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기천의 확대경]

한 이웃 여성의 푸념어린 하소연을 들었다. “바로 어린이놀이터 옆에서 사람들이 담배를 피워 어린이들에게 좋지 않아요. 담배꽁초, 휴지, 종이컵이 흩어져 있고 침자국도 남아있어요. 연기하고 냄새가 우리 집까지 들어오고 두런거리는 소리까지 들려요. 흡연권이 있다면 담배연기를 맡지 않을 권리도 있는 거잖아요?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가기천 전 서산시부시장, 수필가

분명하고 단호했다. 아직 창문을 열고 지내는 시기라 더 민감하게 느끼는 듯 했다. 더구나 아이 엄마라서 그런지 예사롭게 받아들이지 못하리라고 짐작되었다. 그곳은 벤치와 나무그루를 둘러 싼 벽돌 축대가 있어서 담배 피며 담소하기 좋은 장소다. 담배 맛이나 사색하는 기분은 잘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집안에서는 피울 수 없으니까 밖으로 나와서 피워야 하는 사정까지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분의 이야기가 크게 들렸다. 관리소에 연락하여, 우선 재떨이로 쓰고 있는 질그릇을 치우고 주변 청소를 부탁했다고 하면서 “어린이놀이터 주변이 금연구역이냐?”고 물으니 “놀이터는 금연구역이지만, 그 주변은 아니”라고 했다고 한다. 연기가 곧장 수직으로만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주변에 퍼지게 마련인데, 어린이놀이터 주변은 해당되지 않는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금연을 규정하는 ‘건강증진법’에는 공공청사, 학교 교사와 운동장, 어린이집, 도서관, 청소년 시설, 역, 터미널, 승강장, 대합실 등 수 십 군데가 나열되어 있다. 물론 어린이놀이터도 포함되어 있다. 문제는 어린이집, 유치원은 시설의 경계선으로부터 10미터 이내의 구역까지 금연구역으로 지정되었으나. 똑같이 어린이들의 활동공간인 놀이터 주변은 해당되지 않는다.

개방된 공간임을 고려한 것으로 보이나 막상 바로 옆에서나, 지나가면서 담배를 피워도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가림 시설이 없는 어린이놀이터 주변이 더 취약할 수 있는 데도 법이 그렇다는 것이다. TV에서도 담배 피는 장면은 흐릿하게 가리는 목적이 있는 것처럼 어린이들에게 담배 피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이유도 고려할 필요가 있는데 말이다.

조례로도 바꿀 수 없는 허술한 금연구역 규정

건강증진법에 근거한 같은 법 시행규칙 제6조의2 제1항에는 ‘공동주택의 복도 등에 대하여 금연구역의 지정을 받으려는 경우에는 …, 지정 신청서를 … 시장·군수·구청장에게 제출하여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를 근거로 한 구(區) 조례에는 ‘그밖에 여럿이 모이거나 오고가는 장소로 간접흡연피해 방지를 위하여 구청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장소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는 ‘공동주택의 승강기, 계단, 복도, 지하주차장에 한하여 입주민 2분의1 이상의 동의를 얻어 구청장에게 신청하면 지정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4개소에 포함되지 않는 어린이놀이터 주변은 해당되지 않고, 따라서 조례로도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직된 법규도 문제려니와 이처럼 단순한 사항조차 조례로 규정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 답답했다. 설령 조례로 규정을 한다고 하더라도 입주민 과반수 동의를 얻고 복잡한 서류를 갖춰 신청하는 절차가 간단한 일은 아니다.

관계 부처에서는 ‘공동주택관리법’ 제20조의2(간접흡연의 방지 등)를 준용하여 금연을 권고하라고 하지만 이 조항은 ’세대 내 흡연을 금지‘하는 내용으로 옥외인 어린이놀이터 주변까지 적용하기는 어렵다. 결국 제도적으로 금연을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은 없는 셈이다.

과연 담배연기와 냄새는 곧장 하늘로만 올라가기를 바라고 담배 피는 사람의 양식만을 기대하여야 하는가? ‘계도’가 유일한 방법이라니 과연 합리적이고 현실적인가 의문이다. 법규 개정과 더불어 자치단체의 조례로 규정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관계 당국에서는 어린이놀이터 주변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하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검토, 조치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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