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힐링에세이]

박경은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대표
박경은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대표

 

2020년 1월에 아버지께서 폐암진단을 받고 조직검사에 실패하고 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한 지가 1년이 되었다. 아버지가 한 달 사이 건강이 많이 안 좋아졌다. 기력도 없고 계속 누워만 계신다. 빈번하게 멍 때리기와 깜빡깜빡하신 인지능력의 저하, 우울한 언어사용과 표정도 아버지 표현대로 ‘죽을 맛’이다. 식사를 하시면서도 힘이 드는지 긴 숨만 내쉰다.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는 어머니는 "아빠가 올해 못 넘기겠어." 라고 울상인 표정을 짓고서는 "나는 귀도 안 들리고 어떻게 사냐?"고 한탄을 하신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볼 때면 공감을 해주거나 마음을 달래주지도 못하고 짜증이 난다. 왜 일까? 무감각하다 못해 짜증이 난다. ‘내가 왜 이렇게 무감각할까? 아니면 있는 그대로의 부모의 모습이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서일까?’를 수없이 수없이 생각해 본다. 화만 내고 있는 내가 보인다.

어머니는 잔병치례가 잦았다. 늘 아버지가 어머니를 간호하셨다. 고등학교 때 뇌수술부터 여러 번의 병원 생활과 빈번한 수술로 인하여 결국 청력이 떨어졌다. 내가 35세쯤 보청기를 사용해야 했는데, 어머니는 적응하려 하지 않았고 결국 보청기를 버리셨다. 그 이후로 엄마랑 제대로 나눠 본 대화가 없다. 늘 찾아뵈었을 때 “내가 죽어야지. 이렇게 안 들려서 못살겠다.” 나는 그런 어머니가 화가 났다. 내가 그 입장이 되어보지 못해서도 그렇겠지만 이겨내 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동안 늘 병간호했던 아버지, 그리고 나름 자기 자리에서 부모에게 효도하는 형제들이 있는데 늘 투덜대는 어머니가 너무 이기적으로 보였다. 늘 “고맙다”고는 표현하지만 “정말 어머니는 감사함을 알고 계실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상담 석사 공부할 때부터 거의 10년을 어머니를 이해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그 기간이 얼마나 고통이었는지 모른다. 그런 시간을 보낸 지 4년째 되어 가는 것 같다. 지금에 와서 지금의 어머니의 모습을 공감해 주지 못하고 감정을 느끼려고 하지 않는 내가 나에게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모르겠다.

15년 전에 내가 느꼈던 감정, ‘난 지금까지 한 번도 부모에게 징징댄 적이 없는데, 늘 끊임없이 징징대는 어머니, 잘 사는 형편은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살았으면 그래도 된 거 아닌가. 감사함이 있다면 부모를 보러 오는 자녀들에게 “내가 빨리 죽어야지”라는 말을 빈번하게 사용하지 않았을텐데,……’ 라는 나의 생각이 아직도 넓게 자리하고 있어서인가보다.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 너무 싫고,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싫다. 한 번도 부모나 언니들에게 징징대 보지 못한 나의 억울한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내가 결혼하고 나서 10년이 지난 다음 시부모에 대한 불만을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서슴치 않고 투덜대지만, 결국 내가 삶을 살아내는 방법은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부모를 뵈러 왔지만, 언니네 집으로 와서 잠을 자기로 해서 자리를 옮겼다. 집안의 우울한 분위기를 내가 못 견뎌서 그런 것일까, 나의 감정은 무딘 것인가 아니면 감정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잠금장치가 되어있는 것인가. 스스로 괴로움에 뒤척인다. 언니들처럼 표정관리 못하고 빨리 지쳐버린 내가 무척이나 괴롭다. 둘째 언니는 어머니에 대한 한(恨)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잘한다. 온 몸과 마음으로 헌신할 정도다. 그런 언니가 늘 안쓰럽지만 ‘그게 언니인 것을 어떡하지’ 라고 생각하고 나의 생각을 멈춘다. 친정에 와서 몸을 움직이지 않고 겨우 설거지 와 걸레 빨기 정도만 한다. 음식을 준비하고 차리는 것은 둘째언니와 셋째언니가 나선다. 두 명만 왕래 할 정도로 비좁은 부엌이다. 굳이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도 부모님 눈에도 움직이지 않는 자식보다는 부지런하게 움직여주는 자식이 더 눈에 아른 거린가 보다.

어머니는 폐지 줍다가 여러 번의 사고를 당해서 입원도 여러차례 했음에도 불구하고 집 마당에 폐지를 모으고 있다. 짜증이 올라왔다. 하나라도 더 폐지를 줍는 마음을 알겠지만, 차의 클랙슨 소리도 못 듣고 결국 어머니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냐고 나는 말한다. ‘이젠 그만해’라고 말한다. 큰오빠는 그런 부모님을 뵐 때가 오래전부터 성질을 버럭 냈다. 아버지가 아프기 전까지는 ‘그래도 이거라도 조금씩 하시는 게 낫지.’라고 생각했었다. 그것이 얼마나 힘이 들면 당뇨였던 어머니의 당 수치가 정상으로 왔을 정도니까. 그렇게 몇 년을 모았던 돈을 늘 징징대는 작은 오빠에게 몽땅 주고는 허탈해 하는 부모님. 아버지까지 지금 누워만 계시는데 폐지를 모으는 어머니의 모습까지 보게 되니 감정이 정리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 잠을 설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제쯤 나도 그럴 수밖에 없는 부모를 온전히 이해하고 짜증내지 않는 표정으로 백 번을, 천 번을 짜증내도 받아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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