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자료사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자료사진.

미국 대선은 민주당 조 바이든의 승리로 끝나가고 있다. 그는 지지자들에게 “나는 민주당 후보로 유세했지만 미국 대통령으로 통치하며 모든 미국인들을 돌볼 것”이라며 “공화당 지역도 민주당 지역도 없다. 하나의 미합중국이 있을 뿐”이라며 단합을 거듭 호소했다. 사실상 승리 연설이지만 그는 ‘승리 연설’은 아니라고 했다. 패배한 후보의 패배 인정 연설이 있고 나서 당선자의 승리선언이 이뤄지는 관행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에겐 이런 관행도 안중에 없다. 그는 어제 오후 개표 상황이 자신에게 한창 유리한 시점에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가 크게 이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최종 결과가 신통치 않게 간다면) 이 문제를 연방대법원에 가져가겠다”고 했다. 앞뒤가 안 맞는 말이다. 아직 여러 주의 개표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이고 일부 주의 경우 우편투표의 결과가 나오려면 며칠은 더 걸리는 상황에서 대통령 후보가 기자들 앞에 나와 어디 주는 몇 %, 어느 주는 몇 십만 표 등을 자기가 이겼다고 읊어대며 승리를 선언하는 모습은 황당하다.

민주주의 중병 들게 만든 분열주의자 트럼프

역대 44명의 미대통령 가운데 재선에 실패한 사람은 10명뿐이었다. 이전의 부시도 오바마도 다 재선에 성공했다. 트럼프는 실패한 사례로 추가될 가능성이 커졌다. 최종 결과가 어떨지는 모르나 트럼프는 안 되는 게 마땅하다. 지금 미국에서 볼 수 있는 황당한 장면들은 트럼프의 실패를 말해주고 있다. 선거일이 다가오자 총기를 들고 설치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총기 판매도 2배 가까이 늘었고, 대도시 상가들은 폭도의 난입에 대비해 합판으로 방어벽을 쳤다. 상가의 합판 거리는 미국 민주주의가 중병에 걸려있음을 상징한다.

이번 대선 투표율은 120년 만에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증표다. 진짜 민주주의 국가에선 투표율이 그리 높을 이유가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정말 좋은 정치는, 백성들이 임금이 누군지도 모른다는 옛날 말은 오늘날에도 틀린 얘기가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나쁜 정치일수록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진다. 민주주의 국가에선 상당 부분 서로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일으키는 관심이다. 지나치게 높은 투표율은 정치가 형편없음을 알져주는 지표다. 우리나라 지난 4월 총선의 높아진 투표율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본다.

미국 유권자들은 한 표 행사를 위해 기꺼이 몇 시간씩 줄을 섰다. 적대감과 증오심으로 투표장에 나오는 사람들은 우리 편의 후보자가 누구인지가 중요하지 않다. 오직 ‘저쪽’을 패배시키고 굴복시키는 게 중요할 뿐이다. 선거란 게 대체로 그런 경향이 있지만 지금은 노골적으로 편을 갈라 패싸움을 하는 지경이 되었다. 누군가 이를 이용하고 부추기면 대중들은 여기에 쉽게 빠져든다. 대중의 약점이다. 걸핏하면 터지는 지역감정 문제도 일종의 패싸움이다.

국민들 간 갈등을 통합하는 게 정치의 본래의 목적이다. 트럼프는 반대로 해왔다.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민들을 쪼개고 분열시켰다. 미국에선 트럼프, 우리나라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이 분야의 선수들이다. 두 사람의 얼굴 표정은 다르지만 – 한쪽은 성난 얼굴, 한쪽은 온화한 표정 – 모두 분열을 정치의 수단으로 쓰고 있다는 점은 같다. 분열주의자에게 양보나 사과 같은 건 없다. 두 사람의 닮은 점이다. 양보나 사과는 통합과 화해에 필요한 미덕일지 몰라도 분열주의자에게 자기편 전열을 흩트릴 수 있는 위험한 방법이다. 

분열책으로 한때 집권할 수 있으나 성공은 불가

분열주의는 상당한 성과를 내기도 한다. 검찰에 대한 추미애 장관의 잇단 조치와 언사는 누가 봐도 법무부 장관의 ‘불법적 검찰 죽이기’인데도 국민의 절반 정도는 추 장관을 응원한다. 똑같은 일이 박근혜 정권에 벌어졌다면 거품을 물고 나설 사람들이 지금은 추 장관을 밀고 있다. 추 장관이 노골적으로 검찰총장 직무를 중지시키고 스스로 총장 노릇까지 하는 힘의 원천은 국민 절반의 응원이다. 이른바 ‘K방역’ 외에는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 정권인 데도 문 대통령 지지율이 줄곧 50% 선을 유지하는 것은 분열주의의 덕이다.

미국도 우리도 나라 전체가 거대한 패싸움 판처럼 되어 있다. 한쪽이 옳다고 하면 다른 쪽은 그르다고 외치고, 한 쪽에서 좋다고 하면 다른 쪽에선 나쁘다며 반대한다. 사람의 본성에는 본래 그런 성향이 있는데 정치가 이를 부추기고 대중들을 이용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 분열의 정치는 가장 질이 나쁜 정치다. 나라를 망치고 국민들을 병들게 한다. 검은색이 분명한데 국민의 절반이 그걸 흰색이라고 외치면 병든 게 아니고 뭔가? 그런 나라는 미래가 있을 수 없는 데도, 분열의 정치의 마약 같은 효과 때문에 여기에 빠지는 정치인들이 많다. 

분열주의는 끝이 좋을 수 없다. 분열을 부추기는 건 쉽고 통합을 이루는 것 어려운 일인데, 분열 작전으로 성공할 수 있다면 누가 통합의 정치를 위해 노력하겠는가? 트럼프의 실패는 당연하며 미국으로서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만에 하나 그가 운좋게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실패를 더 키우고 늦추는 일일 뿐이다. 국민을 편가르는 술책으로 성공한 정치인은 보지 못했다. 링컨은 통합의 리더십을 상징한다. 미국 역사상 최고의 대통령이 된 이유다. 분열의 술책으로 집권하고 한때 권력을 누릴 수는 있어도 그것으로 성공할 수는 없다. 분열주의자 트럼프의 종말이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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