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영동 출생 어려운 유년시절 딛고 ‘성공스토리’
연세대 졸업 사법연수원 23기 윤석열 총장과 동기
대전 서구을 내리 3선 후 ‘담대한 도전’ 큰 꿈 포부

법무부장관으로 내정된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 지난 총선 당선 직후 모습. 자료사진
법무부장관으로 내정된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 지난 총선 당선 직후 모습. 자료사진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대전 서구을)이 31일 신임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내정되면서 그의 인생역전 스토리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박 내정자는 문재인 정부 들어 개각 때마다 법무부 장관 후보로 이름을 올렸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검찰개혁의 마지막 카드로 박 내정자를 선택했다. 

박 내정자는 어려운 유년시절을 딛고 일어선 ‘성공스토리’로도 유명하다. 충북 영동 시골마을에서 장애를 가진 부모님에게서 태어났고, 초등학교 시절 서울 봉천동 달동네로 이사해 어려운 유년기를 겪었다.  

아버지는 중2때 집을 나간 뒤 생사도 확인하지 못하는 등 성장기 역시 불운했다. 경제적 능력이 없었던 아버지가 열차에서 행상을 해서 3000원을 벌어 그 중 1000원을 용돈으로 줬던 기억이 유일할 정도.

검정고시를 거쳐 1985년 또래보다 늦게 연세대 법학과에 입학하면서 사회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대학사회를 중심으로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과 학생회장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1년 윤석열 현 검찰총장과 함께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판사시절 재판과 관련해 여러 일화도 갖고 있다. 1996년 한총련 학생 등에 대한 무리한 구속영장 신청을 기각하는 등 소신 판결을 내려 보수 세력의 ‘좌파’공세를 겪기도 했다.    

1999년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 사건의 배석판사로 재판에 참여해 유죄를 선고했다. 훗날 삼례 3인조가 오판으로 무고한 옥살이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판결을 주도하진 않았지만 배석판사의 책임을 통감해 이들에게 직접 사과하기도 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법복을 벗고 당시 노무현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캠프에 합류했다. 故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시절 민정 비서관과 법무 비서관을 지냈다.  

이후 대전 서구을 지역구에서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펼치며 2008년 총선에 출마했지만 3위로 낙선했다. 다음 총선인 2012년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전 서구을에서 43.63% 득표로 당선되며 국회입성에 성공했다. 이후 21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내리 3선에 성공했다. 

지난 4월 펼쳐진 21대 총선에서는 57.5% 득표로 무난하게 당선돼 3선 중진 고지에 올랐고, ‘충청대망론’을 시사하는 당선소감으로 화제를 모았다. 

박 의원은 당선 직후 “충청을 대한민국의 중심에 세우는 데 선두주자가 되겠다”며 “변방의 역사, 충청의 역사를 이제 대한민국 역사의 중심에 세우는 데 담대히 도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율사 출신인 만큼 국회에서도 주로 법제·사법분야 활동에 주력했다. 19대 국회 법제사법위원, 민주당 법률위원장, 원내대변인 등을 역임했고 20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간사, 민주당 적폐청산위원장, 사법개혁 특별위원회 간사, 수석대변인 등 요직을 거쳤다. 이번 국회인 21대 국회 들어서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에는 조국, 추미애 장관 임명시 함께 법무장관 하마평에 오르는 등 매번 입각가능성이 거론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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