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에 대비하는 시정으로 재탄생해야
'기브 엔드 테이크'전략으로 실리챙겨야
충청권 상생 역행하는 행성수도는 실패

'대전이 바로 당신입니다 (Daejeon is U)' 대전시가 내놓은 새 도시 슬로건이다. 그러나 최근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의 세종이전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시민들은 당당하고 자랑스런 대전이 아니라 점점 무기력해지는 대전을 왜 나와 동일시해야 하는지 그 슬로건을 못마땅해 하고 있다. 아니 시정이 실패할 때마다 그 책임을 시민 개개인에게 떠넘기는 거 같아서 화가 난다고 한다. 

중앙정부가 답을 이미 정해놓고 밀어붙이는 이른바‘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 라는 국정의 일관된 방침이 대전에서도 강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전시의 정치와 행정은 속수무책이다. 지방선거에서 여당 시장, 구청장들 모두를 밀어줬을 뿐만 아니라 총선에서 조차 여당 국회의원 전원을 당선시켜주었지만 달라진 게 없다.

지난 선거결과는 갈수록 쇠락하고 있는 대전시를 집권여당의 시장과 구청장 그리고 국회의원들이 힘을 합쳐 국정운영 과정에서 대전이 소외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강력한 의사표시였다. 그러나, 대전을 석권한 여당 지역정치인들은 대전발전에 필요한 정책과 지원을 중앙정치로부터 받아내기는커녕 기존의 자산도 지키지 못하는 무능함만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이들은 국정의 공식적인 정책결정과정에 영향력은 전혀 갖지 못한 채 길거리 천막농성을 벌이며 과거 야당시절의 집단투쟁 같은 모습만 보이고 있으니 낯설고 민망하기만 하다. 대전시민들이 이런 모습을 기대하고 표를 몰아준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들이 정권 핵심세력들로부터 얼마나 철저하게 소외되어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책임회피에만 급급해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꼴이어서 더더욱 실망스럽다. 

중기부 세종이전 사태는 이미 2017년 중소기업청이 장관급 부처로 재탄생하면서부터 일찍이 예견된 일이다. 대전시의 근시안적이고 우물안 개구리식 행정에다 무계획성, 무전문성, 무책임성의 3무(三無) 정치리더십이 보인 또 하나의 실패 사례일 뿐이다. 

현재 대전에 다수의 중진 국회의원들이 포진해 있고, 심지어 국회의장이 대전 출신이어도 이들의 능력과 리더십이 이러한 위기 시에 입증되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와 존재가치가 없다. 시민들은 청와대에서 또 국회에서 보여지는 이들의 단합된 정치적 힘, 그리고 소신과 설득력 있는 이들 말의 힘을 기대한 것이지 길거리 농성과 구호제창을 바란건 아니다. 그것은 현 야당 몫으로 충분하다. 그러니 현 지역정치와 행정에 대한 시민들의 무관심과 냉소주의만 깊어갈 뿐이다. 

앞으로도 대전의 정치와 행정이 획기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면 이미 계획되었거나 진행 중인 대전의 사업들과 정책의 실패는 지속될 것이다. 유성복합터미널과 장대동 입체교차로 사업, 대전 신야구장 건설과 둔산센트럴 파크 조성, 트램 정책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대전의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은 아마도 대전시민들이 <코로나19>와 악화되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이 총체적 대전위기 상황과 그 원인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작금의 현상과 수준을 이대로 유지하려는 한 근본적인 해결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장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선 세 가지 긴급대책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대전의 행정이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현대행정이 제일 중요시하는 행정의 방향은 바로 미래의 변화와 위기에 대비하는 '예방행정'이다. 이미 일어난 일들을 최선을 다해 사후에 처리하는 '성실한 행정'은 아무리 잘해도 뒷북행정에 불과하다. 그 결과는 행정비용의 낭비요, 지역발전의 후퇴로 나타난다. 

중기부 사태도 가까운 미래의 변화에도 대비하지 못한 대전시 행정의 뼈아픈 실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대전시는 불과 1년 반밖에 남지않은 지방선거에만 온갖 행정의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좀 더 멀리 보면서 미래지향적인 시장의 리더십과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는 시정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또한, 미래를 내다보고 시정에 자문을 주는 전문가를 중시하는 한편, 능력 있는 공무원을 육성, 발탁하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육동일 충남대 명예교수

둘째, 바람직한 정치의 역할은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 집단, 지역간에 타협과 협상으로 합의를 도출해서 상생하게 하는 일이다. 현재 우리는 협상하려는 당사자들이 적과 동지로 갈라져 상생을 위한 윈윈(Win-Win)게임을 하는 대신 오로지 자기 진영의 승리만을 목표로 하는 제로섬(Zero-sum) 게임만을 하고 있다. 승자는 모든 것을 독차지 하는 반면, 패자는 모든 것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진다. 증오와 분열의 정치로 결국 상생보다 공멸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친일문제와 남북문제 같이 우리의 비통한 역사적 모순과 뼈아픈 상처로 인해 당장 국민적 합의가 어려운 문제들이 있다. 

그러나, 중기부 이전 문제같이 지역균형발전과 국정운영의 효율화와 관련된 이슈는 얼마든지 과학적이고 분석적인 타협과 협상을 통해 상생의 합의를 정치가 도출해 낼 수 있다. 대전시와 세종시가 상생하고 국정의 효율성과 지역균형발전이 조화를 이루도록 새로운 대안을 찾아서 합의를 이루어 내자는 말이다. 이 협상과정에는 '최저선(bottom line)'이 필요하다. 

종전에는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는 이 마지노선을 감춘 가운데 협상에 임했지만, 이제는 공개하고 당당히 협상에 임해야 한다. 이제 대전시도 최선을 다해 중기부를 지켜야 하지만, 최악의 경우 중기부 이전이 불가피하다면 이에 상응하는 최저선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경찰본청, 방위사업청, 또는 기상청 등 청 단위 모든 행정기관들을 대전에 이전시킴과 동시에 혁신도시의 내실화를 기하는 방안도 최저선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대전이 패싱되어 더 이상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면 이제는 실리적인 '기브 엔드 테이크 (Give & Take) 전략'을 통해 모든 것을 다 잃는 바보는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셋째, 세종시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세종시가 행정수도 완성을 목표로 한다면 충청권 상생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지금 세종시는 본연의 역할인 국토균형발전의 거점도시로서의 역할이 퇴색하고 있다. 수도권 인구 유입을 통한 과밀해소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 반면, 대전을 중심으로 한 충청권 인구 유입으로 인해서 세종시 인근 지역이 공동화 현상을 보이고 있는 까닭이다. 그런데도 세종시는 자치모델도시라는 목표를 새롭게 강조하면서 세종시행정구역내로의 기관이전과 인구유입을 통한 나홀로 지역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대전충남북 주민들은 당초 신행정수도 건설이라는 국가적 대의 차원에서 함께 머리띠를 두르고 공조했지만, 충청권 상생발전에 미온적인 세종시에 상당히 실망해가고 있다. 그로인해 단단했던 공조에 균열의 조짐도 보이기 시작한다. 만일 세종시가 진정한 행정수도가 되는데 반드시 필요한 대전·충청권 주민들의 공조에너지가 사라진다면 중대한 차질이 불가피하다. 

때문에 세종시는 이 상황을 가볍게 봐서는 안될 것이다. 즉 대전·충청권 상생발전에 역행하는 세종시 건설을 반대한다면 세종시는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세종시가 중기부 이전에 무조건 찬성하는 입장은 행정수도 완성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떡하든 대전과 상생하는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오는 12월 17일, 세종시 이전 공청회가 진행되면 '답정너'식 국정방침은 현실화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대전이 바로 당신입니다'는 슬로건에 시민들이 공감하게 하려면, 나아가 시장과 구청장 및 지역의 국회의원들이 시민들의 기대와 지지를 저버리지 않으려면 현대행정과 정치가 요구하는 달라진 모습과 능력을 보여주기 바란다. 대전시민들은 지역의 소외와 배제라는 수모를 더 이상 경험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시민들은 지금 지쳐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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