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창호의 허튼소리] 수필가, 전 충남도 부여부군수

나창호 수필가(전 충남도 부여부군수).
나창호 수필가(전 충남도 부여부군수).

강추위가 한풀 꺾인 듯 오늘은 햇살이 좋고 날씨도 모처럼 푸근하다. 베란다 창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니 그동안 하얗게 쌓였던 눈들이 녹고 그늘진 곳에서나 듬성듬성 잔설이 보인다. 

뜬금없이 먼 산을 한참 바라다보니 문득 초등학교 때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여름 장마 때면 붉은 황톳물이 내려가고, 겨울에 얼어붙던 큰 내에는 돌 징검다리가 놓여 있었다. 하얀 신작로에 차는 좀처럼 다니지 않고 소달구지나 다니던 아득한 시절, 반세기하고도 십년을 더 보태야지 싶다.
 
이렇게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된 것은 요즘 언론에 떠들썩한 인권문제 때문이지 싶다. 생후 겨우 16개월 된 정인이가 입양된 후 학대를 받다가 숨진 사건에 전국의 어머니들이 분노한다는 것에서부터, 검찰이 무혐의 처리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별장 성접대 의혹 사건을 대통령 지시로 2019년 3월 재수사하면서 불거진 불법 출금사건이 매일 거론되기 때문이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에 작은 리본을 왼쪽 가슴에 달고 다니는 일이 많았다. 흰 천이나 흰 종이를 직사각형으로 작게 오린 후(아랫부분은 제비꼬리처럼 도려냈다) 글자를 써서 달고 다녔었다. 불조심, 유엔의 날, 인권옹호의 달 같은 내용이었다.

어떤 것은 뜻도 모르면서 학교에서 시키니까 그리하고 다녔다. 하루는 아버지가 가슴에 단 ‘인권옹호의 달’ 리본을 보시더니 “너 인권옹호가 뭔지 아냐?”하고 물의셨다. 머리를 가로 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어려서 “두둔하여 편들어 지킨다(옹호하다)거나, (사회 일반의) 인권을 보호하고 지킨다(인권옹호)”같은 한자말을 알 리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주 먼 옛날에도 시골의 초등학생에게까지 인권의 소중함을 깨우치려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가 곧 보호되어야 할 천부의 인권 아니겠는가. 법무부는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신장하는 주무부처라 할 수 있다. 검찰 또한 불법행위나 폭력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법집행기관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법무부와 검찰이 오히려 불법행위를 저질러 인권을 침해하거나, 잘못된 법집행으로 인권이 침해당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우선 잠시 언급했던 정인이 사건을 보자. 16개월 된 어린아이의 사인이 쇄골 및 늑골 골절, 팔꿈치 골절, 췌장 절단, 복부(장기)파열이라니 처참하기 그지없다. 그런데도 검찰은 살인죄를 적용하지 않고 아동학대 치사혐의로 기소했다가 국민들의 거센 살인죄 적용 요구가 일자 그제야 공소장을 변경했다고 한다. 검찰이 이렇게 법적용을 느슨히 하면 겨우 16개월로 억울한 삶을 마감한 말 못하는 어린아이의 인권은 어떻게 되겠는가. 정인이 사건에는 경찰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 무려 3번이나 학대의심 신고가 있었는데도 무혐의 내사종결 처리했다니 어이가 없다.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저버린 경찰이 오히려 더 나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김학의 씨 불법출금 사건은 2019년 3월 23일 (피의자 신분이 아닌)김씨의 출국을 막으려고 저지른 것이다. 출국금지 요청 권한이 없는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파견 검사가 가짜 사건번호를 적어 출금요청을 하고(법무부 제출서류에 관인도 찍히지 않았다 한다), 법무부는 김학의 씨에 대한 출입국 정보를 무려 681차례나 들여다보며 불법 사찰했다고 한다. 출국기록을 불법 조회한 직원들 단톡방에 “장관님 금일봉 줄듯”운운했다니 당시의 법무부 장관도 자유롭지 못한 모양이다.

또 대검(기획조정부)의 간부들은 불법 출금조치를 반대했음에도 친정부 검사들이 이를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준법해야 할 법무부와 검찰이 이래서야 국민들이 불안해서 살 수 있겠는가.

헌데 법무부의 해명은 “긴급 출국금지 조치 시는 임시번호를 붙이고 사후에 정식번호를 붙이는 게 관행”이라고 했다한다. 긴급하면 가짜 사건번호나 다른 사건번호를 갖다 붙여도 괜찮다는 말 아닌가. 이에 대해 한 부장검사는 “검찰에 그런 관행 같은 건 있을 수 없다, 그런 짓 적발되면 검사 생명 끝장난다” 하고, 어느 부장판사는 “(불법출금은) 미친 짓, 사법시스템에 대한 공격”이라고 했다니 법무부가 불법행위를 스스로 자백한 꼴 아닌가? 

법무부의 잘못은 이뿐만이 아니다. 서울동부구치소 내 코로나 확산이 그렇다. 밀폐, 밀접 된 환경 속에서 생활하는 수감자들에게 마스크를 지급하지 않은 것이 그렇고, 대규모 확산(1월 3일 기준 누적 확진자 1,084명) 사태를 막지 못해 끝내 사망자가 나온 것도 그렇다.
 
더 한심한 것은 수감자 중 누군가가 외벽 유리창을 깨고 “살려주세요. 질병관리본부 지시(로) 확진자 8명 수용”이라 적힌 종이를 외부에 내보인 것을 두고 재산손괴 운운하며 처벌하겠다니 이해할 수가 없다. 오히려 수감자에 대한 인권침해가 아닌지 묻고 싶다. 얼마나 다급하고 황당하며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으면 그리했겠는가. 그 행위는 급박한 상황을 피하려는 ‘긴급피난’ 아닐까 싶다.

이제부터라도 법무부는 잘못된 관행을 뉘우치고 법치나 교도행정에서 인권침해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다. 법무부나 검찰은 ‘국민에겐 봄바람 같이, 자신과 조직에는 서릿발 같이’ 엄격해야 마땅하다. 국민을 상대로 그 어떤 불법행위나 직무유기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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