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현옥 세종시아파트입주자대표연합회장
"아파트 천국 세종시, 공동체 문화가 곧 도시 문화"

김현옥 세종시아파트입주자대표연합회장.
김현옥 세종시아파트입주자대표연합회장.

“아파트가 빵이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다”는 대한민국 관료의 발언은 내 집 마련의 꿈이 아파트라는 거주 형태에 쏠린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아파트는 현대 사회 주거 형태의 대세이자 꿈이 됐다.

전국적으로 거주 형태의 차이가 가장 극명한 지역으로 세종이 꼽힌다. 2019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세종시민의 85.2%가 아파트에 거주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5무(無)도시. 전봇대와 쓰레기통, 담장, 광고입간판, 노상주차 없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이 최초의 세종시 청사진이었다. 사실상 대부분이 틀어졌지만, 이중에서 아직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 하나가 바로 ‘담장’이다.

하지만, 최근 차 없는 아파트 내 택배 배송 대란, 담 없는 도시 콘셉트와 엇박자를 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간 통행 갈등, 커뮤니티 시설 공동 이용 논쟁 등 일련의 사태를 보면, 울타리를 없애 공유와 개방의 공동체 문화를 만들겠다는 이상 실현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화합의 공동체 문화를 만들기 위해 민·관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아파트라는 공간이 단순히 거주의 의미를 넘어 도시 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기 위해 필요한 자세는 무엇일지 김현옥 세종시아파트입주자대표연합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다음은 김 회장과 나눈 일문일답.

ㅡ 세종시아파트입주자대표연합회에 대해 소개해달라.

“2016년 결성됐다. 세종시 공동주택 입주자대표가 모인 연합회로 현재 55개 단지가 참여하고 있다. 법률자문, 고문 등을 포함해 67명이 활동 중이다. 올바른 아파트 문화 정착을 위한 사회·문화 활동, 다양한 갈등 사례 논의, 타 시도 사례 비교·연구 등의 일을 하고 있다.”

ㅡ 올해만 해도 세종시 아파트 관련 갈등이 여러 차례 언론에 보도됐다. 가장 최근에는 단지 내 보행로 사용을 둘러싼 갈등 사례가 드러났다. 

“입대의 간 협의 과정이 원활하지 않다보니 오해가 생기고, 갈등의 골이 깊어진 것 같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아파트 단지 내 보행로가 인근 단지 주민들에게 유용하게 쓰이고 있지만, 그로 인한 민원이나 도로 보수, 관리 등의 책임은 해당 단지에만 부과되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갈등 발생 시기부터 중재자가 개입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재 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기구가 없다. 시에 공동주택 관리분쟁조정위원회가 있긴 하나, 갈등 대응에는 소극적이다."

ㅡ 지난달에는 아파트 지상 출입을 금지하는 입주민과 택배사 간 마찰이 빚어지면서 한 아파트 공동체가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수 년 전 비슷한 문제가 불거졌는데, 이후 공동주택 건축 설계 지침이 개선되는 성과도 있었다. 

“택배 문제는 지하주차장 출입 문제와도 연계돼있다. 2017년 1월 공동주택 설계안에 개선 사항이 반영되긴 했으나, 그 전까지 일부 아파트는 주차장 출입 높이가 2.3m로 건설됐다. 택배사에서 작은 탑차를 쓰면 들어갈 수 있지만, 업무의 효율성 때문에 쉽게 수용하기 어려워한다. 차도 들어가지 못하는 지하주차장에 무인택배함이 설치돼 유명무실한 사례도 있다. 

이미 지어진 아파트의 경우 지하주차장 높이를 변경하는 일은 구조적으로도, 비용적으로도 거의 불가능하다. 아이들 등하교 시간을 피해 출입 시간을 협의하는 방안, 택배차 지상 운행 시 반경 몇 미터 안에 경보음을 들리게 해 안전을 확보한다든지 다양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최근 통행로 갈등을 겪고 있는 아파트 단지 내 부착된 경고문.
최근 통행로 갈등을 겪고 있는 아파트 단지 내 부착된 경고문. 통행 시 유의사항이 적혀있다.

ㅡ 코로나19로 인해 생활 패턴이 크게 바뀌었다. 배달 문화가 확산되면서 아파트 내 또 다른 갈등 소지가 불거진 사례가 있나.

“택배물량이 수 배 늘었고, 배달 주문도 크게 증가했다. 동시에 감염 위험 등으로 인해 외부인 출입에 대한 입주민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이 경우 불편을 감수할 수 있다면, 공동출입구에 음식 보관함을 만들어 놓고, 주민이 직접 찾아가는 방안이 있다.

무엇보다 배달하시는 분들은 생계와 직장의 문제가 직결돼있다. 입주민 안전을 이유로 출입을 단순히 제한하는 것은 위화감이 들 수 있고, 또 반대로 생각해보면 결국 우리 안전을 지키기 위해 애써주시는 분들이 아닌가. 서로 어려움을 잘 헤아려야 한다고 본다.”

ㅡ 아파트 공동체 갈등 사례를 보면, 이해나 배려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곪을 대로 곪아 갈등이 비상식적인 모습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아파트 모범 사례를 알리는 기회는 자주 있지만, 문제나 갈등 사례를 이야기하는 장은 굉장히 폐쇄적이다. 갈등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논의해야 해결책이 찾아진다. 주민을 대표하는 입대의도 사실은 봉사자이지 전문가가 아니다.

시가 다양한 갈등 사례와 극복 방안을 모아 ‘아파트 백서’ 매뉴얼을 만드는 일도 필요해 보인다. 공론화 장을 통해 나온 좋은 아이디어는 일부 단지에 시범 시행을 지원하고, 결과가 괜찮다면 이를 확산해 미연에 갈등을 방지할 수도 있다. 아파트 공동체 문화 선도 도시 차원에서 시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다.”

ㅡ 각 생활권 아파트가 컨소시엄 방식의 특화 설계로 건설되고 있다. 하지만 막상 지어지고 나면 목적대로 활용이 불가능해 특화 취지가 무색해지는 경우도 있다.

“컨소시엄으로 지어지는 경우 특정 단지에는 독서실이나 어린이 시설을, 다른 단지에는 체육 시설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설계된다. 시설을 공유하며 쓰라는 취지다. 문제는 입주 후 관리·운영 방식에서 발생한다. 단지마다 입주 시기와 관리 업체가 다르다. 단지 내 시설에 대한 비용을 해당 입주민이 부담하는 구조여서 비용이나 관리 의무가 한 쪽에 치우친 경우 시설 개방에 이견이 생긴다.

컨소시엄 설계부터 입주 이후 발생할 관리·운영 문제에 대한 배려가 반영된다면, 공동체 갈등이 적어질 수 있다. 아파트 공동체차원에서도 ‘공유’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공평함을 전제로, 공동체 이기주의가 발생하지 않도록 심사숙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ㅡ 반려동물 인구가 늘면서 아파트 내 입주민 간 갈등 사례도 빈번하다고 들었다.

“반려동물 문제도 주목하고 있다. 통계를 보면, 세종시 3가구 중 1가구가 반려동물을 키운다. 이제 이 문제는 키우고, 키우지 않고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유기동물 입양 장려 캠페인이라든지 펫티켓 홍보, 반려동물 무료 건강 검진의 날을 운영한다든지 다양한 방식으로 인식 개선 활동을 하다보면, 갈등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정서적인 측면에서 보면, 최근 아파트 내 공동체 모임이 중단되면서 어르신들이 코로나블루, 우울 증상을 많이 겪고 계신다. 아파트 내 홀로된 어르신 가정과 유기동물 입양 캠페인을 연계하는 방안도 인식 격차를 줄이는 방안이 될 수 있다.”

ㅡ 세종시 인구 10명 중 8명이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끝으로 도시 문화 차원에서 아파트 공동체의 중요성에 대해 말해 달라.

“신도시는 전국 각 지역의 문화가 충돌하는 곳이다. 새로 지어진 도시에선 결국 시민들이 만드는 공동체 문화가 고유문화로 정착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세종시는 특화 도시고, 계획에 따라 만들어지는 도시다. 이 도시계획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면, 사유재산의 여부를 떠나 지자체에서도, 지역 정치권에서도 책임감을 갖고 함께 해결하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공동체 문화 정착을 위해서는 시민의식을 갖추는 것이 첫 번째다. 특히 아파트, 집이라는 것도 사유재산, 사적인 공간이 아니라 ‘공유의 공간’으로 볼 필요가 있다. 우리 도시에 담이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구의 것인지 따지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교류하는 문화가 확산될 수 있도록 연합회 차원에서도 계속 노력해 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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