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

죽천 송좌빈 선생 송덕비가 내달 2일 대전시 동구 주산동(상촌마을) 마을회관 앞에 건립된다.

송덕비는 주산동 고봉산계원(계장 권용복)들이 죽천선생 4주기를 맞아 40년 만에 건립하는 사업이다.

주산동(상촌마을)은 본래 줄미, 가운뎃골, 양짓말, 샘골, 숯거리, 고용골, 똥갯들, 옹깃재, 맞바위 등을 포함해 선사시대부터 존재했다. 이후 1979년 대청댐 건설로 마을이 수몰될 위기에 놓였다. 이 때 죽천선생은 자신 소유의 땅을 무상으로 제공했고, 그 덕에 당시 60여 세대가 오늘날 주산동으로 이전할 수 있었다. 토지의 소유권은 주민들의 대표기관인 ‘고봉산계’로 이전 등기했으며, 해방 전부터 존재했던 고봉산계는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고봉산계는 “역사적 과정에서 죽천선생이 보여준 도량과 고매한 인품, 헌신적인 노력을 대를 이어 간직하고 있다가 마침 선생이 물려주신 토지 중 일부의 매각대금이 생겨서 오늘날 송덕비를 세우게 됐다”며 “선생께서 겪으신 파란만장한 생애와 마을 창설의 업적을 사실대로 기록, 후대에 널리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죽천 송좌빈 선생은 일제 암흑기인 1924년 10월 7일 지금의 대전시 동구 주산동 195-1 자택에서 동춘당 송준길 선생의 11대 손으로 출생했다. 8세 때 부친을 여의고 조부슬하에서 성장했다. 조부 송종국 선생은 영친왕의 시종관(정3품)으로 1905년 을사늑약 후 영친왕을 모시고 일본으로 건너가라는 명을 거부하고 낙향했다.

죽천선생은 대전 동명초, 삼성초, 대전중학교(5년제)를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한다. 1950년 9·28 수복 후 정훈장교로 임관 7사단, 5사단 등 최전방에서 공을 세워 을지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등 세 개의 훈장을 받았다. 이후 조병옥 박사의 추천으로 정치생활(전국구 국회의원 2번 이상 거절)을 하며 평생을 반독재투쟁을 벌였다. 말년에 노환으로 대전보훈병원에 입원 2016년 12월 2일, 92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평상시 선생의 뜻에 따라 국립현충원을 사양하고 생가 뒤 선산에 안장됐다.

권영복 고봉산계장은 “그 어떤 달콤한 자리도 사양하며 평생을 백의종군, 멸사봉공의 자세로 격동의 한 세기를 온 몸으로 희생하신 애국자셨다”며 “독실한 불교신앙으로 자비를 실천하며 연꽃처럼 깨끗하고 향기롭게 살다가신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이셨다”고 선생의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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