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지난 2019년 1월 대전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자료사진.
지난 2019년 1월 대전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자료사진.

문재인 정부가 사실상 집권 마지막 해를 맞았다. 이제부터 새로운 국정과제를 구상하고 시행할 여유는 없다. 정권 출범과 함께 내놓은 정책들을 정리할 시점이다. 지금까지의 정책과 국정사업들을 제대로 점검·평가해서 정책의 확대, 유지, 축소, 종결이라는 4가지 분류체계로 다듬어야 할 것이다. 

임기 동안 문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내세운 국정과제 중의 하나가 바로 자치분권이다.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은 5대 국정목표인 동시에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자치분권’이 20대 국정전략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이를 대변하고 있다. 

더욱이 노무현 정부가 지방자치와 분권에 대한 비전과 목표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국가재구조화 차원에서 강력히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대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한 한계와 교훈을 문재인 정부는 잘 파악하고 있었다. 때문에 노무현 정부의 자치분권을 계승·발전시키고자 했던 문 정부는 자신감에 차있었을 뿐 아니라 국민들과 지방이 거는 기대 또한 상당했다. 

이제 지난 4년 동안의 자치분권 성과와 문제점을 놓고 성과는 성과대로 문제점은 문제점대로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짚어볼 때가 되었다. 필자는 노무현 정부에서부터 현 정부에 이르기 까지 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위원을 줄곧 맡아 자문해 오면서 각 정부와 대통령의 자치와 분권에 대한 의지와 수행능력 및 성과와 한계를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따라서 이들 위원회에서 직접 질의·토론한 경험과 학회활동 및 언론을 통해 주장했던 내용과 소감을 중심으로 문 정부의 자치분권을 진단해 보고자 한다.

자치분권으로 내 삶이 바뀌었나

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회는 자치분권 과제 실현을 위한 총괄 조정기구이다. 문 정부 집권 초 이 위원회에서 정리 제시한 자치분권의 비전과 목표는 ‘내 삶을 바꾸는 자치분권’ 그리고 ‘연방제에 버금가는 강력한 지방분권’이었다. 이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획기적인 구상이었다. 필자는 이에 대해 위원회 검토회의에서 몇 가지 의문점을 분명하게 제시한 바 있다. 

첫째, 내 삶을 내가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자치분권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누가, 내 삶은 맘대로 바꾸려 하는지 먼저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답해야 한다. 

둘째, 연방제에 준하는 강력한 자치분권을 추진한다는 목표에 대해서도 연방제는 도대체 어떤 연방제를 말하는 것이며,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서 국민적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답변이나 치열한 토론 없이 비전과 목표는 바뀌었다. 내 삶이 아닌 우리 삶으로 비전은 바뀌었고 연방제를 내세운 목표도 사라졌다. 대신, 주민과 함께 하는 정부, 다양성이 꽃피는 지역, 새로움이 넘치는 사회가 새 목표로 제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기간의 자치분권을 종합적으로 뒤돌아 볼 때, 자치와 분권이 우리 삶을 행복하게 바꾸는 한편 다양성과 창의성 그리고 자율성이 넘치는 지역사회로 변화시켰다고 보기에는 국민들이 선뜻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정운영 방식이 바뀌었나

육동일 충남대 명예교수
육동일 충남대 명예교수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통령의 국민직선과 지방자치는 부활되었지만, 국정운영의 기본 틀은 중앙집권 그것도 청와대 중심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역대 정부마다 청와대가 주도해서 추진해 온 역사 바로 세우기나 적폐청산, 정의와 공정을 향한 경제혁신, 외교안보와 국민안전, 그리고 공공개혁들은 대부분 용두사미로 끝났거나 제대로 된 성과 없이 중앙집권만 더욱 공고히 하고 말았다. 

모든 권력이 청와대에 집중될수록 초기에는 국민들의 기대감을 높이는 동시에 정부조직을 장악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정부부처가 청와대로부터의 하명만을 기다리는 가운데 복지부동에 빠지고 말기 때문에 국정은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대통령은 레임덕에 걸리고 국정은 총체적 위기를 맞게 됨에 따라 예외없이 국민은 분열되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된다. 

문재인 정부는 전임 정부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같은 특권과 반칙이 제왕적 대통령제와 중앙집권적 국정운영 방식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탄핵과정과 촛불시위를 통해 확인한 바 있다. 때문에 국정의제를 본격적으로 시행하기 전에 국정운영의 틀과 방식을 과감히 바꿀 것으로 누구나 기대했다. 

그러나 임기 초반기에는 적폐청산과 소득주도 성장정책을 추진한다는 명분으로 또 임기 후반기부터는 <코로나19>의 방역위기로 인해 불가피하게 청와대의 규모와 역할은 확대·강화되어 왔다. 그 결과 자치분권 과제는 뒷전으로 물러나게 된다. 

권력이 한곳에 모이면 부패하고, 견제 받지 않으면 오만해지는 것이 만고의 진리다. 필자는 전 정부에서부터 지금까지 ‘국정운영의 틀은 청와대 중심의 중앙집권적 통제체제에서 지방분권형 협력체제로 바꿔야 한다. 그리고 그 운영방식은 투명과 공개, 소통과 협치를 중심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래야만 임기말 정권이 연착륙해서 국정이 안정되고 지방자치와 분권이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치권은 획기적으로 강화되었나

지방자치제는 지역 주민들의 의사를 수렴해서 지역문제를 스스로의 역량과 책임하에 해결해나가는 독립적인 제도다. 하지만, 독립적인 제도가 확보됐다고 해서 지방자치가 정상 작동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제도가 자율적으로 움직이려면 권한이 있어야 한다. 지방자치권을 말한다. 즉 지방이 스스로 법규와 조직을 만들 수 있어야 하고,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행정사무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필요한 재정을 스스로 조달하고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중앙정부는 여전히 권한, 돈과 사무를 움켜지고 지방에 획기적으로 이양하지 않고 있다. 문 정부하에서도 코로나 방역위기는 중앙의 권한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는 한편, 주민들의 지방분권에 대한 인식은 더욱 약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앙정부 주도의 방역체제 관리와 국민들에 대한 재난지원금 지급이다. 주민들 입장에서는 중앙정부에 거는 기대와 역할만 커진 채 지방정부는 계속 위축될 뿐이다. 

지난해 말, 1988년 지방자치법이 개정된 이후 30년 만에 전부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 개정안에는 주민참여 확대를 위한 주민 조례발안제도 개선, 주민감사청구권 확대 등과 지방의회의 독립성과 전문성 강화를 위해 사무직원 임용권과 전문 인력 채용, 중앙지방협력회의와 100만 이상 대도시 특례제도 도입 등이 포함됨으로써 다소의 성과는 있다. 

그러나 주민자치회 조항이 빠져있어 주민주권 구현이 무색해 졌을 뿐 아니라, 계속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지방재정자립의 문제와 인구감소로 인한 지방소멸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여전히 미비해서 지방에서 불만의 소리가 높다. 요컨대, 지방중심, 주민중심의 지방자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데에는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를 면할 수 없다.

어떻게 해야 하나

결론적으로, 문 정부를 보더라고 자치와 분권의 길은 어렵고 지난한 길임을 알 수 있다. 의지와 열정만으로 국민들의 높은 기대에 부응하기가 어렵다. 자치분권에 저항하는 세력은 극복해야 하고, 두려워하는 세력은 설득해서 국민과 함께 가는 길에 동참시켜야 한다. 대한민국은 국민이 부여한 대통령과 정권의 권력이 수직적이고 수평적으로 분립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켜야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다. 

특히, 포스트 코로나 시대 지역사회와 시민사회가 중심이 되어 감염병을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예방·관리하기 위해서도 자치분권의 길은 힘들어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이제 남은 임기 동안 자치경찰제를 비롯한 문 정부의 자치분권 과제들이 잘 마무리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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