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1호기 관련 자료 444개를 삭제한 혐의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2명이 구속되자,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이 “인내의 한계를 느낀다”며 법원을 비판했다. 대전지법 오세용 판사가 지난 4일 원전 관련 감사 방해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공무원 두 명에 대해 청구된 구속영장을 발부한 데 대한 불만이다. 우 의원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대통령의 공약 관련 정책을 맡아 수행한 담당 공무원들에게 구속이라는 잣대까지 들이댄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도를 훨씬 넘었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우 의원은 민주당 원내대표까지 지낸 4선 의원이다. 압도적 과반인 180석을 소유한 여당의 중진 의원 입에서 나오는 말이어서 흘려듣기 어렵다. 정치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판결에는 여야가 상반된 반응을 보일 수는 있으나 과도하면 사법권 침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거대 여당이 사법부 판결에 대해 대놓고 ‘인내’운운하는 것은 판사에 대한 중대한 겁박이며 사법부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다. 

우 의원은 “(법원이) 대통령 공약까지 사법적 대상으로 삼고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사실이 아니다. 오 판사가 대통령 공약의 문제점을 인정한 것은 전혀 없다. 구속된 공무원들은 월성1호기를 조기 폐쇄시키려고 경제성을 조작하여 떨어뜨리고 이 사실을 숨기는 일에 적극 참여하거나 방조한 죄다. 월성1호기는 2022년까지 가동하면 중단하는 경우보다 3700억 원이 이득이라는 게 한전의 본래의 계산이었지만 억지로 줄이고 또 줄이면서 224억 원까지 낮췄고 이를 근거로 마침내 조기 폐쇄가 결정돼 있는 상태다.

대전지검 대전지법에 달린 ‘대한민국 법치주의’

대통령 공약을 포함해서 이런 식으로 추진해도 되는 정부 정책은 단 하나도 없다. 수치를 조작해서 추진되는 정책의 결과 어떨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탈원전은 논란이 큰 정책이다. 공정성과 투명성이 더욱더 요구되는 사안이다. 담당 공무원들이 본분을 망각하고 자료를 조작 은폐하면서 감사를 방해하는 행위는 용납하기 힘든 범죄다. 우 의원도 이런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가 대통령 공약을 들먹이면서 구속영장을 내준 판사를 압박한다. 힘이 센 자가 ‘인내’를 말할 때는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협박이며 위협이다. 지금 여권은 대통령이란 권력은 물론이고 국회까지 압도적으로 장악하고 있다. 개헌 빼고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여권의 이익에 어긋나는 조직이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어떤 것인지는 추미애-윤석열 갈등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여권의 인내를 시험하는 판사가 ‘제2 윤석열’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권력에 밉보이면 판사도 찍혀 나가는 수밖에 없다.

대전지검과 대전지법은 본의 아니게 현 정권에 예민한 사건을 수사하고 판단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사안의 성격이나 규모로 보면 위에서 다뤄야 할 문제를 대전에서 맡았다. 산업통상부가 위치한 세종시가 대전지검 관할이고 야당과 원자력 관련 시민단체가 이들을 대전지검에 고발하면서 그렇게 됐다. 대전지검 수사가 현 권력을 불편하게 하고, 그 수사에 대한 대전지법의 정당성 인정이 여당 중진의 ‘인내’발언까지 나오게 만들고 있다. 수사가 정상적으로 진행된다면 더 어려운 고비를 넘어야 할 수도 있다. 두 기관에는 부담이 되는 사건이다. 그러나 작금 대한민국이 과연 법치주의 국가인지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다. 대전지검과 대전지법의 어깨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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