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충남 최초 공주시의회장 조례가 남긴 것

공주시의회 전경.
공주시의회 전경.

올해 9월 말 쿠웨이트의 알자비르 알사바 국왕이 타계했다. 장례식은 군 지휘권을 가진 최고 권력자의 마지막이라곤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간소했다. 시신은 사망 이틀 만에 철제 들것에 실려 일반 공동묘지로 옮겨졌고, 이슬람 예배당에서 열린 추모 행사도 말 그대로 소박했다.

단상도, 꽃 장식도 없이 맨 바닥에 놓인 시신 앞에서도 국민들은 깊은 애도와 예의를 표했다.

이슬람식 장례 문화는 ‘장례식을 최대한 검소하게 치르라’는 이슬람 교리에서 기인한다. “인간은 누구나 신 앞에 평등하며, 장례식은 흙에서 나온 인간이 흙으로 돌아가는 평범한 과정”이라는 가르침이다. 알라신 앞에서 모든 인간의 죽음은 평등하다는 그들의 가치관이다. 

‘공주시의회 의회장(葬)에 관한 조례안’이 따가운 비판을 뒤로하고 끝내 제정됐다. 충남도 내 조례로 의회장을 자치법규화 한 사례는 충남도 내 최초다. 대표발의 의원이 포함된 더불어민주당은 물론이고 국민의힘, 무소속 의원까지 이 조례안 제정에 가세했다.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셀프 복지 조례 제정에는 정당도, 지역구도 무관했다. 

발의 조례에는 현직 시의원이 임기 중 사망할 시 장제비를 지원할 수 있도록 그 대상과 지원 내용이 명시됐다. 영결식장 설치비용과 영구차, 영정사진과 국화 등 각종 장례 물품, 조화, 안내문 인쇄비, 장의행사 방송설비까지 지원 가능하도록 규정했다.

“의원이 사망한 때 시의회가 장의를 경건하고 엄숙하게 집행하는 데 필요하다”는 게 조례 제정의 취지다.

의원들은 논란을 의식해 상임위 회의에서 ‘임기 중’ 기준을 ‘직무수행 중’으로 수정해 조례를 가결했다. 사망한 의원의 마지막 길을 시민 세금으로 꾸며 예우를 갖춰야 한다는 논리는 생각외로(?) 설득력이 컸다. 영구차는 기존 중형 기준에서 35인승으로, 영정사진 크기도 장제비 기준표에 명시했다지만, 눈가림에 불과한 수준이다.

시민의 대표자가 죽음 앞에 취해야 할 태도

의회장에 관한 조례가 활발히 제정되던 시기는 1990년대다. 바꿔 말하면, 한참 오래된 구식 조례라는 의미다. 더구나 8년 전 울산의 한 기초의회에선 반발 여론에 부딪혀 조례안 상정을 철회한 사례가 있다. 이미 수 년 전 시민 정서와 역행하는 조례라는 점이 확인된 셈이다.

'제 밥그릇 챙기기' 조례라는 비판을 받은 데도 마땅한 이유가 있다. 지금은 ‘코로나 시국’이다. 감염 위험 때문에 정상적인 조문도 불가능하고,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가족들도 있다. 하루 벌어먹고 살기도 힘든 소상공인과 실직 위험에 놓인 중장년층, 감염병으로 사망하는 노인들과 불어난 배송 물량으로 과로사 하는 청년 택배기사까지 모두가 괴롭다. 이 와중에 자신들의 위상을 챙기려는 모습이 곱게 보일 리 없다.

반면, 전국 곳곳 의회에서 순직 소방관을 위한 영결식, 시신을 찾아가지 않아 애를 먹고 있는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화장 비용 지원 등에 관한 조례 제정에 나서고 있다. 의회장 조례 제정을 지켜보며 사명감이나 고립, 빈곤으로 인한 사각지대의 쓸쓸한 죽음이 오버랩되는 건 왜일까? 삶은 누구에게나 유한하고,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는 오래된 명제가 공주시의회에서만큼은 통하지 않는 듯하다. 

세상의 모든 죽음은 존엄해야 한다. 허나, 진짜 존엄한 죽음이란, 스스로 만든 틀 안에서 예우 받는 죽음은 아닐 것이다. 시민의 대표자가 죽음의 명제 앞에서 취할 태도는 '겸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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