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눈] 시민이 체감할 수 있어야 ‘진짜 성과’ 

허태정 대전시장. 자료사진.

“엉킨 실타래는 잘 풀지만, 뜨개질 솜씨가 있는지 아직 모르겠다. 빵틀은 여기저기서 잘 주워모으지만, 빵을 잘 구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최근 지인으로부터 들은 허태정 대전시장에 대한 평가다. 올해 여기저기 얽혀 추진이 불투명했던 시정 숙원사업들이 상당수 해소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매듭까지 잘 지을지는 지켜봐야겠다는 이야기다. 

엉킨 실타래를 풀어내는 것 자체가 고도의 역량이라고 본다면, 허 시장은 그 만한 역량을 입증했다고 볼 수 있다. 몇몇 갈등사업 해소는 물론이고, 혁신도시 지정과 같은 성과가 여기에 해당된다. 

대전·충남 혁신도시 지정에 대해 영남권 의원들 반발이 불거질 당시만 하더라도, 과연 충청 정치권이 이 문제를 풀어낼 수 있을 것인지 의구심이 컸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엉킨 실타래가 풀렸다. 풀린 것인지 풀어낸 것인지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지역인재 의무채용 확대와 혁신도시 추가 지정으로 대전·충남의 경제생태계에 희망을 던진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아직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혁신도시 지정은 빵틀이고 공공기관 이전은 빵이다. 빵틀을 확보해 빵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지만, 배가 부를 순 없다. 지금 대전은 유사한 당면과제를 여럿 안고 있다. 

도시철도 2호선 트램 건설은 중앙정부 승인을 받아 의심의 여지없이 진행되겠지만, 시민들은 2027년에나 이용할 수 있다. 아직도 교통체증이나 노선문제, 일부 구간 지하화 등 풀어야 할 숙제도 즐비하다. 이 역시 빵틀만 있고 빵은 없는 형국이다. 

뿐만 아니다. 유성복합터미널 공영개발, 대전의료원 사업 예타면제, 베이스볼드림파크, 대전시티즌 기업구단화, 2022년 세계지방정부연합(UCLG) 총회 개최, 대전역세권 활성화 등 대전시가 내세우는 치적들 대부분은 ‘빵틀을 확보했다’는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과학도시 비전을 세우고 과학부시장, 과학산업특보, 과학산업진흥원 등으로 조직과 인력을 재편한 것 역시 ‘큼직한 빵틀’을 구비했다는 소식일 뿐, 빵을 만들어냈다는 소식은 아니다.  

때문에 시민들은 ‘허태정 시장이 뭔가 좋은 성과를 내고 있구나’라고 직관할 수 있지만, ‘내 삶이 변화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체감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빵틀만 잔뜩 쌓아 뒀을 뿐, 당장 내 손에 쥔 빵은 없기에 아직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대전시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도 이를 입증한다. 올해 시정에 대한 긍정평가(75%)가 부정평가(22%)를 압도했다는 결과는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역대 지방정부 그 어느 시절, 관주도 여론조사에서 부정평가가 긍정을 앞선 적이 있었던가. 조사의 객관성만 곱씹게 된다.

다만 이번 조사에서 ‘부정평가의 이유’를 명시한 대목은 허태정 시장에게 충분히 ‘약’이 될 만한 내용이다. 대전시정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가시적인 성과 체감의 어려움’ 35.6%, ‘내 삶의 도움이 되는 정책 부족’ 28.5%, ‘더딘 정책·사업추진 속도’ 27.2%로 조사됐다. 빵틀을 보여주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빵을 달라는 아우성처럼 들린다. 

허태정 시장도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듯 보인다. 허 시장은 지난 16일 시정결산 온라인브리핑에서 “지난 2년은 문제를 해결하는 시간이었다면, 앞으로 2년은 미래로 나아가는 시간”이라고 규정했다. 지난 2년은 엉킨 실타래를 풀고 빵틀을 구비하는 시간이었다면, 앞으로 2년은 뜨개질을 하고 빵을 굽는 시간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가야할 길은 분명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대목이 남았다. 성과에 매몰된 나머지 내용을 간과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대전의 브랜드, 허태정 시장의 브랜드로 어떤 빵을 출시할 것이냐의 문제다. 시민들이 그냥 배만 불릴 빵을 원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모두들 내가 어떤 빵을 먹는지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있다. 색깔을 입히고 맛을 가미한 빵에 대전형 브랜드를 걸 수 있어야 진짜 성공한 대전시정이고, 대전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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