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과거 기자들 사이에서 회자되던 우스갯소리가 있다. 기자 경찰 세무직원 셋이 술집에 가면 술값은 누가 낼까? 질문 받은 사람이 머뭇거리면 문제를 낸 사람은 술집주인이라고 답해준다. 지금은 어림없는 얘기지만 당시엔 세 직업의 갑질을 상징하는 얘기였다. 세 명의 공통점은 ‘남을 괴롭힐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점이다. 술집주인이 맘에 들지 않으면 갖가지 방법으로 괴롭힐 수 있다. 검찰은 더 세다. 검사가 맘을 비딱하게 먹으면 당사자는 죄가 없어도 겁이 난다. 

검찰이 세 직업과 다른 것은 괴롭히는 대상의 신분과 지위가 대체로 더 높고 위협적이라는 것이다. 검찰은 거물 정치인들에게도 직접적 위협이 될 수 있다. 나머지는 정치인들에게 그 정도의 영향력은 갖지 못한다. 언론의 ‘과도한 비판’이 정치인에게 부담을 줄 수는 있으나 검찰만큼의 위협은 못 된다. 검찰만 없다면, 있더라도 나와 우리 편은 봐주는 검찰이라야 정치인에겐 좋은 검찰이다.

검찰 힘 못쓰면 좋아할 사람들

권력의 측근들은 공적 업무와 관련한 검찰 수사를 받더라도 수사 정보를 언론에 흘리지 않았으면 좋겠고, 검찰에 조사를 받으러 나갈 때도 포토라인에 서지 않고 뒷문으로 몰래 들어가길 원한다. 이 정권 들어서 결국 제도가 그렇게 바뀌었다. ‘권력의 측근들’은 인권을 한껏 누리는 나라가 되었다. 힘없는 잡범과 기업인들만 여전히 예전 같은 취급을 받는다.

술집주인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게 하려면 세 직업을 없애거나 힘을 못 쓰게 만들어야 한다. 문제는 기자와 경찰이 없어지면 술집주인보다 더 좋아할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사기꾼이나 도둑들이다. 이들의 범죄 사실을 보도하고 수사하는 게 기자와 경찰의 본연 업무이고 권리다. 술집주인이 받는 피해 때문에 보도와 수사를 아예 못하게 기자와 경찰의 손발을 묶어놓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술집주인이 아니라 도둑이거나 범죄자들이다. 지금 검찰을 죽이려고 드는 세력 또한 검찰 수사를 피해야 하는 입장에 처해 있거나 그와 한 편인 사람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런 사람들의 중심에 서서 검찰개혁을 외치고 있다. 그는 법무장관의 윤석열 찍어내기 요청을 재가하면서 “검찰은 그동안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의 잘못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고 책임을 물을 길도 없는 성역이 돼 왔다”고 말했다. 사돈 남 말이다. 검찰이 아니라 자신에게 해야 할 말이다. 임기 2년의 총장을 전대미문의 편법 징계로 식물총장으로 만듦으로써, 무소불위의 권한은 검찰이 아니라 이 정권만이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 또 한번 증명됐다. 

검찰, 독립 과잉이 아니라 권력의 충견일 때가 문제

역대 어느 나라 어느 정권에서도 검찰이 문제가 될 때는 이들이 권력의 시녀와 충견 노릇을 할 때였지, 검찰권 독립의 과잉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경우는 없다. 검찰권은 기본적으로 검찰에 대한 인사권을 가진 대통령의 권한에 속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정권은 검찰을 두려워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물론 권력 스스로가 부패했을 경우, 왕조시대가 아닌 만큼 권력도 자신이 임명한 검찰에게 수사 받아야 한다. 살아있는 권력도 수사할 수 있어야 진정한 법치 국가요 민주 국가다.

문재인 정권은 이를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옛날 임금이 사법 관리 대하듯 검찰을 부리려 한다. 그러나 2000년 전 사법 관리도 왕명보다는 법을 먼저 따랐다. 한문제(漢文帝)가 수레를 타고 다리를 지날 때 한 사람이 뛰쳐나와 말을 놀라게 하여 다칠 뻔하였다. 당시의 검찰 장석지가 그 사람에게 벌금형을 부과하자 문제는 형량이 너무 낮다며 화를 냈다. 장석지가 “법(法)은 천하가 공유하는 것”이라며 반대하자 문제도 받아들였다.

법은 천하가 공유하는 게 맞지만 ‘나와 우리 편은 예외로 하자’는 게 문재인 정권 검찰개혁의 실질적 목표다. ‘탈원전의 불법적 추진’과 ‘울산시장 부정선거 의혹’과 관련, 검찰의 칼끝이 청와대를 향하자 검찰총장의 죄를 억지로 만들어내서 정직 2개월을 때렸다. 검찰총장에게 정말 책임을 물을 만한 죄가 있으면 총장 임기제가 아니라 헌법으로 임기를 보장해도 대통령은 떳떳하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런 게 없는 데도 총장을 잡으려니 졸렬하고 구차한 수법을 썼다.

국민들은 검찰의 문제점을 알고 있다. 권력기관이란 힘을 이용해서 죄 없는 사람까지 괴롭히면서도 자기 식구에 대해선 무조건 감싸는 조직이다. 어떻게든 바꿔야 되지만 작금의 ‘윤석렬 찍어내기’는 이와는 무관한 문제다. 아무리 무능한 권력이라도 자기가 임명한 검찰총장에게 부당하고 억울하게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는 없다. 검찰총장 입장에서도 자신에게 큰 벼슬을 준 사람에게 일부러 그럴 이유가 없다. 대통령과 검찰총장 사이가 안 좋아졌다면 문제는 전적으로 대통령에게 있다.

검찰보다 훨씬 심한 청와대의 ‘조직이기주의’

검찰의 ‘내 식구 감싸기’도 척결해야 할 문제지만 이 문제라면 훨씬 더 심각한 곳이 있다. 뭐든 내편만 최고라는 ‘청와대’이다. 조직 이기주의에서 지금 청와대는 검찰과 비교가 안 된다. 내 편, 내 사람이 하는 정책은 무조건 옳고 잘못이 없다는 사람들이다. 마침내 부동산 대란이 전국으로 번졌는데도 책임을 묻기는커녕 감싸는 게 청와대다. 청와대의 조직이기주의에 따른 국가적 피해는 계량이 불가능하다. 

술집주인의 억울한 얘기는 권력이 검찰 경찰은 물론 언론까지 통제하던 전두환 정권 시절에 나온 얘기로 보인다. 전두환 정권도 정의사회구현을 국시로 내걸었었지만 술집주인은 보호받지 못했다. 권력이 권력기관을 직접 통제하는 나라일수록 국민들 피해는 커진다. 모든 독재국가의 공통점이지만 문재인 정권은 그걸 원한다. ‘나쁜 검찰’은 힘을 빼고 ‘착한 공수처’만들어서 정의사회를 구현해보겠다는 검찰 죽이기의 명분이지만 결과는 그 반대가 될 게 뻔하다. 정치는 더 썩고 나라는 더 병들어 갈 것이다.

고금에 ‘환관’들 때문에 정권 말아먹고 나라 망치는 사례는 수도 없지만, 검찰이 너무 독립적이어서 나라가 잘못됐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검찰개혁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검찰파쇼는 검찰을 이용하는 독재권력의 파쇼이지 검찰 자체의 파쇼로 볼 수는 없다. 한때 명성을 날리던 도쿄지검특수부가 조직이기주의 경향을 띠면서 비판을 받았지만 일본 국민들은 옛날 같은 검찰이 되길 여전히 바라고 있다. 막강 아베도 잡아넣을 수 있는 검찰을 원하지 아베라서 못 잡는 검찰을 원하지는 않는다. 문재인 정권은 그런 검찰이 싫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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