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허태정 대전시장. 자료사진.
허태정 대전시장. 자료사진.

허태정 대전시장이 시 공무원들에 대해 가장 아쉬워 하는 부분 중 하나가 ‘홍보’다. 대전시가 이뤄낸 성과를 많은 시민들이 알도록 해야 하는데 공무원들이 그런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게 허 시장의 생각 같다. 그제 확대간부회의에서 허 시장은 “굉장히 많은 성과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데 이것이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민선7기 성과로 만들어지는 시너지를 내는 데는 아쉬움이 있다”며 “시장으로서 답답한 부분”이라고 했다. 

허 시장은 홍보전략회의를 통한 협업과 조직적 대응을 주문했다. 기획관실 대변인실 홍보담당관실 등의 부서에는 협업을 통한 홍보 시스템 구축을 요구하고, 실국장들에겐 대전시 성과에 대해 언론과 대화의 시간을 가져줄 것을 요청했다. 홍보 강화에 대한 허 시장의 간절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만일 필자 그 간부회의에 참석한 공무원라면 ‘무엇을 누구에게 어떻게 홍보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오히려 시장의 말이 답답하게 느껴졌을 것 같다.

답답하다는 시장 말 듣고 답답했을 간부들

그동안 대전시가 이룩한 성과 가운데 홍보가 안 된 내용이 과연 있을까. 시민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성과가 있는 데도 담당공무원이 성실하지 못해서 홍보가 안 된 경우는 없을 것이다. 신문 방송을 통해야만 홍보가 가능하던 시절엔 혹 그럴 수도 있었지만 지금 같은 인터넷 시대엔 행정기관 스스로 홍보가 가능해서 그런 일은 없다. 또 보도자료를 내면 많은 언론사에서 기사로 다뤄주기 때문에 성과를 내고도 홍보하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

허 시장이 원하는 홍보는 이와 다를 것이다. 어떤 성과가 보도자료를 통해 100명에게 알려졌다면 천 명, 만 명 더 나아가 150만 대전시민 전체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게 시장의 굴뚝같은 마음이다. 시가 이룩한 성과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허 시장이 일을 많이 하는구나!”라는 칭찬이 이곳저곳에서 나오는 게 시장의 바람이다. 모든 정치인들의 ‘희망사항’이다. 그러나 희망을 모두 실천에 옮길 수는 없는 법이고, 그것이 늘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1만 명 정도에게만 알려져도 충분한 내용을 10만 명 이상에게 홍보해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면 행정력과 비용은 그만큼 낭비되면서도 홍보 확대 효과는 거두기 어렵다. 뭐든 억지로 알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홍보 효과를 높이는 노력은 필요하지만 홍보에 목을 매는 행정은 쓸모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허 시장은 그렇게 해보라고 공무원들에게 주문하고 있다. 

실국장이 시장의 주문을 실천하려면 앞으로 기자나 시민단체 관계자 등과 ‘홍보를 위한 대화의 시간’을 가져야 할 텐데 실국장이 이들에게 전해주어야 할 새로운 정보가 없다면 시간만 낭비하게 된다. 대전시의 모든 성과는 - 특히 자랑할 수 있는 중요한 성과는 - 이미 보도자료 등을 통해 보도되고 인터넷에 기사가 올라가 있는 상태에서 뭘 어떻게 더 홍보할 방법이 있겠나?

지난해에는 대전시가 추진한 ‘실국장 홍보책임제’가 논란을 빚었다. 당시 야당에선 “허 시장이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을 상대로 담당 공무원이 직접 대책을 세우고 그 결과에 따라 인사고과를 반영하겠다”는 것이라며 “자신의 실정을 공무원에게 떠넘기기 위한 갑질이자 꼼수”라고 비판했다. 야당이 제대로 짚었다면 허 시장이 주문하는 홍보 강화는 ‘정치인 허태정’을 위한 선거운동일 수 있으며 홍보책임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시정 홍보에 대한 시각은 대전시와 시민이 다르고, 시 안에서도 시장과 공무원의 입장이 같지 않다. 시민들은 실적이든 실패든 사실대로 알기를 원하지만 대전시는 시민들에게 내세울 수 있는 것만 홍보하려 한다. 공무원은 자신의 업적을 인사권자인 시장이 알아주길 원하고, 시장은 유권자인 시민들이 알아주길 바란다. 입장이 서로 다르다면 시민들 입장을 따라야 한다. “이렇게 훌륭한 성과를 내고도 왜 아직 알려주지 않았느냐?”고 원망하는 시민은 보지 못했다.

수천 명 공무원보다 강한 ‘슈퍼 홍보맨’은 시장

대전시민들은 홍보 부족이 아니라 성과 부족을 걱정하고 있다. 국비사업의 경우, 충북(방사선가속기) 부산(스마트시티 시범사업) 등 다른 도시들은 1조 원대 사업을 챙겨가고 있는데 대전시는 줄줄이 탈락하다가 스마트시티챌린지나 스타트업파크 등 100~200억 원대 국비사업 2~3개 따와, 이거 왜 더 많이 홍보하지 않느냐고 성화를 내는 게 작금의 ‘홍보 강화론’이다. 홍보 강화에 힘쓸 여력이 있다면 차라리 성과를 내는 데 써야 한다. 홍보에 대한 시장의 열정은 성과를 내는 데 쓰여야 한다. 

커다란 성과는 지역의 자긍심을 높이고 주민 단결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오늘 발표되는 ‘대전 충남에 대한 혁신도시 지정’이 성사되면 그런 사례가 될 수도 있다. 대전시는 우리 지역이 자신감을 갖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 엄청난 홍보 노하우가 필요하다고 보진 않는다. 홍보보다는 시장의 책임있는 말과 결단력 있는 행동이 주민들의 결속을 좌우한다. 자리에만 매달리는 사람에겐 어려운 일이다.

다른 지역에선, 지역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직’을 걸겠다는 시장도 가끔 나온다. 이런 시장이 하는 말은 아주 조용하게 말을 해도 크게 틀리기 때문에 전해듣지 않는 시민이 없다. 홍보의 효과는 공무원 수천 명 전체를 동원하더라도 시장 한 명을 따라갈 수 없다. ‘슈퍼 홍보맨’은 시장 자신이다. 행정도 하면서 정치도 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아주 떳떳한 방법이다. 그런데 허 시장은 효과도 불분명한 공무원들에게 시키려 하는가? 시장 스스로 슈퍼 홍보맨이 되는 건 정녕 어려운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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