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 당시 모습. 자료사진.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 당시 모습. 자료사진.

버스 한 대가 고의적으로 다른 버스를 들이받으면서 옥신각신 싸움으로 번졌다. 들이받은 운전자가 되레 호통을 치면서 상대 버스 운전자에게 하차를 요구하고 있다. 들이받힌 버스 운전자는 임시로 교통경찰을 불렀고 당신은 잘못이 없다며 당신의 길을 가면 된다는 결정을 얻어냈다. 그러나 운전면허관리 최고책임자는 오히려 들이받힌 운전자에게 하차를 명령하려 한다. 공정하게 보이려면 두 버스 기사 모두 하차시키자는 주문도 나온다. 이른바 ‘양비론’ 카드다. 

상대 차량이 일방적으로 들이받았는 데도 쌍방과실로 몰아가면 억울한 일이다. 사고의 경위를 확인할 길이 없다면 양비론도 이해할 만하지만 경찰이 사고 발생의 과정을 뻔히 알면서도 쌍방과실로 처리한다면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추미애 버스’가 윤석열 버스를 들이받은 사건을 바라보는 ‘문재인 경찰대장’의 기본 입장이다. 현재로선 윤은 억울하게 하차당할 가능성이 높다.

목격자 많은 ‘법과 권력의 충돌’ 사고

윤에게 실낱같은 희망은 충돌 과정의 목격자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추의 난폭운전이 연일 언론을 통해 중계되면서 많은 국민들이 사고 장면을 지켜봤다. 윤의 버스를 타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윤이 아니라 추의 잘못이라고 증언하고 있고, 심지어 추가 태우고 있는 사람들조차 추의 책임론에 동조하고 있다. 윤에게 책임이 있다고 외치는 사람은 추 자신과 이 사건을 최종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경찰대장’측, 그리고 무슨 일이건 무조건 대장 편만 드는 그의 일부 지지자들뿐이다.

윤이 운전대를 잡고 있는 ‘법의 버스’와 추가 대리운전 중인 ‘권력의 버스’의 충돌이란 점이 이 사건의 본질이다. 법과 권력의 대결이다. 경찰대장 일파의 중대한 잘못을 수사하기 위해 수사관들을 태우고 경찰대장의 처소를 향해 달려가던 ‘윤의 법의 버스’를, 경찰대장이 소유주인 ‘추의 권력의 버스’가 일부러 들이받아 법의 버스를 고장내려는 고의적 사고다. 기획자가 경찰대장 측으로 보이는 만큼 공정한 처리는 기대하기 어렵다.

양비론은 추와 윤의 공정한 공동 퇴장이 아니다. ‘법치의 죽음’을 뜻한다. 아직도 권력이 법 위에 있는 시대라는 걸 확인해주는 증거다. 윤 추 둘을 공동 퇴장시킨다면, 두 대 모두 제2 제3의 추미애로 채우면서 권력의 버스로만 폭주하고 법의 버스는 아예 사라질 것이다. 지금 국민들은 운좋게도 ‘법의 버스’를 제대로 운전해보겠다는 운전자를 가지고 있다. 그런 운전자를 뽑은 경찰대장에게 고마워해야지만 이는 경찰대장의 실수였지 본의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누구든 잘못이 크고 책임이 무거우면 법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왕정 시대가 아니라면 예외가 없다.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그게 법치국가이고 민주국가다. 문재인 정부는 ‘울산사건’과 ‘원전사건’ 등에 대해 법을 중대하게 어긴 혐의가 이미 드러나 있다. 이 사건을 제대로 수사해보겠다는 게 법의 버스를 몰고 있는 윤이다.

검찰은 ‘선출된 권력’ 아니라서 인정할 수 없다?

검찰총장의 2년 임기를 못박아 놓은 것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교통대장’이 면허증 허가권을 가지고 장난칠 수 없게 만든 제도다. 누가 봐도 ‘저건 문제다’ 하는 정도의 비리 비위가 아니면 검찰총장 임기는 보장되어야 한다. 윤에겐 그런 정도의 혐의가 없다. 가장 큰 문제라고 내세우는 ‘판사 사찰 문건’이 정말 문제라면 개인정보를 모아두고 있는 언론사와 기자들은 다 범법자들이다. 대통령이 애초 그를 총장으로 임명하면서 ‘우리 총장’으로 불렀던 것 자체가 윤에겐 별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이제 와선 그를 쫓아내려는 건 순전히 ‘왜 우리를 봐주지 않느냐는 것’ 때문이다. 흠으로 따지면 윤이 1이라면 청와대는 100도 넘을 것이다. 윤이 흠 때문에 물러나야 한다면 대통령은 10번도 더 물러났어야 한다.

혹자들은 검찰은 ‘선출된 권력’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국민이 뽑는 사람들이지만 검찰은 임명된 사람이니 차등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 들어 있다. 검찰은 국민이 선출한 권력이 아닌데 왜 그리 막강한 권한을 갖느냐는 불만이다. 잘못된 생각이라고 본다. 검찰총장은 대통령이라는 공인(公人)이 임명하는 또 하나의 공인이다. 대통령의 뜻으로 선택되지만 일단 임명되면 ‘법으로(대통령의 신임 여부가 아니라)’ 그 역할과 권한이 보장된다. 수사에 관한한 임명권자인 대통령조차 총장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 2년 임기는 이런 취지를 더욱 분명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유전무죄’는 줄고 있으나 ‘유권무죄’는 되레 기세

이 때문에 적어도 ‘범죄 혐의가 있는 자들’에 대해서는 검찰이 대통령보다 힘이 세야 맞다. 그래야만 권력과 신분의 차등을 고려하지 않고 공정하게 수사할 수 있다. 그러나 집권세력이나 재벌들은 공정한 대우 대신 특별한 대접을 기대한다. 그동안은 그래왔다. 재벌들은 돈을 때울 수 있었고 권력자는 힘으로 검찰을 눌렀다. 이제 ‘유전무죄’는 점차 사라지고 있으나 ‘유권무죄’는 기세가 오히려 심해졌다. 과거엔 현직 대통령 아들도 감옥에 보냈지만 지금은 권력의 측근조차 못 건드린다. 윤석열이 아니라면 ‘울산’도 ‘원전’도 아마 잠자고 있었을 것이다.

검찰엔 많은 문제가 있다. 멀쩡한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거나 검찰에 찍힌 사람은 억지로 엮으면서도 자기 식구들끼리는 봐주는 조직이기주의도 심각하다. 상당 부분은 막대한 검찰 권력 자체가 갖는 역기능이지만 검찰권력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 잘 드는 부엌칼은 손을 다치기 쉽다며 칼날을 일부러 무디게 하는 주방장은 없다. 주방장이 조심하면 칼은 잘 들수록 좋다. 권력이 조심하면 검찰의 칼날이 아무리 날카로워도 걱정할 일이 없다. 도둑 강도 사기꾼들 말고는 검찰이 두려울 일이 없는데 이 정부는 왜 그리 검찰이 두려운가?

대통령은 국정 최고책임의 권력자로서 국가적으로 논란이 되는 사안을 정리할 책임과 권한이 있다. 그의 권력에 아무도 대항할 수 없다. 있다면 ‘국민들’뿐이다. 다만 민심은 선거가 아니면 공식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대통령의 판단은 법(法)에 따라야 한다. 그러나 권력은 종종 법 위에 올라서면서 독재로 간다. 이런 경우 권력자는 ‘법을 지키는 모양새’를 갖추려고 사건을 꾸민다. ‘윤-추 버스의 충돌’은 그렇게 기획된 것으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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