경제현실.
그 말이 절박한 현실감으로 다가 오고 있지만 차라리 설이 실종된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재래시장이나 각 가정마다 설 경기와 분위기가 잡히지 않아 자못 우울한 가운데 설을 맞게 되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올 설에는 못 내려 가요”라는 자식들의 전화가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 되었다. 그 전화가 결코 섭섭한 일이 아니 되었다. 
시장에서 물건은 안팔리는데 물건 값만 뛰는 기이한 현상을 목도하기도 하는 불합리가 목놓아 울기도 하는 여러모로 참으로 가혹한 설이 되고 말았다.

이런 점을 감안, 올 설 연휴는 국가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에 처해 있을 뿐만 아니라 각 가정경제도 어려운 상황하에서 다른 어느 때보다도 검소한 설,자숙하는 설이 되면 좋지 않겠는가.

경기가 바닥을 쳤다는 말도 있고 무디스를 비롯 외국 신용평가기관들의 잇단 ‘최고등급’ 판정과는 별개로 우리네 살림살이는 그야말로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사상 처음으로 비자발적 실직자가 200만 명을 돌파했는가 하면 이번 설에도 임금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들이 부지기수다. 신문과 TV가 전하는 소식은 정치, 사회 할 것 없이 우울한 것뿐이다. 보궐선거를 앞둔 정치판은 여전히 이전투구로 민초들을 실망시키고 북한원전 등 출처불명의 소문들로 여전히 정쟁의 끝을 보여주고 있으며 각종 사건 사고도 줄지 않고 있다.

이른바 코로나 쇼크로 우리 사회 이곳 저곳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는 이들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설명절이 차라리 야속하기까지하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분들의 형편을 가슴 깊이 좀 더 헤아려야 하지 않을까.
설을 맞아 과소비를 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많은 선물을 주고받는 일은 이제‘정’을 뛰어 넘는 그야말로 ‘구태’가 된지 오래다.

예로부터 설날을 달리 ‘신일(愼日)’이라고 하는 것은 이날을 다른 날과 달리 신중하고 겸허하게 보내라는 의미임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고 배웠다.
새로 시작되는 한해에 대한 기대를 경건하게 예측하고 차분함과 예지로서 맞아야 한다는 다짐을 되새겨 본다.

‘거리두기’로 모두가 힘겨워진 민족 대명절, 이럴 때일수록 가족친지들끼리 전화로라도 서로 위로하고 덕담으로 용기를 북돋우며 지금보다는 나은 내일을 기약하는, 푸근한 설이 되었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