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힐링에세이]

박경은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대표

곱게 다듬어진 언어를 사용하고 공감되는 눈빛을 보내고 있지만 자신을 드려다 볼 수 없는, 보지 않는, 보지 못한 심리상담사를 만날 때가 종종 있다. 또 다른 현장에서 또 다른 모습을 볼 때는 ‘헉’ 소리만 난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이 어떻게 ‘심리상담을?’, 또는 ‘온도가 없는 심리상담사’라고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해준다. 그 사람과 같은 현장 속에 있을 때 내 모습을 자꾸 보게 된다. ‘나는 어떤 심리상담사인가?’, ‘나는 상담현장과 다른 현장에서 어떤 사람일까?’, ‘내가 다른 상담사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안타깝게 여기는 것은 나의 무엇 때문일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 때문에 자신이 피해를 본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등 수없이 생각한다. 심리상담은 지식으로, 이론으로 상담하는 것이 아님을 너무도 잘 안다. 분명 그들만의 이유가 있다. 단지 그 이유가 아직도 자신의 아픔과 상처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는 것이 아프게 다가올 뿐이다.

나는 내담자의 입장에서 긴 시간을 보냈고, 상담자의 입장에서 긴 세월을 보내야 하는 입장에서 심리상담사는 적어도 온도가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여기서 말하는 ‘온도’는 많은 의미가 있다. 따뜻한 인간애, 상담현장에서는 자신의 상처보다는 타인의 상처를 함께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 그리고 담아줄 수 있는 그릇을 키우는 것 등이 포함된다. 이것이 ‘나의 함정인가’란 생각을 해 봤지만 타인의 상처를 함께 한다는 이유에서는 꼭 필요한 요소임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의 인격은 양파와도 같다. 많은 껍질들 속에는 다양한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래서 그 어떤 것도 선입견을 갖거나 성급한 결정이나 자기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가 관계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단지 양파의 많은 껍질들 가운데 일부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진실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온도가 없다’는 말도 어쩌면 거짓된 말이다. 이것은 언어의 모순이다. 그렇지만 인간이 어리석은 것은 그것이 ‘맞다’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각자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틀렸다’라고 말할 수 없다. 단지 서로의 감정이 ‘다르다’라고는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다름’이라는 언어를 사용하지만 이미 마음에서는 단절을 선언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너는 나와 다른 사람’, ‘이 모임은 나와 성격이 다른 모임’, ‘저 사람은 소통이 안 되는 사람’ 등 수많은 이유로 인정하기보다는 이미 단절된 마음을 안고 살아간다. 여기서 ‘온도가 없는 심리상담사’는 ‘자신의 상처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보면 진심어린 마음을 타인에게 줄 수 없는 상태’의 의미다.

마음을 다루는 심리상담사가 마음이 따뜻해야 하는가? 마음이 차가우면 심리상담사가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가? 사람의 잘못을 판결하는 판사라고 해서 꼭 인간적인가? 인간적임을 꼭 배워야만 판사를 하는가? 질병을 다루는 의사라고 해서 인간적인가? 상업적인 의사는 의사가 아닌가? 선생님이라고 해서 스승이 될 수 있는가? 그냥 선생님이면 안 되는가? 부모가 교수라고 해서 자녀들이 잘 컸다고 말할 수 있는가? 부모가 교수라고 해서 자녀가 범죄자라면? 우리는 수많은 아이러니한 일들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시시각각(時時刻刻) 일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진리를 탐구해야 하는, 진실을 탐구해야 하는 생(生)의 목표가 있다. 그 이유는 인간에게는 영·혼·육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개인의 목표가 아니어도 좋고 개인의 목표여도 좋다. 중요한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정신세계가 있다는 것이다. 육(肉)으로 사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다. 미움, 시기, 질투, 거짓됨, 판단, 욕심, 교만 등이 이에 해당된다. 영·혼·육은 종교적인 단어가 아니다. 간혹 많이 당황스럽고, 크게 놀라 어리벙벙해져 현실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때 ‘혼이 나갔다.’란 말을 사용한다. 그리고 영혼이 존재한다는 것은 ‘내가 죽으면 저 하늘의 별이 되고 싶어.’, ‘내가 다시 태어나도 아빠엄마의 딸로 태어 날거야.’ 등 여운을 남기는 말을 한다. 이러한 말 속에 종교를 갖고 있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무의식 안에는 영·혼·육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리상담사! 어떤 사람에겐 그저 직업일 수 있다. ‘심리상담사’라고는 하지만 상담보다는 사업을 잘 하는 사람, 공감을 잘하는 사람, 내공이 높은 사람, 지식을 잘 전달하는 사람, 직업의 종류 중 하나 등 다양하다. 즉 컴퓨터분야도 디자인하는 사람, 수리하는 사람, 영상 편집하는 사람 등 다양한 것처럼 말이다. 단지 자신이 잘하는 분야에서 양심을 벗어나지 않도록 영·혼·육을 균형 있게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각 분야에서의 사명감일 수 있다. '심리상담사'는 적어도 치유할 마음에 칼을 휘둘리는 직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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