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현주 한국어 선생님

동티모르국립대 한국학센터 운영 8년째
세종대왕의 애민정신 실현 '헌신의 삶'

남편 최창원 교수와 함께 8년 간 동티모르 국립대 한국학센터를 운영해 온 아내 최현주 한국어 선생님. 한국어 교육 전공으로 석사를 마치고 테툼어를 공부해 동티모르에 한국어를 널리 알리고 있다.
남편 최창원 교수와 함께 8년 간 동티모르 국립대 한국학센터를 운영해 온 아내 최현주 한국어 선생님. 한국어 교육 전공으로 석사를 마치고 테툼어를 공부해 동티모르에 한국어를 널리 알리고 있다.

 동티모르, 21세기 첫 독립국이자 한국과 시차가 없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한 곳. 450년 간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다 다시 인도네시아의 식민지가 돼 2002년에야 비로소 독립한 국가다.

험난한 침략의 역사가 지나간 자리,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을 본받아 수 년 째 이곳에 한국어를 가르쳐온 부부가 있다. 동티모르 국립대학교에서 8년째 한국어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최현주·최창원 교수 부부다.

남편 최 교수는 먼 타국에서 초기 8년 간 무보수로 일하며 한국어 교육 기반을 닦았다. 세종에 거주하는 아내는 두 나라를 오가며 테툼어(동티모르 언어)-한국어 사전 연구에 매진하고 있고, 유튜브를 통해 무료 온라인 교육 콘텐츠를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 

동티모르와 한국의 인연은 1999년 평화유지군 파병으로 시작됐다. 상록수부대가 머물렀던 로스팔로스(Lospalos) 지역 주민들은 간선도로에 ‘한국 친구의 거리(Lua Maluck Korea)’라는 이름을 붙였다. 부대는 철수했지만 20년이 흐른 지금, 그때의 인연은 '언어'로 이어지고 있다.

574돌 한글날을 맞아 세종시 보람동에 거주 중인 아내 최현주 교수를 만났다. 작은 나라 동티모르 학생들의 한국어 사랑과 교육자 부부가 학생들에게 쏟아온 헌신의 삶을 들여다봤다.

다음은 아내 최현주 한국어 선생님과 나눈 일문일답.

동티모르 국립대학교 한국학센터 야간반 수업 모습. 60명 정원 교실에 100여 명의 학생들이 모여 한국어 수업을 듣는다. 남편 최창원 교수는 정규 수업 시간 외에 빈 교실을 활용해 새벽, 야간, 주말반 수업을 하고 있다.
동티모르 국립대학교 한국학센터 야간반 수업 모습. 60명 정원 교실에 100여 명의 학생들이 모여 한국어 수업을 듣는다. 남편 최창원 교수는 정규 수업 시간 외에 빈 교실을 활용해 새벽, 야간, 주말반 수업을 하고 있다.

ㅡ 인구 130만 명, 작은 나라 동티모르를 오가며 한국어 교육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특히 남편 최창원 동티모르 국립대 교수는 12년째 타지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데. 

“2008년 여름 동티모르 여행 중에 동티모르 국립대 총장을 만날 일이 있었다. 그때 남편인 최창원 교수의 연구 분야인 리더십교육과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이듬해인 2009년 봄학기부터 동티모르 국립대 관광학과에 한국어반이 개설됐고, 2013년 7월 한국학센터 승인을 받았다. 남편은 국제관계학과 교수지만, 한국어를 함께 지도하고 있다.

수업은 새벽, 야간, 주말반으로 나눠 열리는데, 새벽엔 6시부터, 야간반은 9시까지 수업을 한다. 교실이 부족해 정규 시간 외에 수업을 해야한다. 동티모르에는 11곳의 대학이 있지만, 국립대는 단 하나뿐이다. 합격하면 동네잔치를 열고, 학비가 부족하면 친척과 동네 이웃들이 등록금을 모아 도와줄 만큼 좋은 대학이다.”

ㅡ 동티모르는 동남아 국가 중 가장 관광객이 적은 나라다. 한국인에게도 아직 낯선데, 역사적으로 우리와 어떤 연결고리가 있나.

“동티모르는 450년 간 이어진 포르투갈의 지배 이후 1975년 한 차례 독립했다. 옆 나라 인도네시아가 열흘도 안 돼 다시 침략하면서 25년 간 인도네시아 지배를 받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당시 동티모르 인구의 30%가 사망했다. 1999년 전쟁이 가장 극에 달했을 때 국제사회에 세계평화를 강조하며 독립을 지원한 분이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APEC 정상회담에서도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의 문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알렸다. 이때 상록수부대가 파병돼 독립 전·후 동티모르를 지원했다. ”

ㅡ 동티모르인들에게 한국이라는 나라는 어떤 이미지인가.

“한국에선 동티모르가 낯선 나라일 수 있지만, 동티모르에선 아니다. 스무 살이 넘은 언니, 오빠들이 한국으로 떠나 일하면서 대가족을 부양하는 경우가 많다. 2009년 고용허가제 시행 이후 한국에 동티모르인들이 일을 하기 위해 들어왔다. 그들이 조국으로 돌아가 들려준 한국 이야기도 많이 퍼졌다.

국내에선 약 3000여 명의 동티모르인이 외국인 근로자로 일하고 있다. 동티모르에선 포르투갈과 영국, 호주, 한국 4개국으로 나가 일을 할 수 있는데, 동양에선 한국이 유일하다.”

ㅡ 한국어 강의 인기가 굉장히 높다고 들었다. 실제 열기가 어떤가.

“2013년 한국학센터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수강생이 20명이었다. 2년 전인 2018년 센터에 머물며 교육봉사를 했었는데, 그때 학생들이 300명까지 늘었다. 책상과 의자가 부족해 바닥에 앉아 끼어서라도 공부하겠다는 학생들을 보면서 눈물이 났던 기억이 있다. 올해 센터 수강생은 모두 350명이다. 대기자만 1000명이 넘는다. 수용할 여력이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지난해 처음 동티모르에서 TOPIK 한국어능력시험이 열렸다. 국립국제교육원에 시험 개최를 요청한 지 3년 만에 이뤄진 성과다. 동티모르에는 세계 공용어인 영어능력시험(TOEFL, TOIEC)도 없다. 한국어능력시험이 생긴 건 정말 의미 있는 일이다.”

부부가 3년 간 지속적으로 요청한 결과 동티모르에서 지난해 첫 TOPIK 한국어능력시험이 열렸다. 시험 당일 학생들이 기뻐하며 찍은 기념 사진.
부부가 3년 간 지속적으로 요청한 결과 지난해 동티모르에서 첫 TOPIK 한국어능력시험이 열렸다. 시험 당일 학생들이 기뻐하며 찍은 기념 사진.

 ㅡ 지금껏 부부의 자비로 8년 간 센터를 운영해왔다. 수강생이 늘면서 고충도 많을 것 같은데.

“8년 간 센터를 운영하며 물질적인 지원을 받아본 일이 없다. 다만 지난해 말, 지인인 서울 강동구 동방라이온스클럽 박대희 회장님이 한국어교재 198권과 복합기 3대 등 약 400만 원 상당의 지원을 해주신 적이 있다. 덕분에 이제 학생들이 복합기로 교재를 복사해 공부할 수 있게 됐다. 

수업에 사용하는 한국어 교안은 남편과 함께 직접 만든다. 한국 서점에 가면 ‘몽골인을 위한 한국어’, ‘베트남인을 위한 한국어’, ‘영어권 학습자를 위한 한국어’ 등 대상자별 한국어 교재가 다양하게 나와 있는데, ‘동티모르인을 위한 한국어’ 교재는 아직 없다. 한국어 교육을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은 교재를 만드는 일이다. 조만간 국내 기업이나 기관이 한국어 교재 제작을 지원하는 멋진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

ㅡ 대학 내 언어센터들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 최근 일본 정부에서 동티모르 국립대 내에 일본어센터 설립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고 들었다.

“동티모르 국립대에서 승인한 언어센터는 포르투갈어센터, 영어센터, 한국학센터 3곳이다. 포르투갈어센터는 포르투갈 정부가 지원하고, 영어센터는 가장 가까운 영어권 나라 호주가 지원한다. 한국학센터는 정부 지원이 없어 가장 열악한 편이다.

일본 자이카(JICA, 일본국제협력기구)는 2년 전 동티모르 국립대 공과대학이 소재한 캠퍼스를 새롭게 리모델링해주는 지원 사업을 했다. 동시에 일본어센터 건립 필요성을 대학 측에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신기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대학 측은 아직 일본어센터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한국학센터 운영이 8년차를 맞이했다. 한국에서도 이제 센터의 존재에 작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ㅡ 동티모르 국립대 학생들이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와 대학 생활을 했다. 이 기회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2018년 한국학센터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왜 한국어를 배우느냐’는 질문에 학생들이 “한국 대학에서 공부해보고 싶다”는 대답을 했다. 한참을 고민하다 무작정 국내 대학 10곳에 전화를 돌렸다. 대부분 어렵다는 회신이 왔는데, 전남대학교와 선문대학교가 화답했다. 각각 4명, 1명의 학생을 받아주기로 해 동티모르 국립대 역사상 처음으로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막상 성사되고도 경제적 문제 때문에 우여곡절을 겪었다. 비행기표부터 생활비 마련까지 정말 학생들이 어렵게 한국에 올 수 있었다. 전남대에선 이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눈여겨보고, 2019년 봄학기 14명의 학생들을 더 받아줬다. 올해 1학기까지 총 23명의 학생들이 한국 대학에서 공부하는 경험을 했다. 이 친구들이 학교로 돌아가 언어센터에서 다시 교육 환원을 하고 있는데, 그 마음도 너무 예쁘다.”

한국에 교환학생 자격으로 온 동티모르 국립대 학생들이 2년 전 겨울 방학 세종시 최 부부의 자택에 머물렀다. 당시 세종시청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
한국에 교환학생 자격으로 온 동티모르 국립대 학생들이 2년 전 겨울 방학 세종시 최 부부의 자택에 머물렀다. 당시 세종시청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 유학을 마치고 돌아가 동료 학생들에게 한국어 교육 나눔을 하고 있다.

ㅡ 학생들이 방학 때 세종시 자택에 머무르면서 한국어 교육 동영상 제작을 시작했다. 이후로도 온라인 교육 콘텐츠가 계속 제작되고 있는데. 

2년 전 Ana, Rosalina, Ester, Jose, Daniel 5명의 학생들이 겨울방학을 맞아 40일 간 세종에서 생활했다. 세종시 출범 역사를 이야기하고, 신도시 건설 모습을 보고 나서 동티모르의 경제 발전 롤모델로 삼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방학 때 학생들과 처음 유튜브를 시작했다. 그때 시도했던 ‘테툼어로 배우는 한글’ 콘텐츠가 지금도 계정에 남아있다. 이후로도 온라인 교육 동영상을 계속 만들어 올리고 있는데, 구독자 수가 점점 늘고 있다. 현재까지 99개의 교육 동영상이 업로드됐다.”

ㅡ 세종시 KDI 정책대학원에 전 세계 유능한 인재들이 모여 수학하고 있다. 동티모르 유학생도 있다고 들었다.

“KDI 정책대학원을 졸업하고, 석사학위를 받고 돌아간 학생들이 20여 명이라고 들었다. 주로 동티모르 정부, 한국 코이카 장학생으로 온다. 사회경험도 있고, 영어도 출중한 상당한 엘리트들이다.

남편인 최 교수가 동티모르 집에서 합숙하며 언어를 지도해 보낸 친구들도 있다. 보스코와 조세베가스는 졸업 후 동티모르에서 취업한 뒤에도 한국어 교육 봉사에 참여하고 있다. 차기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고 싶다는 유학생도 만났다. 한국에서 유학한 동티모르인이 조국으로 돌아가 대통령이 되는 일이 생긴다면, 정말 뜻깊을 것 같다.”

ㅡ 현재 고려대 민족문화원 테툼어 사전 제작을 위한 공동연구에 참여 중이다. 테툼어-한국어 사전 편찬 작업의 추진 이유와 목적에 대해 말해 달라.

“사전 연구는 양 국가 간 교류를 위한 ‘학문 목적의 언어 연구’라는 데 의미가 있다. 현재 제작중인 테한-한테 사전은 테툼어를 외국어로 설명한 사전 중 유일하게 모든 단어에 예문을 가지고 있는 형태로 만들어진다.

테-영어, 테-포르투칼어, 테-인도네시아 사전이 있긴 하나, 모두 예문이 없는 실정이다. 현재 네이버사전에 테-한사전 3000단어가 올라가 있는데, 향후 7000단어가 추가로 업데이트 될 예정이다. 사전이 완성되면 ‘테툼어로 배우는 한국어교재’를 만들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ㅡ 한국어를 배운 동티모르 학생들이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라나. 또 한국에 교환학생 자격으로 왔던 친구들이 조국으로 돌아가 어떤 역할을 하길 기대하나. 

“동티모르도 한국과 사정이 같다. 대학 졸업생들의 가장 큰 고민은 취업이다. 대학을 졸업하면 중·고등학교 교사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어를 공부한 학생들이 교사로 임용돼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멋진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 교사들이 많아진다면, 학교에서도 제2외국어로 한국어 과목을 채택할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미래에는 동티모르 대학 내 한국어학과가 설립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도 있다. 한국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친 학생들이 훗날 조국으로 돌아와 한국어학과 교수가 되는 꿈도 꿔본다.

전 세계 각 국에 세종학당이 세워졌지만, 아직 동티모르에는 없다. 세종대왕이 가난한 백성을 위해 큰 사랑을 담아 한글을 창제했듯이, 이 한글이 가난한 작은 나라에 뻗쳐 어린 친구들에게 환한 빛이 돼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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