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힐링에세이]

박경은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대표
박경은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대표

어느 날 묵상 중에 ‘아’ 하고 떠오른 생각이다. 이 세상에서 마땅하고 옳은 일은 오직 ‘감사함’이다. 또한 자비를 베푸는 행위는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자비 베풂을 받는 자’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찰라’의 깨달음이니 증명할 수 없다. 인간이 불평하고 시기하고 탐욕스러운 이유는 마땅하고 당연한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은 당연하다.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잘 낫다고 생각하거나 자신보다 더 못된 사람이 잘 사는 꼴이 배가 아프다.’ 등의 ‘못마땅하다’는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편협 된 마음에서 오는 것들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 무엇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일까 생각했다. 의미를 부여한다고 한다면 채워져야 하는 것들이 많아진다. 그것이 결국 ‘바램’이 되고 자신이나 타인에 대한 기대가 된다. 바라는 마음과 기대는 반드시 좌절과 실망, 불만족, 공허함 등의 감정을 동반하게 되어 있다. 이 순간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지거나 출장상태가 되어 버린다. 그렇다고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의미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일상생활 속에서의 적절함은 각 사람마다의 가치 기준에 따라 다르다. 자신이 소화할 만큼의 의미여도 충분하다. 의미가 있든지 없던지 간에 자신에게 성실하고 정직하여야 한다.

우리는 삶에 대해서 자신을, 타인을 얼마나 이해하려고 했을까? 아니면 이해하고 싶지 않는 그 무엇 때문에 힘든 것은 아닐까? 우리에게 ‘감사’의 마음이 없어질 때 세상에는 어둠만이 존재하는 느낌으로 살아가게 된다. 해가 떠도 어둡고, 해가 저물어도 어둔 상태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을 대하게 된다. 우리에게는 백 프로 ‘만족’이란 것이 없듯이, 백 프로 ‘불만족’도 없다. 열 개 중에 아홉 개를 가졌고 갖지 못한 ‘하나’ 때문에 괴로운 사람이 있다. 그 반면에 열 개 중에 아홉 개는 없고 ‘하나’만 가진 사람이 늘 기쁘고 감사 충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무슨 차이일까?

흔히 자신이 삶을 주도한다고 믿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이 중심이 되는 경우를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좀 쉽게 풀어보면, 직면한 문제에 있어서 지식을 많이 쌓은 사람은 지식으로 해결하고, 경험을 많이 쌓은 사람은 경험의 노하우를 믿기에 자신의 신념으로 해결한다. 그러나 그게 전부일까? 아니다. 이성과 감성의 적절함이 필요하다. 때로는 이성으로만 해결해 갈 때도 있고, 감성으로만 해결해 갈 때도 있다. 상황에 따라 적절한 판단은 건강한 자기(self)에서 나오게 된다.
‘감사’가 없는 삶은 상당히 고통스럽다. 고통의 대부분은 자신이 만든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타인에 의해서 고통이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고통을 자신이 만들었다고 믿는다면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 또한 자신의 몫이다. 고통을 만들어야만 했던 이유가 분명하게 있었을 것이다. 그 이유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그리고 스스로 답한 내용에 대해서 계속해서 꼽 씹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고통이 또 다른 고통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치 고구마를 캘 때 덩달아 따라 고구마처럼 말이다.

우리가 현재를 살지 못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들에 대한 ‘감사’함을 잊는 것은 허황된 꿈과 집착된 마음 때문이다. 현재를 살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많은 의미가 있다. 현재를 성실히 살지 않게 한다. 현재를 부정하고 싶어 한다. 현재에 주어진 많은 것들에 대한 '감사'가 없다. '감사'가 없는 삶은 불평불만의 세상만 남게 된다.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그 어떤 이유도 없는 것이 곧 ‘감사’임을 가슴에 새겨야 오늘을 기쁘게 살 수 있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