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의 힐링고전]

▴ 대한민국호의 방향타는 중용
지금 우리 대한민국호는 여(與) 아니면 야(野), 좌(左)아니면 우(右), 보수 아니면 진보, 내편 아니면 네편의 파도에 그 중심을 잃고 있다. 
중심을 잃은 배는 방향타(方向舵)로써 잡아 주어야 한다. 
지금 절실한 것은 대한민국호의 중심을 잡아줄 방향타인 것이다.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과 조화의 중용철학이 바로 대한민국호의 방향타가 아닐까 한다. 

우리 대한민국호에는 중용철학을 지난 정치지도자, 사회지도자가 요구되고 그리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중용의 가치관이 필요한 것이다. 
참으로 중요한 과제는 대한민국號의 내일인 우리 청소년들에게 중용철학을 심어주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균형과 조화의 인성을 길러 주어 균형과 조화의 지도자가 되고 국민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교육에 중용철학은 반드시 필요한 교육 과제가 아닌가 한다. 
이제부터 중용철학의 키워드인 중용의 뜻을 살펴보고자 한다.

▴ 중용의 3원칙
송나라의 대 유학자인 주자(朱子)가 중용해설서인‘중용장구’를 썼다. 그 해설서에 중용(中庸)의 뜻을 이렇게 풀이했다. 
중용의 중(中)은‘치우치지 않고 기울지 않고(不偏不倚) 넘치거나 모자라지도 않는(無過不及)것’이고, 그리고 용(庸)은‘평상시 언제나’(平常也)라고 정의하였다. 
쉽게 설명하면,‘매사에 편벽(偏僻)되지 마라. 지나치거나 모자라지도 마라. 그리고 언제나 이러한 가치관으로 세상을 살라.’는 것이다.

중용철학에는 3가지 원칙이 있다. 
하나는, 평형성(平衡性)의 원칙이다. 즉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中偏不倚)이다. 
충, 의, 예, 효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목숨보다 귀하게 여긴 명분이었다. 
이러한 조선시대 명분주의는 조선왕조를 유지하는 근간이 되기는 하였으나 반대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실리주의와 평형을 이루지 못하여 결국 조선왕조 멸망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음이다. 

선조들에게서 명분주의 DNA를 이어받은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은 어떤가? 나라 발전과 국민생활과 관계없는 여와 야, 보수와 진보, 좌와 우 라는 이념에 묶여 서로 내편 네편 편 가르기하고 있음이 아닌가. 
여(與)와 야(野)가 평형을 이룰 때 균형과 조화의 정치가 이루어지고, 진보와 보수, 좌익과 우익이 평형을 이룰 때 균형과 조화의 사회가 이루어진다 하겠다. 
그러려면 나 자신이 그 어떤 명분주의나 이념의 틀에 얽매이거나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서 자신의 중심을 잡고 그 상황에 적절한 평형성의 솔루션을 찾도록 해야 한다. 
부자자효(父慈子孝)라 했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당연한 부모와 자식의 관계이지만 그러나 대체로 부모에 대한 효도보다는 자식에 대한 사랑이 큰 것이 누구나의 불편한 진실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부모에 대한 효도가 모자라지 않기 위해서는 자식 사랑하는 만큼 하는 평형성의 효도 즉 중용적 효도이어야 한다. 

두 번째는, 시의성(時宜性)이다. 
즉 그 때 그 때의 상황에 따라 적절한 솔루션을 찾는 것이다. 중용은 저울의 추와 같다. 
저울추는 어느 한 자리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물건의 무게에 따라 옮겨진다. 
중용도 이와 같아서 자신의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때와 상황에 맞는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것이다.
‘때에 맞는 처신과 도리.’라는 뜻의 시중지도(時中之道)라 하겠다. 
정몽주의‘임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의‘단심가’가 언제나 정답일수는 없다. 
상황에 따라서는 이방원의‘이런들 어떠 하리 저런들 어떠 하리’의‘하여가’가 답이 될 수도 있음이 중용의 시의성이 아니겠는가! 

세 번째는 지속성이다. 중용의 도는 일회용이나 어느 하나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만사에 적용되는 도(道)로서 평생 좌우명이다.

▴ 중용은 다르다.
A와 B의 가운데를 중간이라고 한다. A편 B편 그 중간에서 어느편에도 기울지 않는 것을 중도주의라고 한다. 
A편 B편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 상태를 회색주의라고 한다. 
중용주의는 A편과 B편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극한적 정치상황을 볼 때 여와 야의 대립과 갈등을 조정해 줄 수 있는 중용적 정당이 절실함이 아니겠는가.

▴ 중용의 도는 알기 어렵고 행하기 어렵도다!
자사는‘중용의 도는 세상사나 인간사 어느 곳에도 적용되지 않음이 없는 큰 도이다. 
너무 심오하여 이해하기가 어렵다 하였다. 
공자께서도 천하를 다스리고 높은 벼슬을 사양하고 칼날을 밟을 수는 있겠으나 중용의 도는 능히 할 수 없다.’하였다.
두 성현의 말대로 중용은 지고지선(至高至善)한 도지만 참으로 알기 어렵고 행하기 어려운 도가 아니겠는가.

▴ 그렇다. 중용의 잣대로 볼 때 지금의 내 삶의 모습에서 치우친게 무엇인가? 
나의 생각, 행동, 습관, 음식. 인간관계 등 하나하나에서 치우친 것이 없나를 성찰해 보자.


김충남 강사.
김충남 강사.

필자 김충남 강사는 서예가이며 한학자인 일당(一堂)선생과 정향선생으로 부터 한문과 경서를 수학하였다. 현재 대전시민대학, 서구문화원 등 사회교육기관에서 일반인들에게 명심보감과 사서(대학, 논어, 맹자, 중용)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금강일보에 칼럼 "김충남의 古典의 향기"을 연재하고 있다. 

※ 대전 KBS 1TV 아침마당 "스타 강사 3인방"에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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