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허태정 대전시장(왼쪽)과 양승조 충남지사.
허태정 대전시장(왼쪽)과 양승조 충남지사.

요즘 대구 경북과 광주 전남에선 시도통합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대구 경북에선 지난 21일 양시도 행정통합 추진을 위한 논의체인 공론화위원회가 출범했고, 광주 전남에서 이용섭 광주시장이 “통합은 시대정신”이라며 시도 통합공론화 작업에 나섰다. 성공 가능성은 알 수 없으나 통합의 필요성은 인정받는 분위기다. 

대전은 대구 광주와 같은 처지인 데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허태정 대전시장은 얼마 전 세종시와의 통합을 제기해 놓았을 뿐 충남도 쪽에 대해선 통합 얘기를 꺼내지 않고 있고 충남도 역시 그런 얘기는 안하고 있다. 시도 통합 문제는 서로 자존심을 건드릴 수 있는 문제여서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는 있다. 대전시와 충남도도 그런 문제 때문에 언급을 꺼리는 것일 수도 있다.

시도 통합은 시대의 과제인 게 분명하다. 인구가 100만 명을 넘으면 직할시로 승격시켜주던 과거 관행은 지금 와 보니 장점보다 단점이 많았다. 대전이 1989년 직할시로 승격될 때 대전시민들은 “드디어 직할시가 되었다”고 환호했고, 충남도는 품에 안고 있던 자식을 떠나보내는 듯 못내 아쉬워했다. 먼저 ‘분가(分家)’했던 대구 광주도 대전과 비슷했을 것이다. 

직할시 승격으로 도청과 호남선 잃은 대전

그러나 시도(市道)의 분리는 득보다는 실이 컸다. 대전과 충남, 광주와 전남, 대구와 경북은 경제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본래 한 집안이어서 한집 살림을 하는 게 여러모로 효율적인데 양쪽으로 갈라지면서 서로 손해를 봤다. 직할시 승격은 대전시가 중앙정부와 직접 통하는 자격을 얻는 것이어서 예산 확보에도 유리하다는 계산도 했었다. 

그런 도움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나 대전 충남이 남남이 되어 가면서 대전 충남 전체의 경쟁력도 떨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대전은 분가의 대가로 '보물' 2개를 잃었다. 하나는 충남도청이고 또 하나는 호남선 철도다. 대전이 직할시가 되었으니 도청은 나갈 수밖에 없었고, 호남고속철도는 대전(서대전역)과 충남(천안역)이 남남이 되어 다투는 사이에 이웃집(오송)에서 낚아채 갔다. 충남에서 분리되지 않았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 모른다.

충남 역시 ‘큰 아들’ 대전을 잃으면서 힘겨워했다. 도세(道勢) 회복을 기치로 내걸고 애를 써야 했다. 분가한 아들에게 살던 집을 내주고 쫓겨나다시피 내포에 새 둥지를 틀었으나 안정을 찾기 어려웠다. 지금도 그런 처지다. 대전을 내보내면서 구심점을 잃은 충남은 아직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동안 머리가 커진 천안이 충남의 수부 도시 역할을 하고 있으나 예전의 대전과 같을 수는 없다.

대전 충남의 분리는 지역 민심의 분리(分離)도 가져왔다고 본다. 대전시민에게 충남은 과거처럼 친근한 이웃이라기보다 또 하나의 경쟁 상대다. 형제간 선의의 경쟁은 발전의 자극제가 될 수도 있으나 불필요한 신경전은 정력만 낭비하게 만든다. 대전 충남이 합해졌다면 100이라는 경쟁을 가졌을 텐데 각자 50씩 나눠 갖고 신경전만 벌이는 듯한 모습이 종종 연출된다.

대구 경북, 광주 전남에서 시도 통합을 추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역 경쟁력 제고다. 한 집안이던 시도(市道)가 쪼개져 있으니 지역 전체에 손해가 된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 이철우 경북지사는 작년 시도통합을 제안하면서 “대구 경북이 과거처럼 대한민국을 이끌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합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역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대구 경북을 다시 합쳐 ‘체급’을 높이자는 것이다. 광주 전남 통합론 같은 취지다.

지역 경쟁력의 문제라면 대전과 충남이야말로 절실한 문제다. 정부로부터 늘 찬밥이었던 대전 충남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투명 인간’ 취급을 당하고 있다. 대전 충남도 힘을 합치면 캐스팅보터로서 국정의 중심에 설 수 있을 텐데도 앞장서는 데가 없다. 경북지사는 “도지사직을 내려놓더라도 통합은 필요하다”며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100 가진 대구 광주 아우성인데 50 가진 대전 충남은..

자신을 먼저 내려놓을 수 있어야 통합 얘기를 꺼낼 수 있다. 경북지사의 통합 제안은 그럴 각오가 돼 있다는 말 같다. 대구 경북 광주 전남은 통합론으로 한창 뜨거운 데도 대전 충남은 절간처럼 조용하다. 대전 충남은 통합이 필요없다는 뜻인가, 필요는 하지만 성공하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인가? 아니면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릴까 차마 먼저 운을 떼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시도통합은 필요없다는 판단이 아니라면 어떤 식으로든 방법은 찾을 수 있다. 양승조 지사든, 허태정 시장이든 '나부터 내려놓을 수 있다'는 각오면 통합논의를 제기할 수 있다. 시민 사회단체 등에서 먼저 얘기를 꺼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 내 땅, 내 몫, 내 자리를 먼저 생각한다면 나설 수 없다. 대전이나 충남 어느 한쪽이 아닌 대전과 충남, 더 나아가 대전 충청 전체를 위해 희생할 수 있다는 뜻이 있어야 떳떳하게 통합론을 말할 수 있다.

시도 통합은 장애물이 적지 않다. 통합하면 손해인 사람들이 적지 않고, 결사적으로 반대할 사람들도 있다. 그래도 필요한 일이면 해내야 하는 게 정치다. 편안히 앉아서 도장 찍는 일만 한다면 시도지사를 둘 이유가 없다. 경북지사도 광주시장도 통합이 어렵다는 걸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것을 해보려하고 있고 우리 지역에선 해보겠다는 사람조차 없다. 그들은 지금도 100 이상을 가진 부잣집이고, 우리는 50도 못되는 형편인데 부자처럼 편안히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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