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원도심 기획] 한 장, 한 알이 일으키는 변화
몸과 마음의 이루는 건강한 양식, 갈증은 나의 힘

공주 원도심에 작은 서점들이 잇따라 문을 열었다. 조용한 동네에 일어난 작은 변화다.

판매하는 책보다 주인의 소장 서적이 더 많은 책방과 지역 작가들의 독립출판물을 취급하는 쉼이 있는 책방, 외관이 독특한 천변 서점과 토종 곡물 음료를 내놓는 한옥 북카페까지. 걸어서도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외지에서 온 청년 책방지기들이 모여들었다.

책이라는 매개로, 우리는 어떤 일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공주의 작은 책방들을 차례대로 소개한다. <편집자 주>

데시그램북스 윤경화 책방지기와 곡물집 김현정 대표. 공주 여고 동창생인 두 사람은 지난 8월 신축 한옥에 서점과 카페를 함께 오픈했다.
데시그램북스 윤경화 책방지기와 곡물집 김현정 대표. 공주 여고 동창생인 두 사람은 지난 8월 신축 한옥에 서점과 카페를 함께 오픈했다.

책 한 장, 곡물 한 알의 질량은 얼마나 될까. 이것이 한 개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변화시킨다면, 그 무게를 숫자로 가늠하긴 어려울 것이다.

마음의 양식인 책과 몸의 양식인 곡물을 함께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 생겼다. 공주 효심1길 한옥집에 자리잡은 서점 데시그램북스&카페 곡물집이다.

각자 생업에 충실했던 공주여고 두 동창생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책과 토종 곡물로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살찌우겠다는 목표.

서점과 카페는 가오픈 기간을 마치고 내달 정식으로 문을 연다.

데시그램, 0.1g의 힘

데시그램북스 책방지기 윤경화 씨. 영어학원 원장일을 겸업하고 있다.
데시그램북스 책방지기 윤경화 씨.

책방지기 윤경화(42) 씨는 공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후 서울과 외국에서 생활했다. 고향에 돌아온 후 15년째 학생들을 가르치는 영어학원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책방지기는 그의 두 번째 직함이다.

책방 데시그램북스(decigram books)는 질량 단위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1데시그램은 1g의 10분의 1을 뜻한다.

“g보다 더 작은 단위를 고민하다 선택했어요. 책 한 장의 질량은 아주 작지만, 어떤 독자에게는 아주 큰 울림을 주기도 하죠. 그래서 책을 소개할 때면 이 책이 몇 데시그램인지 꼭 적곤 합니다.”

평소 책에 관심은 많았지만, 책방지기를 꿈꾸게 된 계기는 문학에 갈증을 느끼게 되면서다. 가르치는 일은 내면의 소진을 동반했고, 오랜 시간 일에만 몰두하다보니 나를 채우는 일에 ‘갈증’을 느끼게 됐다.

“영문학을 다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 대학원에 입학했어요. 다시 문학을 읽으면서 책방을 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래서 우리 책방에는 신간이 적고, 고전 영미문학 비율이 커요. 제 개인의 취향이 아주 잘 반영된 곳이죠.

미국 소설가 토니 모리슨을 가장 좋아합니다. 흑인 문학이고, 주류 문학은 아니지만요. 책방을 열고 보니 왜 더 일찍 도전하지 못했을까 아쉬운 마음도 들어요. 젊었을 때 열심히 일한 대가를 오로지 여기에 투자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웃음).”

9월 추천책.
9월 추천책. 주제는 '친구'다. 오랜 친구와 다시 인연이 돼 서점을 열게 된 계기에서 차용했다. 

그는 책방 오픈을 준비하면서 공주 원도심의 변화를 직접 체감했다. 생활에 치여 내가 사는 동네에는 오히려 무뎠던 탓이다. 고민하던 차에 작은 서점 3곳이 잇따라 문을 열었다.

“2년 전만해도 서점이 없었는데 1년 사이 세 곳이나 생겼어요. 살펴보니 다들 개성이 있어서 더 생겨도 괜찮겠다 싶었죠. 공주는 세종시 출범하면서 인구도 줄고, 걱정도 많았어요. 근데 다른 방향으로 발전되고 있는 것 같아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줄곧 서울과 외국에서 살았지만, 결국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됐잖아요.”

책방지기는 매달 소설을 추천한다. 9월 주체는 ‘친구’다. 작지만 친근한, 이 동네에서 ‘없어지면 안 될 서점’으로 남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토종 곡물이 선사하는 작은 변화

곡물집 김현정 대표. 토종 곡물 20여 종을 소재로 한 카페를 서점과 한 공간에 오픈했다.
곡물집 김현정 대표. 토종 곡물 20여 종을 소재로 한 카페를 서점과 한 공간에 오픈했다.

푸르대밤콩, 등틔기콩, 아주까리밤콩, 선비잡이콩, 버들벼, 까막벼, 북흑조, 앉은뱅이밀가루. 우리나라 토종 곡물 이름이다.

1층 입구에는 카페 ‘곡물집’이 있다. 책방지기와 여고 동창 사이인 김현정(42) 씨가 이곳 대표다. 두 사람은 몇 년 만의 통화가 인연이 돼 고향에서 다시 만나게 됐다. 김 대표는 서울 소재 대기업에서 줄곧 브랜딩 기획자로 일했다.

책장 맞은편에는 토종 곡물 20여 종을 담은 소량 패키지 상품이 진열돼있다. 카페에선 커피원두와 토종콩을 블렌딩한 드립커피와 다섯 가지 토종콩으로 만드는 미숫가루를 맛볼 수 있다. 디저트는 토종콩과 토종옥수수로 만든 파운드케이크다.

“토종 곡물을 일상적인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았고, 카페를 오픈했어요. 곡물집은 토종 곡물을 탐구하는 공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다양한 크리에이터들과 콘텐츠를 만들고 있어요.

사회가 전반적으로 건강해지려면 먹는 것에도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경험해보면 곡물들은 맛도, 색깔도, 향도 모두 달라요. 방문한 분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작은 변화가 생긴다면 감사한 일이죠. 생각해보면 책도 곡물도 우리 삶에 큰 변화가 될 수 있다는 점이 공통적이네요. ”

토종 곡물은 로컬 생산품, 유기농 제품으로 취급하고 있다. 공주 계룡면 버들방앗간 황진웅 농부가 농사짓고, 큐레이션한다. 가오픈 기간에는 소규모 워크숍을 진행해 토종 곡물을 알렸다. 향후에는 도시 곡물 농업 가드닝 클럽도 운영할 예정이다. 실제 김 대표는 평소 식문화에 관심이 많다. 

“토종 작물을 기르시는 신념 있는 농부를 만난 것이 큰 행운이었어요. 사실 곡물집을 서울에 열 수도 있었지만, 생산자와 가까이 있어야 진정성이 잘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책과 곡물을 어떻게 콜라보해 선보일지 고민 중이에요. 책을 읽으며 마실 수 있는 드립백 제품이나 문학 속 음식을 매개로 한 패키지도 구상 중이고요. 정식 오픈 후 서점과 곡물집이 어떤 것들을 만들어 낼지 지켜봐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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